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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언어의 주인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공정’이 뭔지, ‘가족’이 뭔지, ‘사랑’이 뭔지. 어디까지 공정하고 어디부터 공정하지 않은지 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평소에는 뿌옇고 희미한 채로 놔둔다. 그러다가 때가 차면 개념을 문제 삼게 되고 다툼과 혼란이 생긴다. 새로운 길로 향하는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흔치 않다.

여하튼 공공언어에 대한 공식 정의는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 산하 공공기관 등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이다.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생산하는 모든 언어란 뜻이다. 이에 따라 쉬운 공공언어를 쓰라면서 교육 홍보, 실태조사, 격려와 주의 조처가 잇따른다.

하지만 공무원 언어만을 공공언어의 반열에 올려놓으면 문제가 생긴다.

첫째, 공공언어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 공무원 언어가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쯤으로 이해하게 된다. 공공언어는 다층적이다. 공공언어는 마을 골목에서 도서관, 공원, 학교, 관공서, 군대, 신문·방송, 정치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성격이 다른 공간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실행된다.

둘째, 언어정책에 왜곡을 가져온다. 공무원 언어에만 집중하면 공공언어에 대한 입체감 있는 정책을 외면하거나 뒤로 미루게 된다. 평등한 언어 사용은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언어 역량과 사회적 감수성 문제다.

셋째, 공공 영역에 개인이 관여할 여지를 차단한다. 개인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언어 생산자다. 언어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한다. 공공언어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다. 관점을 바꾸면 할 일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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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는 빠져!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안 바뀐다.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관료주의로 똘똘 뭉친 국가권력은 구습을 못 버린다. 여전히 국민은 계도의 대상, 어르고 달랠 민원인. 언어정책도 마찬가지다. 공공언어 정책은 개념부터 계몽적이다.

지난 칼럼에 썼듯이 국가는 공공언어를 ‘공무원들이 생산하는 언어’로 한정하여 공공성을 왜곡하고 언어정책을 쪼그라뜨렸다. 개념을 축소하니 할 일은 명쾌하다. 행정용어를 순화하고 누가 보도자료를 더 쉽게 썼는지 순위를 매기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행정언어 이외의 말은 관심 밖이다. 말하는 주체의 다양성, 말하는 공간의 복잡성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공무원 언어의 ‘질’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하긴 해도 충분하진 않다. 공공 영역은 개인 담화를 넘어선 뭔가 더 높은 차원의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곳이다. 공공언어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사회적 관계 자체에서 벌어지는 언어적 소란이다. 공공언어 정책은 말의 통제나 단속에 있지 않다. 도리어 공공 영역에서 벌어지는 언어적 소란이 적정한 합의에 이르도록 말문을 터주고 사회적 격차에 따른 말의 격차를 좁혀주는 역할을 찾는 일이다. 이를 위해 모든 개인이 공공 영역에서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알고 기존 언어를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내는 ‘진짜 문해력’을 어떻게 기르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엄격한 감시자가 아니라 유연한 촉진자가 필요하다. 누가 좋을까? 나를 포함한 언어학자들은 지나치게 완고하고 말 자체에 매몰되어 있다. 한 5년 정도 언어학자들은 뒤로 빠져 있으면 안 될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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