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12.19 07:15

구경꾼의 말

조회 수 91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구경꾼의 말

녹사평역 3번 출구. 스산한 바람이 뒹굴고 무심한 차들이 질주하는 고갯마루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있다. 바로 곁에 “정치 선동꾼 물러나라”라는 펼침막을 붙인 봉고차 한대. 이 어색한 밀착의 공간을 서성거린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주변을 배회하는 구경꾼들이 있다. 사건을 관망하면서 말을 끄집어내는 구경꾼들의 입은 당사자만큼이나 중요하다. 권력자들을 떨게 만드는 건 구경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와 결집이니.

8년 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었던 유경근씨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다. 이것을 정말 듣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희생자 가족들은 그 ‘부질없는 말’을 정말 듣고 싶어 한다.

권력자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들이 입을 닫으니 반동들이 입을 연다. 예전보다 더 빠르고 악랄하고 노골적이다. 권력자들은 반동의 무리들이 반갑다. 구경꾼들을 당사자들과 분리시키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될 테니.

그러니 말을 믿지 말자. 권력자의 말을 믿지 말자. 그들이 하지 않은 말도 믿지 말자. 뉴스를 믿지 말자. 신문에 기사화된 분노를 믿지 말자. 그 분노는 애초에 우리의 심장 속에 있었다. 대중매체가 훔쳐 간 것이다. 휴대폰만 쳐다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능욕하는 막말도 의견인 양 같은 무게로 읽힌다. 그러니 우리의 감각을 믿지 말자. 우리의 무감각도 믿지 말자. 우리에게 절실한 건 ‘가서 보는 것’. 참사를 만져보는 것. 목격자로서 말을 하는 것.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534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189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6746
3190 난민과 탈북자 風文 2021.10.28 902
3189 언어적 적폐 風文 2022.02.08 902
3188 말의 미혹 風文 2021.10.30 903
3187 “힘 빼”, 작은, 하찮은 風文 2022.10.26 903
3186 뉴 노멀, 막말을 위한 변명 風文 2022.08.14 904
3185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907
3184 이단, 공교롭다 風文 2022.08.07 908
3183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風文 2022.07.24 909
3182 '바치다'와 '받치다' file 風文 2023.01.04 914
» 구경꾼의 말 風文 2022.12.19 915
3180 ‘개덥다’고? 風文 2023.11.24 915
3179 직거래하는 냄새, 은유 가라앉히기 風文 2022.08.06 918
3178 예민한 ‘분’ 風文 2023.05.29 921
3177 김 여사 風文 2023.05.31 921
3176 주현씨가 말했다 風文 2023.11.21 921
3175 이름 짓기, ‘쌔우다’ 風文 2022.10.24 923
3174 부동층이 부럽다, 선입견 風文 2022.10.15 925
3173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風文 2023.04.17 925
3172 ‘부끄부끄’ ‘쓰담쓰담’ 風文 2023.06.02 925
3171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風文 2022.08.12 932
3170 비는 오는 게 맞나, 현타 風文 2022.08.02 932
3169 대통령과 책방 風文 2023.05.12 93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