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04.03 10:43

나, 본인, 저

조회 수 2415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 본인, 저

첫 여성 대통령이자 ‘부녀(父女) 대통령’이 취임했다. 33년 만에 청와대로 들어간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곳의 주인은 모두 10명이었다. 전두환(11·12대), 이승만(1·2·3대), 박정희(5·6·7·8·9대)처럼 연임한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11번째 주인이 된 박근혜 대통령 취임에 즈음해 한 통신사가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 등장한 낱말을 헤아려 담아 ‘낱말 구름’(word cloud)을 만들었다. ‘국정 운영의 청사진, 정권 목표를 담은 시대정신의 산물’(ㅇ뉴스)이라는 취임사를 분석해 만든 ‘낱말 구름’을 보니 그럴듯했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말은 ‘국민’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통령이 된 6명(13~18대)은 물론 9대 박정희 대통령도 ‘국민’을 ‘역사’, ‘민족’ 앞에 세웠다. ‘새(정부)’(5대, 5·16쿠데타 뒤 첫 집권)를 강조하며 시작한 그의 취임사를 살펴보면 ‘시월유신’을 앞둔 7대 취임식에서는 ‘나’(18번)를 ‘평화’, ‘통일’보다 많이 말했다. 12대 전두환 대통령도 ‘본인’(31번)을 ‘국민’(30번)보다 많이 썼다. 이처럼 취임사를 곱씹으면 그 시대 상황을 짚어낼 수 있다. 대통령 자신을 ‘나’와 ‘본인’, ‘저’ 등으로 가리킨 것을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을 것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나에게 치하하러 오는 남녀 동포가…”에서처럼 ‘나(내)’로 표현한 이래 ‘나’는 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사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10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사에서 ‘본인’에게 자리를 넘기고 사라졌던 ‘나’는 11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되살아난다. ‘본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를 문어적으로 일컫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다. 국민 앞에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인 ‘저(제)’가 취임사에 등장한 것은 13대 노태우 대통령 때이다. 표현에 한정되긴 하지만, ‘군림하는 나’에서 ‘(국민을) 받드는 저’로 바뀌는 데 40년이 걸린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558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211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7259
3018 사수 / 십이십이 風文 2020.05.17 1341
3017 24시 / 지지지난 風文 2020.05.16 1070
3016 선정-지정 / 얼룩빼기 황소 風文 2020.05.15 1266
3015 -분, 카울 風文 2020.05.14 1520
3014 풋 / ‘열’(10) ①, ‘열’(10) ② 風文 2020.05.10 1719
3013 백열 / 풋닭곰 風文 2020.05.09 1578
3012 표준발음, 구명동의 風文 2020.05.08 1637
3011 위탁모, 땅거미 風文 2020.05.07 1528
3010 ‘엘씨디로’ / 각출-갹출 風文 2020.05.06 1959
3009 아무 - 누구 風文 2020.05.05 734
3008 뒷담화 風文 2020.05.03 1007
3007 살인 진드기 風文 2020.05.02 1365
3006 배뱅잇굿 風文 2020.05.01 918
3005 지슬 風文 2020.04.29 1346
3004 벌금 50위안 風文 2020.04.28 1372
3003 간판 문맹 風文 2014.12.30 24313
3002 레스쿨제라블, 나발질 風文 2014.12.29 24118
3001 휘거 風文 2014.12.05 24839
3000 CCTV 윤안젤로 2013.05.13 27934
2999 새 학기 단상 윤안젤로 2013.04.19 25831
» 나, 본인, 저 윤안젤로 2013.04.03 24152
2997 목로주점을 추억하며 윤안젤로 2013.03.28 1971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