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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와 국립국어원

한글날 기념, 따분한 얘기 하나 하자. ‘국어’라는 말은 공용어인 한국어를 뜻하지만, 쓰임새를 보면 밀가루 반죽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국어 실력’이라 할 때 ‘국어’는 ‘어휘력, 표준어, 띄어쓰기, 맞춤법, 어법’을 연상시킨다. ‘국어사전’에서 ‘국어’는 주로 단어들이다.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는 ‘문학’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국어학 전공을 뜻한다. 국어학자와 국문학자는 소장수와 꽃장수만큼이나 다르다. ‘국문과’라 줄여 말하는 데에는 문학의 주도권이 배어 있다. 반면에 ‘국어 교사’가 가르치는 ‘국어’는 한국어를 매개로 한 말글살이를 모두 아우른다. 수능에서도 ‘국어 영역’은 ‘화법, 작문, 문법, 독서, 문학’을 다 포함한다.

따분한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국어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을 위한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기능을 문제 삼기 위해서이다. 국립국어원은 문학과 대칭되는 좁은 ‘국어’, 국어학자들의 ‘국어’에 머물러 있다. 국어기본법에 실린 ‘국어능력’은 ‘국어를 통하여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능력’이다. 그야말로 ‘문해력’(리터러시)이다. 말귀를 알아듣는 역량이자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글의 내용에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을 연결시켜 추론하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해력을 사회적 과제이자 교육정책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중간지대나 숙려기간 없이 진영과 세대로 갈려 대립하는 소통 환경에서는 문해력 격차 해소와 공공성 확보가 더욱 절실하다. 국립국어원은 문해력 증진 기관이다.





“처음 대답하는 사람이 중요해요. 강○○!” “예.” “아니, ‘예’ 말고 ‘응’이라고 해봐요. 겁내지 말고.” “…… 응.” “잘했어요. 거봐요. 할 수 있잖아요.”

나는 출석을 부를 때 학생들에게 반말로 대답하라고 ‘강요’한다. 괴팍하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지만, 잔재미가 있다. 그러다가 스무 명쯤 지나면 강도를 한 단계 높인다. “평소에 엄마 아빠가 부르면 뭐라 했는지 생각해서 대답해 봐요. 자, 용기를 내요. 박○○!” 머뭇거리며 답한다. “왜!!”(내키는 대로 해보라고 하면 가끔 간이 많이 부은 학생이 ‘오냐’라고 해서 응급실에 보내기도 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수업에서 반말로 대답하는 걸 갈고닦아 딴 강의에서 엉겁결에 ‘왜’라고 하여 낭패를 당했다는 미담을 듣는 것입니다. 낄낄낄.”

말은 명령이다. ‘예’와 ‘응’과 ‘왜’를 언제 써야 하는지 가르친다. 어기면 돌을 씹은 듯이 불편해한다. 그래서 ‘반말 놀이’는 규율을 깼다는 짜릿한 해방감도 느끼게 하지만,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명령의 체계(말의 질서) 속에 내가 던져져 있음을 무겁게 확인하게도 한다. 다만 말이 만든 경계선을 놀이처럼 한 번씩 밟고 넘어감으로써 그 질서를 상대화한다. 말은 피할 수 없으니 더욱 의심해야 하는 질서다.

부풀려 말하면 선생에게 ‘왜’라고 답해본 학생들은 시대에도 항의할 수 있다. 그러니 긴장들 하시라. 말에 속지 않고 ‘왜? 왜 그래야 되는데?’라며 달려드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속출할 것이다. 권력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상상력에 뿌리박은 채, 야금야금.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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