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2.20 06:10

어떤 반성문

조회 수 4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떤 반성문

사는 게 후회의 연속이다. 말을 해서 후회, 말을 안 해서 후회, 말을 잘못해서 후회. 집에서는 말이 없어 문제, 밖에서는 말이 많아 문제.

나는 천성이 얄팍하여 친한 사람과는 허튼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탈이 난다. 며칠 전에도 후배에게 도 넘는 말장난을 치다가 탈이 났다. 아차 싶어 사과했지만, 헤어질 때까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땅콩 까먹듯이 장난질을 계속하니 사달이 나지.

올해 가장 후회되는 말실수. 지난여름, 어느 교육청 초대로 글쓰기 연수를 했다. 한 교사가 ‘약한 사람들이 할 일은 기억, 연대, 말하기’라고 말한 이유를 물었다. 거기다 대고 나는 ‘뻘소리’를 했다. “교실에서 제일 힘센 사람은 선생이잖아요. 뭘 하라고도 할 수 있고,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러니 잘 견딥시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거였는데,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소리나 하다니. 그러곤 얼마 안 있어 교사들의 비극적 선택 소식이 이어졌다. 아찔했다. 교사들은 죽음을 감행할 정도로 깊은 좌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교사인 처제도 학생의 해코지가 두려워 얼마 전 노모를 모시고 이사를 갔다). 폐허로 변한 교실, 붕괴된 교육체계를 응시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더 나누며 연대의 길을 찾아보자고 해야 했는데…. 그 말이 들어 있는 글을 다시 보니 ‘죽음은 개인이 당면해야 할 일이지만 개인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는 것, 죽음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씨불이고 있었다.

말에서 비롯한 잘못은 자기감정이 과잉되거나 자기 확신이 강해서 생긴다. 무엇보다 상대를 넘겨짚다가 결국 큰코다친다. 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몹쓸 놈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8885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74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465
3410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風文 2024.01.06 598
3409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607
3408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風文 2024.01.04 592
3407 ‘폭팔’과 ‘망말’ 風文 2024.01.04 541
3406 있다가, 이따가 風文 2024.01.03 673
3405 내일러 風文 2024.01.03 422
3404 아주버님, 처남댁 風文 2024.01.02 337
3403 한 두름, 한 손 風文 2024.01.02 409
3402 ‘이고세’와 ‘푸르지오’ 風文 2023.12.30 570
3401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風文 2023.12.30 478
3400 뒤치다꺼리 風文 2023.12.29 397
3399 ‘~스런’ 風文 2023.12.29 390
3398 ‘며칠’과 ‘몇 일’ 風文 2023.12.28 364
3397 한소끔과 한 움큼 風文 2023.12.28 393
3396 '-시키다’ 風文 2023.12.22 413
3395 여보세요? 風文 2023.12.22 472
3394 장녀, 외딸, 고명딸 風文 2023.12.21 405
» 어떤 반성문 風文 2023.12.20 427
3392 가짜와 인공 風文 2023.12.18 417
3391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688
3390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813
3389 상석 風文 2023.12.05 54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