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11.07 20:21

는개와 느리

조회 수 10244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는개와 느리

땅 위의 목숨이 모두 그렇듯 우리 겨레도 죽살이를 비와 눈에 걸어놓고 있었다. 요즘에는 상점·공장·회사·사무실 같이 집안에서 많이 살지만 지난날에는 농사짓고 고기잡으며 사시사철 집밖 한데서 눈비와 어우러져 살았다. 그만큼 눈비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 이름도 어지간히 많다.

‘는개’는 국어사전에도 올라서 꽤 널리 알려진 말이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고 풀이해 놓았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자라는 풀이다. ‘는개’는 “늘어진 안개”라는 어구가 줄어진 낱말임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는개’는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안개 쪽에다 붙여놓은 이름인 셈인데, ‘는개’처럼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비라고 하지 않은 것에 ‘먼지잼’이 또 있다. ‘먼지잼’은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땅으로 데려와서 잠재우는 것”이라는 뜻의 풀이를 그대로 줄여 만든 낱말이다.

‘느리’는 국어사전에 오르지도 못한 낱말이다. 농사짓고 고기잡는 일을 내버려 눈비에서 마음이 떠난 요즘은 들어볼 수도 없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쓰지 않아 잊어버렸나 싶은 낱말이다. 지난 겨울 어느 이른 아침 대전에서 수십 년 만에 ‘느리’를 만나 오래 잊고 살았던 이름을 새삼 떠올렸다. ‘느리’는 “늘어난 서리”라는 어구를 줄여서 만든 낱말이지만 뜻은 그보다 훨씬 겹겹이다. 모두 잠든 사이에 살짝 오다 그친 ‘도둑눈’이면서 마치 ‘서리’처럼 자디잔 ‘싸락눈’이라 햇볕이 나면 곧장 녹아버리는 눈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9673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651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1284
3410 ‘강한 바람’만인가? 바람의종 2007.10.27 6693
3409 사전과 방언 바람의종 2007.10.28 5819
3408 새말과 사전 바람의종 2007.10.31 5916
3407 사라져가는 언어(2) 바람의종 2007.10.31 6970
3406 엎어지다와 자빠지다 바람의종 2007.10.31 7799
3405 소설속 고장말 바람의종 2007.11.01 9017
3404 댓글 바람의종 2007.11.01 5225
3403 만주말 바람의종 2007.11.02 6716
3402 미혼남·미혼녀 바람의종 2007.11.02 9559
3401 쉽게 찾기 바람의종 2007.11.03 6187
3400 금과 줄 바람의종 2007.11.03 5585
3399 여성상과 새말 바람의종 2007.11.04 8646
3398 언어 보존 바람의종 2007.11.04 6810
3397 야단벼락/혼벼락 바람의종 2007.11.04 8014
3396 ‘뛰다’와 ‘달리다’ 바람의종 2007.11.05 5272
3395 지역 언어 바람의종 2007.11.05 6644
3394 낚시질 바람의종 2007.11.05 6900
3393 칼미크말 바람의종 2007.11.06 7095
3392 책보따리·책보퉁이 바람의종 2007.11.06 8229
» 는개와 느리 바람의종 2007.11.07 10244
3390 복수 표준어 바람의종 2007.11.07 6877
3389 줄여 쓰는 말 바람의종 2007.11.07 1055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