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6.24 19:51

국방색 / 중동

조회 수 206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국방색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취임 3년차를 맞아 청와대 직원 조회에 참석했을 때의 옷차림이다. 통상 비서실장이 주관하는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나섰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카키색 상의에 검정 바지 정장 차림의 박 대통령이…’(ㅇ뉴스), ‘취임식 때 입었던 카키색 정장과 비슷한 차림으로…’(ㅎ일보), ‘…카키색 상의를 입고 직원들 앞에 섰다’(ㅈ일보). 한 방송은 “카키가 뭡니까? 군대에서 입는 전투복이에요…”라며 “(카키색은)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복색”이라 해석하기도 했다.(ㅇ케이블 뉴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방색 재킷을 입었다’(ㄷ일보)고 전한 신문도 있었다. 취임식 이후 해마다 같은 날 같은 빛깔로 차려입은 대통령의 옷은 카키색인가, 국방색인가.

카키색은 ‘누른빛에 엷은 갈색이 섞인 빛깔’이니, 그날 대통령이 입은 재킷은 ‘나뭇잎이나 풀잎과 같은 짙은 초록색’인 국방색에 가깝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인터넷 뉴스 검색 결과는 ‘대통령-카키색’ 29만4000개, ‘대통령-국방색’ 288개로 차이가 크다.(구글 뉴스) 황토색과 초록색, 확연히 다른 것인데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건 ‘군복=카키’라 오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카키색은 흙먼지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카크’에서 온 말이다. ‘카키’(khaki)는 인도가 영국 식민지일 때의 군복 색깔이었다. 이후 사막과 해변에서 작전하는 군의 위장색으로 애용되었다.(위키백과) ‘카키’가 넓은 지역에 걸쳐 오랜 세월 군복의 위장색으로 사용되었기에 우리나라에선 ‘국방색’으로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육군의 군복 빛깔과 같은 카키색이나 어두운 녹갈색’이라 설명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흐리터분한 ‘국방색’ 풀이는 그래서 문제다. 그릇된 새김이 그렇고, ‘카키색’(탁한 황갈색. 주로 군복에 많이 쓴다), ‘카키복’(카키색의 군복. ‘카키’는 인도어로 ‘흙’을 뜻한다)의 뜻풀이와도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

중동

‘뉴스’(news)는 ‘새로운 것’(new)의 복수형이다. 한때 ‘북(N)-동(E)-서(W)-남(S) 사방에서 전해오는 기별을 한데 모은 소식’이란 그럴듯한 주장에 솔깃했던 적이 있었지만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의 같은 뜻 표현도 ‘새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얻은 소득은 ‘뉴스의 어원 확인’만이 아니었다. ‘동서남북’을 서양에서는 ‘북-남-동-서’ 순으로 꼽는다는 것이다.

동가식서가숙, 동분서주, 동문서답, 동서고금처럼 방향을 짚을 땐 언제나 ‘동’(東)이 ‘서’(西)에 앞선다. 남남북녀, 남전북답(南田北畓, 논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뜻)에서 보듯 ‘남’(南)은 ‘북’(北)보다 앞선다. 우리 지도와 사전엔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북아시아만 있을 뿐 ‘남동(남서/북동)아시아’는 없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방언 이야기>는 ‘동남 방언’, ‘서남 방언’,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제주 방언’으로 나눠 설명한다. 미국 델타항공에 합병된 ‘노스웨스트항공’(NWA)은 영어 순서(북-서)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서북항공’으로 불렸다. 자석을 다른 말로 ‘지남철’(指南鐵)이라 하는 것도 새겨볼 만하다. 방위를 매길 때 우리는 동-서-남-북 순으로 꼽은 것이다.

말은 문화다. 문화에서 말이 비롯한다. 방위 순서에도 문화가 담겨 있다. 서양의 ‘북동아시아’(Northeast-)를 우리 언어문화에 맞춰 ‘동북아시아’라 하는 건 그래서다. 유럽 관점에서 나온 ‘극동’(the Far East), ‘근동’(the Near East)이란 명칭은 ‘동아시아’, ‘서아시아’로 바꾼 지 제법 되었다. 영국의 패권이 한창이던 19세기에 등장한 ‘중동’(the Middle East)은 이렇다 할 대체어를 찾기 어렵다. 지리적 경계를 떠나 문화·종교적 무게가 가볍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중동’을 갈음할 말, 뭐가 있을까.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30105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191651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7Jul
    by 風文
    2020/07/07 by 風文
    Views 1814 

    퇴화되는 표현들 / 존댓말과 갑질

  5. No Image 06Jul
    by 風文
    2020/07/06 by 風文
    Views 1898 

    삼인칭 대명사 / '동양'과 '서양'

  6. No Image 05Jul
    by 風文
    2020/07/05 by 風文
    Views 1847 

    鬱陶項(울돌목) / 공짜 언어

  7. No Image 04Jul
    by 風文
    2020/07/04 by 風文
    Views 2047 

    수어 / 닭어리

  8. No Image 03Jul
    by 風文
    2020/07/03 by 風文
    Views 1634 

    마마잃은중천공? / 비오토프

  9. No Image 02Jul
    by 風文
    2020/07/02 by 風文
    Views 1772 

    문어발 / 징크스

  10. No Image 01Jul
    by 風文
    2020/07/01 by 風文
    Views 1780 

    오징어 1 / 오징어 2

  11. No Image 24Jun
    by 風文
    2020/06/24 by 風文
    Views 2065 

    국방색 / 중동

  12. No Image 23Jun
    by 風文
    2020/06/23 by 風文
    Views 1686 

    돔 / 식해

  13. No Image 22Jun
    by 風文
    2020/06/22 by 風文
    Views 1665 

    ‘○○○ 의원입니다’ / ‘영업시운전’

  14. No Image 21Jun
    by 風文
    2020/06/21 by 風文
    Views 1476 

    -시- ① / -시- ②

  15. No Image 18Jun
    by 風文
    2020/06/18 by 風文
    Views 1709 

    멀쩡하다 / 내외빈

  16. No Image 17Jun
    by 風文
    2020/06/17 by 風文
    Views 1511 

    전통과 우리말 / 영애와 각하

  17. No Image 16Jun
    by 風文
    2020/06/16 by 風文
    Views 1457 

    전설의 마녀, 찌라시 / 지라시

  18. No Image 15Jun
    by 風文
    2020/06/15 by 風文
    Views 1450 

    국어 영역 / 애정 행각

  19. No Image 11Jun
    by 風文
    2020/06/11 by 風文
    Views 1670 

    황금시간 / 우리말 속 일본어

  20. No Image 10Jun
    by 風文
    2020/06/10 by 風文
    Views 1577 

    웨하스 / 염장

  21. No Image 09Jun
    by 風文
    2020/06/09 by 風文
    Views 1368 

    한글박물관 / 월식

  22. No Image 08Jun
    by 風文
    2020/06/08 by 風文
    Views 1394 

    美國 - 米國 / 3M

  23. No Image 07Jun
    by 風文
    2020/06/07 by 風文
    Views 1850 

    찜갈비-갈비찜 / 영란은행

  24. No Image 06Jun
    by 風文
    2020/06/06 by 風文
    Views 1297 

    8월의 크리스마스 / 땅꺼짐

  25. No Image 05Jun
    by 風文
    2020/06/05 by 風文
    Views 1566 

    와이로 / 5678님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