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5.05 11:48

아무 - 누구

조회 수 64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무-누구

보름 전 이 자리를 통해서 “섬뜩한 느낌 주는 ‘살인 진드기’라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이후 ‘진드기’(ㅈ 일보, ㅊ 교수), ‘공포의 작명’(ㅈ 일보, ㅇ 논설위원) 등의 제목으로 비슷한 뜻을 담은 칼럼이 나왔다. 줄기는 같아도 풀어내는 방식은 달랐다. 동물생태학자와 기자답게 전공과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담아 썼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를 두고 ‘누구’라도 떠들 수 있지만 논리를 갖춰 매체에 글을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엊그제 라디오에서 ‘기미, 주근깨 따위에 효과가 있다’는 치료제 광고가 나왔다. ‘(피부 고운) 공주는 아무나…’ 하는 대목에 언어 직관을 거스르는 내용이 있었다. ‘…아무나 될 수 없지만(이 치료제를 바르면 가능하다)’이 아닌 ‘(공주는) 아무나 될 수 있다’는 문장으로 끝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방송”이란 금언에 익숙해서였을지 모른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책’처럼 유사한 보기가 많았으니까.

‘아무(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르는 인칭 대명사)’는 일반적으로 ‘누구’와 뜻 차이가 없이 쓰인다. ‘나, 라도와 같은 조사와 함께 쓰일 때는 긍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하기도 하는 게 ‘아무’이지만 ‘흔히 부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표준국어대사전)하기에 피부 치료제 광고가 낯설게 들린 것이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은) 피었다’를 두고 이틀을 고민하다 ‘꽃은 피었다’로 결론 내렸다. ‘-이’는 사실을 진술한 문장, ‘-은’은 주관적인 ‘그만이 아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같은 듯 비슷한 표현도 상황에 맞춰 제대로 쓰는 게 바른 말글살이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561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209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6984
3012 풋 / ‘열’(10) ①, ‘열’(10) ② 風文 2020.05.10 1616
3011 백열 / 풋닭곰 風文 2020.05.09 1486
3010 표준발음, 구명동의 風文 2020.05.08 1511
3009 위탁모, 땅거미 風文 2020.05.07 1452
3008 ‘엘씨디로’ / 각출-갹출 風文 2020.05.06 1848
» 아무 - 누구 風文 2020.05.05 642
3006 뒷담화 風文 2020.05.03 887
3005 살인 진드기 風文 2020.05.02 1250
3004 배뱅잇굿 風文 2020.05.01 814
3003 지슬 風文 2020.04.29 1270
3002 벌금 50위안 風文 2020.04.28 1278
3001 간판 문맹 風文 2014.12.30 24166
3000 레스쿨제라블, 나발질 風文 2014.12.29 24023
2999 휘거 風文 2014.12.05 24611
2998 CCTV 윤안젤로 2013.05.13 27642
2997 새 학기 단상 윤안젤로 2013.04.19 25706
2996 나, 본인, 저 윤안젤로 2013.04.03 24018
2995 목로주점을 추억하며 윤안젤로 2013.03.28 19591
2994 봄날은 온다 윤안젤로 2013.03.27 19661
2993 잔떨림 윤안젤로 2013.03.18 2055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