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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1 22:35

쳇바퀴 탈출법(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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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탈출법(1)

띄어쓰기 원칙은 간단하다. ‘단어면 띄우고 단어가 아니면 붙여 쓰라!’ 너그럽게도 보조용언이나 명사를 나열할 땐 띄우든 붙이든 다 허용된다. ‘먹어 두다, 먹어두다’ 모두 되고, ‘서울시장애인복지관,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 둘 다 괜찮다(‘서울시장 애인 복지관’으로 읽힐 게 걱정이면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으로 쓰겠지만).

간단해 보이지만 어렵다. 무엇보다 뭐가 단어인지 아닌지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 관형사, 의존명사는 띄어 쓰고, 접두사, 접미사, 조사, 어미는 붙여 쓴다. 하지만 관형사와 접두사의 경계가 흐릿하고, 의존명사와 조사, 접미사, 어미의 구분도 모호하다. 더구나 두 단어가 합하여 한 단어로 굳어진 합성어에 대한 판단이 들쑥날쑥하다. 안 믿기겠지만, ‘띄어쓰기’는 붙여 쓰고, ‘띄어 쓰다’는 띄어 쓴다! 왜냐고? 영웅호걸들의 설명은 이렇다. ‘띄어쓰기’는 한 단어이고, ‘띄어 쓰다’는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 달리 말해, ‘띄어쓰기’는 사전에 올라 있고, ‘붙여 쓰다’는 사전에 없기 때문. 사전은 왜 그러냐고? ‘띄어쓰기’는 한 단어이고, ‘띄어 쓰다’는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라니까!

이런 예는 해수욕장에서 조개껍질 줍는 것보다 찾기 쉽다. ‘흠잡다’는 붙여도, ‘자리 잡다’는 띄운다. ‘병들다, 힘쓰다’는 한 단어지만, ‘바람 들다, 물 쓰다’는 두 단어다. ‘욕먹다, 마음먹다’는 한 단어, ‘나이 먹다, 돈 먹다, 밥 먹다, 꿀 먹다’는 두 단어. ‘달라붙다’는 붙이되, ‘엉겨 붙다’는 띄어 쓸 것! 왜? 한 단어가 아니라니까!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할까?


쳇바퀴 탈출법(2)

거기 누구 없소? ‘뛰어오르다’는 한 단어이고 ‘튀어 오르다’는 한 단어가 아닌 이유를 말해줄 사람. ‘힘없다’는 붙이고 ‘힘 있다’는 띈다는 걸 설명해줄 사람. ‘지난주’는 붙이지만, ‘이번 주, 다음 주’는 띄어 쓰는 연유를 알려줄 사람.

‘한 단어로 굳었다’는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판단이 다르고 유동적인데도 어느 하나로 정해야만 안심하는 사회적 강박증. 게다가 그런 판단을 누군가에게 모두 떠넘겨왔다는 것. 가시적으로는 사전과 전문가이고 비가시적으로는 국가.

영어와 비교해 볼까. ‘웰빙(웰비잉)’을 어떻게 쓸까? 셋 중 하나. well being, wellbeing, well-being. 책 800만권을 디지털화하여 단어의 사용 빈도와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구글 엔그램뷰어를 써 봤더니, 2019년 기준으로 well being이 1회 쓰일 때, wellbeing은 9회, well-being은 50회 쓰였다. 나라면 well being보다는 well-being을 쓸 테다. 현실세계에서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수집하여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걸 참고하여 자기 글에 반영한다.

설마 우리 사전도 사람들이 ‘힘없다’는 붙여 쓰고, ‘힘 있다’는 줄기차게 띄어 쓰므로 저렇게 쓰라고 해놓았을까? 사람들이 말을 어떻게 쓰는지 계속 관찰하고 수집하여 반영한 걸까? 도리어 전문가들의 흔들리고 논쟁적인 주장을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나 철칙으로 받들고 있는 건 아닐까?

사전만 탓하려는 게 아니다. 뭔가 더 크고 깊게 잘못된 것 같다. 나는 해법을 민주주의에서 찾고 싶은데. (계속)


쳇바퀴 탈출법(3)

달포 전에 책을 하나 냈다. 띄어쓰기 원칙을 엄히 지켜 교정지를 빨갛게 고쳐서 갔다. ‘부드러운 직선’을 닮은 편집자는 난감해했다. 교정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오. 독자가 읽기 편하게 하는 게 원칙이오! 그 원칙이 뭐요? 웬만하면 붙여 쓰는 것이라오. ‘죽어 가는’보다는 ‘죽어가는’이 잘 읽힌다는 것. 앙심이 생기기보다는 그 말이 반가웠다. 독자 본위라!

이상적으로 말해 사전 편찬자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겸손히 수집하고 이를 사전에 주기적으로 반영한다. 그렇다면 저자, 기자, 편집자 등 모든 글쟁이들은 말의 관습을 만드는 주체다. 모든 책임을 사전에 떠넘기거나 전적으로 기댈 필요가 없다.

철자법은 완벽하지 않다. 사전은 늘 과거형이다. 말의 세계에는 고착과 생성이 공존한다. 그러니 함께 순환의 질서를 만들어가자. 변화에 둔감한 체제나 제도는 따로 바꾸더라도, 현장에서 어떻게 쓰는 게 잘 읽힐지 열심히 언어실험을 감행하자.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코너에 “‘목 넘김’과 ‘목넘김’ 중 뭐가 맞나요?”라 묻고, ‘목 넘김’이 맞다는 답이 달리면 얌전히 그 명령을 따르는 걸로 소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나의 독자라면 ‘목 넘김’이 잘 읽힐지, ‘목넘김’이 잘 읽힐지 판단하면 어떨까. 각자의 감각대로 시도한 언어실험이 쌓이고 쌓여야 내일의 관습이 된다.

띄어쓰기에도 엘리트주의가 아닌,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은 묻고 국가는 답하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한쪽은 시민, 한쪽은 사전이 비슷한 무게로 오르내리는 시소게임이 되어야 한다. 언어민주주의는 글쟁이들의 줏대와 깡다구로 자란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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