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07 23:25

일고의 가치

조회 수 68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일고의 가치

일고(一考)라는 말은 한번 고려해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일고를 해 보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보다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자주 쓰인다. 상대의 주장이나 의견을 뿌리째 부정하는 말이다. 겉으로는 격조 있는 표현 같으면서도 대단히 결기 있고 서슬이 퍼런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에는 적절할 수 있겠지만 대화의 끈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자승자박이 된다. 대화를 이어나갈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경우에는 쓰기에 적절치 못하고, 좀 완고해 보이는 선비들이나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외골수 사상가들이 쓴다면 그럴듯할 것 같다.

이보다 좀 유연해 보이는 표현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이다. 대개 융통성이나 자율권이 별로 없는 공직자들이 자주 쓰는 것 같다. 이러한 표현도 지속적인 대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보다는 약간의 여유 공간이 엿보인다. 이럴 경우에는 제삼자의 중재를 거치면 타협의 실마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는 ‘협치’라는 말이 꽤 많이 사용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협애하게 빠져 있지 말고 좀 통 큰 ‘공동체 정치’를 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한 협치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통로를 지속적으로 확보해두는 것이다. 곧 상대방의 발언이나 주장에 대해 최소한 일고의 가치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배수진이니 되돌아갈 다리를 불사른다느니 하는 것은 무인의 용맹함을 드러내는 전투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협치를 위해서 최소한으로 공유해야 할 요소는 바로 ‘일고의 가치’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29803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76626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1390
    read more
  4. 자백과 고백

    Date2022.01.12 By風文 Views767
    Read More
  5. 오염된 소통

    Date2022.01.12 By風文 Views823
    Read More
  6. 공화 정신

    Date2022.01.11 By風文 Views961
    Read More
  7. 띄어쓰기 특례

    Date2022.01.11 By風文 Views1146
    Read More
  8. 올바른 명칭

    Date2022.01.09 By風文 Views627
    Read More
  9. 한자를 몰라도

    Date2022.01.09 By風文 Views815
    Read More
  10. 일고의 가치

    Date2022.01.07 By風文 Views680
    Read More
  11. 할 말과 못할 말

    Date2022.01.07 By風文 Views792
    Read More
  12. 공적인 말하기

    Date2021.12.01 By風文 Views890
    Read More
  13. 더(the) 한국말

    Date2021.12.01 By風文 Views684
    Read More
  14. 지명의 의의

    Date2021.11.15 By風文 Views1019
    Read More
  15. 유신의 추억

    Date2021.11.15 By風文 Views790
    Read More
  16. 주어 없는 말

    Date2021.11.10 By風文 Views712
    Read More
  17. 국민께 감사를

    Date2021.11.10 By風文 Views872
    Read More
  18. 방언의 힘

    Date2021.11.02 By風文 Views980
    Read More
  19. 평등을 향하여

    Date2021.11.02 By風文 Views983
    Read More
  20.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Date2021.10.31 By風文 Views653
    Read More
  21. 외부인과 내부인

    Date2021.10.31 By風文 Views993
    Read More
  22. 개헌을 한다면

    Date2021.10.31 By風文 Views623
    Read More
  23. 소통과 삐딱함

    Date2021.10.30 By風文 Views659
    Read More
  24. 말의 미혹

    Date2021.10.30 By風文 Views806
    Read More
  25. 난민과 탈북자

    Date2021.10.28 By風文 Views78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