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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글씨

시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둥, 시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시장이 이렇게 막강하게 영향력을 자랑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에 내재한 ‘합리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장의 비정함을 소리 높여 외쳐보아도 시장은 보편적인 ‘이익’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정직한 태도를 가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합리성은 판매자에게나 고객에게나 동일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전제가 흔들리면 그 시장은 곧 시장 바깥의 정치적 권력에 의해 역공을 당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시장의 합리성은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시장은 ‘공정한 거래’에 의해 지배되어야 그 합리적 지배의 정당성을 보장받게 된다. 종종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부자유스러운 규제를 만들기도 한다.

공정한 시장을 위하여 생산자는 상품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공정한 어휘’와 ‘올바른 맞춤법’이 사용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시장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즘의 몇가지 문제는 문법이나 맞춤법의 문제가 아니라 글씨의 크기에서도 나오고 있다. 돋보기를 써도 알아볼까 말까 한 작은 글자로 상품의 사용법이나 성분, 주의 사항, 생산 날짜, 유효 기간 등을 적어놓았으니 어느 한가한 소비자가 ‘합리적 시장’을 위하여 돋보기를 꺼내 들겠는가?

고객들에게 당연히 제시해야 하는 중요 정보 사항을 이렇게 깨알 같은 크기로 적어놓는 것은 사실상 상품 정보를 차단하는 행위이다. 일종의 불공정 상행위인 것이다. 진정 시장의 합리성을 완성시키고자 한다면 이대로는 곤란하다. 앞으로 ‘중요 정보’로 판단되는 내용들은 반드시 어느 정도의 크기 이상으로 표기하도록 하는 법률적인 강제도 있어야 할 듯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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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과 못할 말

우리는 보통 누구든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그렇다. 명예 훼손이나 거짓말할 자유는 빼고 말이다. 더군다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그 분야에서 양심적으로 할 말은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일단은 옳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무리 전문적으로 옳다는 신념이 있더라도, 그 말이 남에게 큰 상처가 된다면, 또 약자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면 어쩔 것인가? 또 갈등을 극복하려 한 말이지만 갈등을 증폭할 요인이 섞여 있다면 어쩔 것인가? 세상이 특정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단선적이지만은 않다. 매우 복합적이고 포괄적이다.

1980년대부터 통일 이후까지 독일의 연방대통령직을 맡았던 바이츠제커는 매우 품위 있는 연설로 유명했다.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인들에게 지나친 공격적 행위를 일삼자 독일의 지식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각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그 말을 삼가야 할 사람들이 있는 법”이라는 유명한 연설로 분위기를 잠재웠다. 적어도 독일인들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절대로 함부로 비판할 자유는 없다는 것, 그만큼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가 무겁기 한량없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 이후 독일은 조용해졌고 독일 정치는 국제적 갈등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의 경제정책 책임자의 상식적인 발언이 안타깝게 논쟁에 휘말렸다. “모두가 강남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공공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소모적인 갈등은 피하도록 했으면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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