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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의 힘

대통령의 나들이를 보도하다가 잇달아 방송 사고를 내는 것을 보니 무척 오래전 사고를 또 되돌아보게 된다. 1950년대에 일어난 수준 이하의 활자 오식 사고였다. 어느 신문사에서 한자로 ‘대통령’이라고 인쇄해야 하는데 실수로 개 견(犬) 자의 ‘견통령’이라고 식자를 해버린 것이다. 신문사 대표가 구속되기까지 했었다.

요즘은 언어 규범 체계도 정비되고 편집과 인쇄의 첨단화가 이루어진 마당에 아직도 오류 소동이 일어나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도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림 문서에서 사고가 났다. 구겨진 태극기만이 문제가 아니라 매체의 정보 전달과 검증 체계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꽤 오래전부터 언론계에서는 ‘교열 부서’를 없애고 외주화에 힘썼다. ‘그까짓’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무에 그리 중요한가 싶었던 모양이다. 정보화 기술의 진전이 교열 부서를 만만해 보이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 전달의 고도화로 단순 맞춤법 정도가 아니라 정보 경로, 저작권, 그림 문서의 출처 등 과거보다 교열 대상이 폭증했다. 활자를 쓸 때보다 더 큰 대형 사고가 나기 쉬워진 면도 있다.

사실 언론 매체처럼 다량의 언어 정보를 생산하는 기관일수록 ‘유능한 교열팀’이 더욱 필요하다. 기사의 언어적 적절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회적 감수성’을 문장에 반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오히려 교열 부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언론 매체는 편집의 자유도 필요하지만 언어에 대한 책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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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시대상

꽤 널리 사용되었는데 어느 결엔가 사람들이 쓰지 않게 되면서 사라져 가는 말들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사쿠라’라는 말이 허다히 사용됐고 80년대만 해도 ‘다방’에 가면 ‘레지’라는 종업원들이 차 시중을 들었다. ‘북한’을 가리켜 보통 ‘북괴’라고 했다. 넘치도록 흔하게 쓰던 말들인데 이젠 마치 근대 이전의 어휘처럼 느껴진다.

교실에 아이들이 넘쳐나고 버스에는 승객들이 타져나갈 듯해서 교실과 버스 모두 ‘콩나물시루’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시장에는 ‘미제’와 ‘일제’ 물건이 더 인기가 많았고, ‘양키 물건’ 파는 아줌마들도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구호가 여기저기 휘날렸고 ‘전매청’ 직원들은 ‘양담배’ 단속을 다녔다.

일반적으로 어휘가 많을수록 좋은 일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돌이켜보니 그동안 사라져 간 어휘가 그리 아깝거나 아쉬운 말들이 아니다. 추억에 담아둘 만은 하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고달픈 단어들이었기 때문이다. 없어져 준 게 고맙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언어도 진화와 도태가 필요하다.

지금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먼 훗날 지긋지긋했던 말로 기억에 남을 것은 무엇이며, 없어져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될 어휘는 무엇일까? 아마도 갖가지 혐오 발언, 갑질 언어, 차별 언어, 막말과 독설, 그리고 각종 망언 등, 이러한 말들의 목록이 그 언젠가 지금의 시대를 평가하고 규정하는 도구가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말들 때문에 지금 이 시대가 되돌아보기 싫은 ‘어둠의 시대’로 낙인찍히지 말았으면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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