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5.23 13:46

과잉 수정

조회 수 115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과잉 수정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이왕이면 멋있게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그냥 편하게 말하면 될 것을 지나치게 규범을 의식하다가 오히려 이상한 말이 나온다. 이런 것을 ‘과잉 수정’이라고 한다. 특히 방언 사용자가 표준어를 말할 때, 외국어를 배울 때 자주 일어난다. 잘 모르는 지식으로 아는 척하다가도 일어날 수 있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주문한다. “파인[pain]주스요” 하고 파인(‘pine’)이라고 발음을 제대로 했는데, 상대방이 “아, 네. 파인[fain]주스요?” 하며 ‘fine’에 해당하는 발음을 하면 그 순간 그것이 더 정확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영어를 배울 때 그 부분이 늘 우리의 취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외래어를 쓰면서, 우리의 ‘ㅍ’ 발음이 종종 영어의 ‘f’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과잉 발음을 하게 된다.

그러나 딱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외국어 혹은 외래어를 사용할 때 유난히 ‘본토 발음’, 더 나아가 미국식 발음에 집착을 한다. 그러한 발음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더 나은 교육을 받았고, 더 많은 지식을 가졌고, 또 그러하니까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을 거라는 추측, 그리고 그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뷰티숍이 아니라 미국식 발음에 가까운 ‘뷰티샵’으로, ‘록 음악’도 ‘락’ 혹은 ‘툅’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외래어 표기의 안정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잉 수정 행위의 근저에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는 셈이다. 행여 나의 말투나 발음이 남들한테서 손가락질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말을 이렇게 불편하게 만든다. 말은 소통만이 아니라 지위와 신분을 ‘슬며시’ 보여주는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옷차림이 재력을 과시하는 기능도 하듯이 말이다. 불평등한 사회는 말도 불편하게 만든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5323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184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7000
3214 옹알이 風文 2021.09.03 1171
3213 바람을 피다? 風文 2024.01.20 1172
3212 말로 하는 정치 風文 2022.01.21 1173
3211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1175
3210 귀 잡수시다? 風文 2023.11.11 1176
3209 난민과 탈북자 風文 2021.10.28 1178
3208 새말과 소통, 국어공부 성찰 風文 2022.02.13 1178
3207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風文 2022.09.24 1178
3206 부동층이 부럽다, 선입견 風文 2022.10.15 1181
3205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1182
3204 말끝이 당신이다, 고급 말싸움법 風文 2022.07.19 1182
3203 주현씨가 말했다 風文 2023.11.21 1185
3202 웃어른/ 윗집/ 위층 風文 2024.03.26 1187
3201 돼지의 울음소리, 말 같지 않은 소리 風文 2022.07.20 1188
3200 어떤 문답 관리자 2022.01.31 1189
3199 두꺼운 다리, 얇은 허리 風文 2023.05.24 1189
3198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風文 2022.07.24 1190
3197 통속어 활용법 風文 2022.01.28 1191
3196 정치와 은유(2, 3) 風文 2022.10.13 1191
3195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192
3194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1192
3193 영어 공용어화 風文 2022.05.12 119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