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2399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레스쿨제라블

대한민국 학원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직장인이 숨 돌릴 시간에 적잖은 학생들은 학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학원 다녀온 중학생 딸이 상기된 표정으로 ‘아빠, 그거 봤어?’ 한다. 학원에서 벗들과 함께 본 동영상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레밀리터리블’을 패러디한 ‘레스쿨제라블’이다. ‘거금 120만원’을 들여 한 달 반 만에 만들었다는 작품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와 극적인 재미를 위하여 가상으로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룩 다운’(Look Down)을 ‘야자! 야자!’로 개사해 사실상 ‘타율’인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실상을 드러내며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여고생 판틴 양은 ‘1등급의 꿈’이 사라진 안타까움을 노래하고(I Dreamed a Dream), 장발장 군은 선도부원 자베르와 맞서 “(만난 지) 100일 안 된 여자친구와 헤어질 형편”임을 호소한다(The Confrontation). 재치가 엿보이는 합창 “레드(Red) 빨간 펜 줄치고, 블랙(Black) 핵심요약 정리…”(Red & Black)에 이어, “해도 해도 너무하는 대한민국 입시전쟁/ 하지만 곧 봄이 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교정에 울려 퍼지며 작품은 끝난다.

“지도교사 없이 청소년들이 만든” 기특하고 대견한 작품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자막 실수가 눈에 띄어서이다. ‘그녀의 며리(머리) 핀’, ‘졸업하기길(하길) 기원하며’ 같은 단순 오타에서 생긴 잘못이 그렇다. ‘답지 보고 했잖아/ 남몰래 배껴(베껴) 왔잖아’, ‘돌아가길 바래(바라)’, ‘완전히 삐졌습니다(삐쳤습니다)’처럼 규범에 어긋난 게 또한 그러하다. 교사 감수를 거친 영어자막처럼 한글자막에도 신경 썼으면 금상첨화였겠다. ‘동영상 조회수 30만 넘으면 즉흥공연’을 약속한 학생들의 뜻은 곧 이뤄질 것 같다. 즉흥공연에 맞춰 ‘자막 실수’ 바로잡은 개정판을 기대해 본다.


나발질

나팔은 나팔이고 나발은 나발이다. 원말의 한자 ‘라(喇, 나팔 라), 팔(叭, 입 벌릴 팔)’은 하나지만 두음법칙에 따른 형태가 ‘나팔’이고 이 말소리가 변한 게 ‘나발’이다. ‘관악기의 하나’인 나팔은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된 금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옛 관악기인 나발’을 가리키기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북한에서는 ‘(반드시 악기가 아니어도) 소리가 크게 울려 나오게 만든 기구’도 나팔이라고 한다.(한민족 언어정보화 누리집) 나발은 ‘놋쇠로 만든 긴 대롱같이 만든 악기’이지만 악기가 아닌 것을 이를 때 쓰기도 한다. 나팔과 나발은 뿌리는 같지만 뜻과 쓰임이 다른 것이다.

‘나발’에는 ‘지껄이거나 떠들어대는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뜻도 있다. ‘개나발’은 사리에 맞지 아니하는 헛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병나발’은 (나발 불듯이) 병째로 들이켜 마시는 것이다. ‘죽나발’은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그릇을 들고 훌훌 죽을 마시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북한말이다. ‘나발질’은 무슨 뜻일까. 어제치 여러 매체에서 ‘괴뢰역적들이 개성공업지구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나발질(헛소리)을 하며…’라는 내용의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 담화를 전하며 ‘나발질’을 괄호로 묶어 ‘헛소리’로 풀었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발표한 담화문에 ‘나발’이 들어간 문장은 세 개였다. ‘헛나발을 불어대며…, 모략 나발을 불어대는 것이야말로…, 나발질을 하며…’이다. 북한말 ‘헛나발’은 ‘허튼소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실보다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헛소리’와 비슷한 표현이다. ‘나발질’은 표제어로 오르지 않은 말로,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붙은 ‘나발+질’의 형태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위 담화문에 ‘가소롭기 그지없는 망발질…,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질…’처럼 ‘-질’이 두 차례 더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902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90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628
3410 단추를 꿰다, 끼우다, 채우다 바람의종 2010.05.31 27292
3409 본때없다, 본데없다, 본떼없다, 본대없다 바람의종 2010.10.18 26855
3408 부화가 치밀다, 부아가 치밀다 / 화병, 홧병 바람의종 2010.05.08 26645
3407 자처하다, 자청하다 바람의종 2012.12.04 25948
3406 자잘못을 가리다 바람의종 2012.12.11 25700
3405 새 학기 단상 윤안젤로 2013.04.19 25665
3404 한글 맞춤법 강의 - 박기완 윤영환 2006.09.04 25503
3403 '받다' 띄어쓰기 바람의종 2009.09.18 25295
3402 모자르다, 모자라다, 모잘라, 모자른, 모잘른 바람의종 2010.06.01 25148
3401 차단스 바람의종 2008.02.19 24727
3400 휘거 風文 2014.12.05 24464
3399 오살할 놈 바람의종 2008.02.29 24336
3398 암닭, 암탉 / 닭 벼슬 바람의종 2010.06.16 24216
3397 간판 문맹 風文 2014.12.30 24093
3396 앎, 알음, 만듬/만듦, 베품/베풂 바람의종 2012.01.08 24079
3395 맞벌이, 외벌이, 홑벌이 바람의종 2012.11.23 24056
3394 온몸이 노근하고 찌뿌둥하다 바람의종 2012.12.12 24028
» 레스쿨제라블, 나발질 風文 2014.12.29 23990
3392 나, 본인, 저 윤안젤로 2013.04.03 23967
3391 피랍되다 바람의종 2012.12.21 23755
3390 박물관은 살아있다 2 바람의종 2012.12.10 23687
3389 늘그막, 늙으막 / 늑수그레하다, 늙수그레하다 바람의종 2010.04.02 2350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