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7.05 08:20

우방과 동맹, 손주

조회 수 57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방과 동맹

우리가 살아가면서 친구, 벗, 동무들을 중요하게 여기듯이 국가도 가까운 나라가 있고 먼 나라가 있으며, 그저 무심히 지내는 나라가 있는 것 같다. 가깝게 느끼는 나라를 ‘우방’이라고 일컫는 것 같은데, 우리 경우는 워낙에 고된 냉전을 겪어서 그런지 우방이라 하면 군사적 동맹국을 떠올리게 된다.

오래된 벗에게는 서로를 맺어주는 공감대가 있고 또 공감대를 오래 유지시켜주는 ‘정서적 매개물’이 있다. 공통된 경험이라든지 취향이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이와 달리 동업자나 동료라고 하면 함께 일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관계다. 동맹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친구보다도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가깝지만 이해관계가 엷어지면 남남이 되기도 하고 가차없이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국가 간에도 이런 동맹이나 경쟁이 더 격화될 것이다.

최근 일본과 갈등이 벌어지면서 한-일 관계를 우호국, 우방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 세기 남짓 동안의 여러 사정이 그런 단어 사용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관계를 냉정히 표현한다면 미국을 매개로 한 ‘안보협력국’ 정도가 아닌가 한다. 벗과 같은 우방이라면서 이런 식으로 툭 건드려놓고 신경전만 벌이고, 또 그러다가 시치미 떼고 안보 전략과 정보는 공유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문제에서 진정한 ‘벗’은 있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국가 자체가 이익 추구의 산물이었던 만큼 국가에는 벗으로서의 우방이 아닌 잠정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동맹국만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그 동맹도 일정한 기간만 유효한 것이 정상일 것이다. 국제관계를 냉엄하게 돌아보는 정상적인 시각을 위해서라도 우방이라는 말을 너무 속 편하게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

손주

요즘은 명절이 다가오면 먹는 것, 교통편 등의 화제 못지않게 ‘말’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심심찮게 오간다. 젊은 세대가 손윗세대로부터 결혼이나 취업 이야기 듣기를 몹시 싫어한다든지,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도련님 같은 호칭이 타당한지 등 말이다. 그만큼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인들의 언어적 인권이 중요하듯이 어린이들을 이르는 말도 언어 감수성을 가지고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7~8년 전엔가 ‘손자’라는 말 외에 ‘손주’라는 말도 표준어로 인정을 받았다. 원래 ‘손주’는 ‘손자’라는 말의 비표준형으로 생각되어서 표준어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실제 언어생활에서 ‘손자’는 자녀의 아들만을 가리키는 데 반해 ‘손주’는 자녀의 아들딸 모두를 가리킨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의 표준형 ‘손자’는 마치 가부장적인 단어처럼, 뒤늦게 인정받은 ‘손주’는 마치 성 평등을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떻든 앞으로는 되도록 ‘손주’라는 말을 써서 성별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어 하나 정리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 평등 사회에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인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 첫 손주가 남자아이면 ‘우리 집 장손입니다’ 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앞으로는 여자아이가 맏이로 태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표현을 하면 어떨까? 이제는 굳이 남자만 장손이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또 요즘의 ‘장손’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추어주는 말일 뿐 이렇다 할 실익이 없는 예우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족 내부에서부터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는 기풍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수사적으로 사용해봄직하다. 낡은 전통에서 해방되려면 분명한 ‘의식’과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8726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58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320
3234 비는 오는 게 맞나, 현타 風文 2022.08.02 788
3233 적과의 동침, 어미 천국 風文 2022.07.31 612
3232 노랗다와 달다, 없다 風文 2022.07.29 689
3231 애정하다, 예쁜 말은 없다 風文 2022.07.28 516
3230 공공언어의 주인, 언어학자는 빠져! 風文 2022.07.27 675
3229 날아다니는 돼지, 한글날 몽상 風文 2022.07.26 638
3228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風文 2022.07.25 616
3227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風文 2022.07.24 743
3226 일본이 한글 통일?, 타인을 중심에 風文 2022.07.22 721
3225 3인칭은 없다, 문자와 일본정신 風文 2022.07.21 525
3224 돼지의 울음소리, 말 같지 않은 소리 風文 2022.07.20 697
3223 말끝이 당신이다, 고급 말싸움법 風文 2022.07.19 731
3222 1도 없다, 황교안의 거짓말? 風文 2022.07.17 590
3221 ‘짝퉁’ 시인 되기, ‘짝퉁’ 철학자 되기 風文 2022.07.16 499
3220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風文 2022.07.14 654
3219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522
3218 노동과 근로, 유행어와 신조어 風文 2022.07.12 581
3217 교열의 힘, 말과 시대상 風文 2022.07.11 695
3216 지식생산, 동의함 風文 2022.07.10 831
3215 좋음과 나쁨, 제2외국어 교육 風文 2022.07.08 972
3214 ‘나이’라는 숫자, 친정 언어 風文 2022.07.07 708
3213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風文 2022.07.06 57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