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12.26 07:23

○○노조

조회 수 7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노조

굳은살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말이 굳으면 대상을 별생각 없이 일정한 이미지로 자동 해석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반노조 정서는 말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읊조려 보라.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머리띠, 구호, 삭발, 파업’이 아닌, ‘친구, 맞잡은 손, 비를 피할 큰 우산’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말을 떠올려 보라. 예전엔 ‘어용노조, 민주노조’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부패노조’라는 표현도 등장. 진실을 감추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의미가 이중적인 만큼 효과가 좋다. 이 말은 월급과 복지가 좋은 일부 대기업 노조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조 전체를 특권층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도 있다(영어의 ‘노동 귀족’(labor aristocracy)이란 말은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노조 간부를 뜻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도 노조가 있으면 무조건 ‘귀족노조’다. 노조를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에겐 노조 자체가 부러움과 상실감의 대상이다.

말은 투쟁만큼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악의적 선동이 넘치지만, 우리도 새로운 말을 발명해야 한다. 마치 칫솔처럼, 손난로처럼, 이불처럼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를 찾아내어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니, 송년 모임에 가는 차 안에서라도 ‘노조’의 꾸밈말로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봄이 어떨까. 나는 아직까진 문장 하나만 생각날 뿐. ‘노조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29420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76303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1048
    read more
  4.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Date2023.04.17 By風文 Views823
    Read More
  5. 어쩌다 보니

    Date2023.04.14 By風文 Views964
    Read More
  6. '김'의 예언

    Date2023.04.13 By風文 Views578
    Read More
  7. “김”

    Date2023.03.06 By風文 Views989
    Read More
  8. 울면서 말하기

    Date2023.03.01 By風文 Views665
    Read More
  9.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Date2023.02.27 By風文 Views657
    Read More
  10. 남친과 남사친

    Date2023.02.13 By風文 Views861
    Read More
  11. 국가의 목소리

    Date2023.02.06 By風文 Views994
    Read More
  12. 말의 세대 차

    Date2023.02.01 By風文 Views740
    Read More
  13. ‘통일’의 반대말

    Date2023.01.16 By風文 Views1105
    Read More
  14. 헛스윙, 헛웃음, 헛기침의 쓸모

    Date2023.01.09 By風文 Views853
    Read More
  15. '바치다'와 '받치다'

    Date2023.01.04 By風文 Views765
    Read More
  16. 말하는 입

    Date2023.01.03 By風文 Views773
    Read More
  17. ○○노조

    Date2022.12.26 By風文 Views735
    Read More
  18. 구경꾼의 말

    Date2022.12.19 By風文 Views787
    Read More
  19. 맞춤법·표준어 제정, 국가 독점?…오늘도 ‘손사래’

    Date2022.12.12 By風文 Views1283
    Read More
  20. 평어 쓰기, 그 후 / 위협하는 기록

    Date2022.12.07 By風文 Views1292
    Read More
  21.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Date2022.12.06 By風文 Views818
    Read More
  22.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Date2022.12.02 By風文 Views844
    Read More
  23.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Date2022.12.01 By風文 Views1045
    Read More
  24.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Date2022.11.30 By風文 Views676
    Read More
  25.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Date2022.11.28 By風文 Views101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