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30 00:16

아줌마들

조회 수 66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줌마들

세계 여성의 날을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내 버렸다.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이 대개 이렇게 이날을 보냈을 것이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대의를 거부하지는 않는 사람들도 사실 그 대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유흥가와 상가가 뒤엉킨 시장 골목을 다니다 보면 ‘아가씨 구함’이나 ‘아줌마 구함’ 같은 구인광고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언어적으로만 보면 아가씨는 미혼여성을, 아줌마는 기혼여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언어의 사회적 기능을 본다면 이 두 가지 어휘는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그 두 단어에는 이 땅의 여성들이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 삶의 무게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니 아줌마니 하는 말들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중요 개념인 ‘능력’이라든지 ‘업적’과 ‘경력’ 등의 의미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인격’과 ‘품격’조차 별로 느껴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저 여성으로서의 몸, 일하는 몸만 가리킬 뿐이다. 남성들을 가리키는 어떠한 단어들도 이처럼 비루하지는 않다.

특검이 국정농단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주사 아줌마’니 ‘기 치료 아줌마’니 하는 말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아줌마’라는 말 자체가 합법성이나 전문성 따위를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를 깔고 있다. 아무리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이러한 호칭의 사용이 정당했는지 다시 한번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 단어를 썼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 민감한 주체’로서의 태도를 지닐 필요가 있었다. 온갖 불법행위의 주체였던 사람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걱정해주면서 왜 그 조역들에게는 이렇게 남루한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고 말았는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29303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76133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0923
    read more
  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Date2022.02.01 By風文 Views821
    Read More
  5. 순직

    Date2022.02.01 By風文 Views618
    Read More
  6. 삼디가 어때서

    Date2022.02.01 By風文 Views766
    Read More
  7. 말의 평가절하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625
    Read More
  8. 어떤 문답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826
    Read More
  9. 사저와 자택

    Date2022.01.30 By風文 Views652
    Read More
  10. 아줌마들

    Date2022.01.30 By風文 Views663
    Read More
  11. 태극 전사들

    Date2022.01.29 By風文 Views631
    Read More
  12. 정치의 유목화

    Date2022.01.29 By風文 Views900
    Read More
  13. 외래어의 된소리

    Date2022.01.28 By風文 Views717
    Read More
  14. 통속어 활용법

    Date2022.01.28 By風文 Views698
    Read More
  15. 말과 공감 능력

    Date2022.01.26 By風文 Views630
    Read More
  16. 정당의 이름

    Date2022.01.26 By風文 Views702
    Read More
  17. 법과 도덕

    Date2022.01.25 By風文 Views707
    Read More
  18. 연말용 상투어

    Date2022.01.25 By風文 Views652
    Read More
  19. 말로 하는 정치

    Date2022.01.21 By風文 Views788
    Read More
  20. 야민정음

    Date2022.01.21 By風文 Views694
    Read More
  21. 쇠를 녹이다

    Date2022.01.15 By風文 Views1172
    Read More
  22. 지도자의 화법

    Date2022.01.15 By風文 Views1030
    Read More
  23.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중소기업 콤플렉스

    Date2022.01.13 By風文 Views870
    Read More
  24. 주권자의 외침

    Date2022.01.13 By風文 Views877
    Read More
  25. 마녀사냥

    Date2022.01.13 By風文 Views83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