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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외국어 학습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 배우기를 꺼린다.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어서다. 어려서 혹은 젊어서 새것을 배우는 것은 청운의 큰 뜻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나이 들어서 배우는 것은 그 의미와 가치에 의문을 많이 품는다. 특히 뒤늦게 시작하는 외국어 공부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라고들 생각한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도 발음 습득과 교정이 쉽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통달한 발음이 아니면 여간해서 낯선 발음을 구현하기 어렵다. 단어를 외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매일 열심히 새로 배워가면서도 어제 배운 것은 잊어버려간다. 어휘 축적이 만만치 않다. 문법에 대한 이해는 꽤 따라갈 수 있으나 그러한 문장이 입 밖으로 술술 나오지는 않는다. 이러한 학습을 과연 꾸준히 해나갈 가치가 있는 걸까?

매끄러운 발음, 풍부한 어휘, 복잡한 문장구조 사용 등을 중심으로 본다면 성인의 외국어 학습은 효율성이 매우 낮다.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러한 요소들은 성인에게 가장 불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특기는 다른 부문에 있다. 바로 상황 판단 능력이다. 성인들은 산전수전을 폭넓게 겪은 덕분에 상황을 무척 재빠르게 파악한다. 따라서 성인의 외국어 학습은 상황과 맥락을 중심으로 전형적 표현에 중점을 두는 게 유리하다.

또 다른 중요한 조언 하나. 성인들이 조그마한 종잇조각에 이것저것 메모해서 더듬거리면서 열심히 외국어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긍정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인다. 어딘가 틀렸다고 키득거리면 오히려 점잖지 못한 짓이 된다. 곧 성인의 외국어 능력은 잽싸게 나오는 ‘말’보다는 ‘상황 파악’과 ‘점잖은 태도’로 ‘맥락과 소통 과정’을 지배해야 한다. 능수능란하게 혀를 잘 굴리는 젊은이들의 말보다 더 넉넉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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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한 치밖에 안 되는 작은 쇠붙이 하나로 사람을 죽인다는 꽤 무서운 뜻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는 잘 쓰이지 않고, 말에 대해서 주로 쓰이는 신기한 사자성어가 있다. 바로 ‘촌철살인’이다. 뜻인즉슨 짤막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거나, 아니면 큰 감동을 주는 경우를 가리킨다.

반짝이는 촌철살인은 다양한 비유, 의미 모순, 뜻 겹침, 유추, 동음이의어 등에서 나타나는 언어 현상을 바탕으로 구태의연한 표현의 빈틈을 찌르는 언어 사용 전략이다. 강점으로는 기존의 언어적 인습, 상투적 논리 등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야무진 혀 놀림에 얼떨결에 넘어가버리는 경우다. 근본적으로는 말한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메마른 이 땅의 진보 정치계에서 대중의 마음을 울렸던 큰 정치인이 세상을 하직했다. 많은 매체가 그의 어록을 언급하며 추모하고 아까워한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평범한 말솜씨 가지고도 얼마든지 정치의 정곡을 찌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그가 사용한 단어들은 그리 까다롭거나 추상적이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말에는 주목하면서도 그 말로 이루어내려 한 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그의 ‘말’만이 아니라 말에서 드러난 그의 ‘태도’이다. 더 나아가 그 말을 통해 하려던 ‘행동의 의미’를 보아야 한다. 언어는 행동의 한 부분이자 국면이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 곧 실천을 못 보고 그의 말만 되뇐다면 그의 촌철살인은 유쾌한 유머의 수준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의 말에서 나타난 실천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그에게 진 마음의 빚을 제대로 갚는 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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