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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10:18

웨하스 / 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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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다쿠아즈’, ‘카스타드’, ‘갸또’, ‘후렌치파이’, ‘칙촉’, ‘엄마손파이’…. 지난주 회의 탁자에 놓여 있던 과자 이름이다. 바른 외래어 표기를 국립국어원에 물었더니 ‘정답’이 돌아왔다. ‘다쿠아즈’(dacquoises, 달걀흰자에 설탕을 섞은 머랭 사이에 버터크림을 발라 겹친 디저트), ‘커스터드’(custard, 우유나 달걀노른자에 설탕 따위를 섞어 크림처럼 만든 과자), ‘가토’(gateau, 케이크·과자), ‘프렌치파이’…. ‘칙촉’은 촉촉한 초콜릿 과자로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 ‘엄마손 파이’는 ‘엄마손’이 들어간 게 아니라(‘애플파이’ 같은 게 아닌!) ‘엄마의 정성’으로 만든 것을 드러내기 위한 이름일 것이다.

 과자 이름에 눈길이 간 까닭은 지난주 ‘웨하스 파동’이 우려된다는 얘기를 한 뒤끝이기 때문이다. 웬 ‘웨하스 파동’? <표준국어대사전>은 ‘웨하스’를 ‘웨이퍼의 잘못’으로 단언한다. ‘웨하스’(ウエハ-ス)는 유럽에서 건너온 과자 ‘웨이퍼’(wafer)의 일본 발음을 딴 것이기 때문이다. 웨이퍼는 ‘집적회로를 만들 때 쓰는 실리콘 단결정의 얇은 판’처럼 얇은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반도체에서는 ‘웨이퍼’, 과자에선 ‘웨하스’로 통하는 ‘두 얼굴의 wafer’와 비슷한 팔자인 게 또 있다.

‘대장균 후레이크’로 세간을 시끄럽게 한 ‘시리얼’의 한 종류는 ‘(콘)플레이크’(flake)가 맞고, 1961년에 첫 제품이 나온 ‘크라운 산도’는 ‘-샌드’(sand)로 적어야 외래어표기법에 맞는다. 포르투갈에서 전래한 ‘카스테라’는 ‘카스텔라’(castela)가 되어야 하고. 일본어 찌꺼기 묻어 있는 과자 이름은 어찌해야 할까. 표기를 몽땅 바꾼다? (관용 표현이니) 사전이 받아들인다? ‘설기과자’(카스텔라), ‘켜과자’(웨이퍼)처럼 다듬어 쓴다? 결정은 사전 편찬자의 몫이다. 사전을 손본다면 ‘카스텔라’의 포르투갈어 표기로 밝힌 ‘castella’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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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

지난 목요일 오후에 ‘최고위원 사퇴 속보’ 관련 얘기를 들었다. ‘속보 홍수 시대’에 정치인 당직 사퇴 소식은 ‘속보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뜬금없는 발표의 속뜻에 모이던 관심은 이내 언어 표현으로 쏠렸다. ‘대통령한테 염장을 뿌렸다’는 게 그것이다. 어느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는 “‘염장 지른다’는 표현은 하는데, ‘염장을 뿌린다’는 건 무슨 말인가?” “‘염장을 뿌린다’는 표현은 없지만, 굉장히 강한 표현”이라며 ‘사퇴 선언’보다는 ‘염장’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태 전 국립국어원 누리집에는 “‘염장을 지르다’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서는 안 될 표현”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어비속어사전>(김동언 편저, 1999)에 ‘화나게 하다’라는 뜻의 욕으로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염장 지르다’를 쓰면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여기에 기대면 ‘염장 지르다(뿌리다)’는 어원과 뜻풀이를 떠나 공공 언어로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 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염장’ 표제어 9개를 제시하지만 위 쓰임에 딱 들어맞는 뜻은 없다. 항간에 떠도는 ‘염장(지르다)’의 유래 또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염통(염)+창자(장, 腸)’는 조어가 어색하다. ‘고문할 때 소금(염, 鹽)과 간장(장, 醬)을 상처에 뿌렸기 때문’이라는 설은 ‘상처에 간장 끼얹다’에서 깬다! ‘심복인 염장이 찌른(지른) 칼에 죽은 장보고’를 기록한 <삼국유사>에서 왔다는 주장은 ‘천년의 공백’이 설득력을 잃게 한다. ‘염장 지르다’라는 표현은 1990년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염장지르다’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만히 있는 곳을 들쑤시어 괴롭고 힘들게 하다’로 풀이한다. 요즘 청춘의 ‘염장(질)’은 애인 없는 이들에게 보이는(들리는) 애정 표현을 가리킨다. ‘사랑한다’는 말만 100여차례 반복하는 ‘염장송’을 들어보면 뭔 말인지 안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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