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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6. 마리 앙투아네트와 패션 민주화

       평생을 조롱 당하며 우산을 보급한 사람

  우산은 지위나 신분의 높이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34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태어난 부채의 한 변형이다. 왜냐하면 우산은 사막의 나라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산(umbrella)은 라틴어로 그림자를 뜻하는 'umbra'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로도 알 수있듯이 몇 세기 동안 주로 차양의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여러 사회에서 우산 하인은 부족의 우두머리 뒤를 따르며 그의 머리를 태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걷는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습관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1200년대에 이집트의 우산은 종교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은 하늘의 여신인 누트의 신체로 만들어졌으며, 누트가 거대한 우산처럼 땅을 덮어 발과 손끝만으로 대지를 만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별이 가득 달린 여신의 복부가 밤하늘을 낳았다고 믿었다. 사람이 만든 우산은 누트 여신의 지상에서의 체현으로, 고귀한 것의 머리에만 쓰는 것이었다. 왕의 우산 그림자 절반에 서도록 초대받는 일은 커다란 명예였으며 그 그림자는 왕의 보호를 나타냈다.

  우산은 부채와 마찬가지로 야자 잎, 깃털, 파피루스 등으로 만들었다.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은 이집트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으나 우산은 여성의 것으로 생각했는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 작가들이 이 차양막을 가진 남자를 가리켜 "여자 같다"고 표현하며 웃음거리로 기록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몇 세기에 걸쳐 그리스 남성이 남들 앞에서 우산을 써도 괜찮은 경우는 동반한 여성을 위해 쓸 때뿐이었다. 여성의 경우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신분이 높은 그리스 여성은 하얀 파라솔을 썼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파라솔 축제에 참가했는데 이것이 아크로폴리스에서 열린, 풍작을 기원하는 행진이다. 방수를 위해 종이 차양에 기름을 바르기 시작한 것은 파라솔에 관심이 많던 로마 여성들이다. 로마의 역사가는 실외 원형 극장에 내리는 이슬비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시야를 가로막는 우산을 씀으로서 남성 구경꾼들에게 매우 폐를 끼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공 행사가 열리는 장소에서 비우산의 사용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1세기에 이 문제는 황제 드미티아누스의 앞으로 이끌려 나왔는데, 황제가 여성편을 들자 여성들이 공공 장소에서 우산을 쓰는 일이 허용되었다.

 18세기 유럽에서 파라솔과 우산은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의 복식품이라고 여겨졌다. 미국에서는 훨씬 오랫동안 그러한 생각이 이어졌다. 그동안 남성은 모자를 쓴 채 비에 젖은 생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를 심각하게 피하는 일은 남성에게 어떤 금기 사항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16세기 프랑스의 인기 작가인 앙리 에티엔은 우산을 쓴 남성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견해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만약 프랑스 여성이 우산을 쓰고 있는 남성을 보면 여자 같은 남자라고 경멸할 것이다."

 우산을 남성용의 훌륭한 우산으로 만든 것은 영국 신사인 조나스 헌웨이다. 그가 이것을 이룩한 것은 한결같이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사람들의 조롱과 굴욕을 견딘 결과였다. 러시아나 극동과의 무역으로 부를 쌓은 헌웨이는 38세에 은퇴한 뒤 병원이나 고아원 건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우산의 보급에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다. 1750년부터 헌웨이는 비가 내리건 해가 내리쬐건 우산 없이 외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센세이션이 일었다. 옛날의 사업 파트너들은 당장 그를 여자 같은 남자라고 깔보기 시작했다. 마을의 건달들은 그를 조롱했다. 마차 가게는 우산이 비를 피하는 도구로 세상에 받아들여지면 장사를 못하게 될 것이므로 일부러 마차를 물구덩이로 몰아 헌웨이에게 흙탕물을 튀기곤 했다. 하지만 헌웨이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남은 30년의 생애 동안 계속 우산을 들고 다녔다. 사람들은 점점 비가 내릴 때마다 마차를 부르기보다는 한 번만 투자를 하여 우산을 찾는 편이 싸게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런던에서는 분명한 절약이었다. 경제성 때문인지 아니면 보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오랫동안 우산을 따라다니던 여자 같다는 오명은 반납되었다. 조나스 헌웨이가 1786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우산은 비가 오는 날이면 영국 신사들의 손에 들려 있었고 '헌웨이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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