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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6. 마리 앙투아네트와 패션 민주화

      중세의 고문도구로 보였던 지퍼

  고대에서는 지퍼에 해당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지퍼가 근대에 갑작스럽게 탄생한 것은 아니다. 지퍼는 끈질기고 오랜 기술 개발 끝에 탄생했는데, 이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온 뒤부터 현실화 될 때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것을 사용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또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지퍼는 처음에 단추와 경쟁하는 옷의 고정 도구로 연구된 것이 아니라, 목이 긴 부츠의 옆을 닫는 도구로서 1890년대에 구두의 긴 구두끈을 대신하여 등장했다. 1893년 8월 29일 시카고에 살던 기계기사 위트컴 잿슨은 '클래스프 로커'(열쇠 후크식 지퍼)라는 이름으로 지퍼 특허를 땄다. 당시 특허국의 파일을 보면 잿슨이 발명한 지퍼와 조금이라도 닮은 것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두 개의 클래스프 로커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하나는 잿슨 자신의 부츠에 달려 있었고 또 하나는 잿슨의 동료인 루이스 워커의 부츠에 달려 있었다. 잿슨은 원동기나 철도의 브레이크 등에서 몇 개의 특허를 따낸 실적이 있는 발명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으나, 클래스프 로커에는 아무도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다. 후크(hook 갈고리)와 구멍이 직선으로 이어진, 언뜻 보기에 섬뜩한 이 장치는 시간을 절약하는 근대적인 도구라기보다는 중세의 고문 도구처럼 보였던 것이다.

  잿슨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클래스프 로커를 1893년의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했다. 하지만 이 회장에 몰려든 2천 1백만 명의 관람객들은 세계 최초의 전기식 대관람차와 밸리 댄서, 리틀 이집트가 자랑하는 '쿠티 춤'(허리를 비틀며 추는 춤)으로 몰렸고 세계 최초의 지퍼에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잿슨과 워커가 경영하는 유니버설 파스너 사는 미국 체신부로부터 지퍼가 달린 우편 배낭 20개를 주문 받았다. 하지만 지퍼가 너무 자주 움직이지 않게 되어 우편 배낭은 폐기처분 당했다. 위트컴 잿슨은 이 열쇠 후크식 지퍼를 계속 개량했으나, 이 장치를 완전한 것으로 만든 발명가는 스웨덴계 미국인 기술자 기데온 샌드백이었다. 샌드백은 1913년에 잿슨의 지퍼보다 좀더 작고 가볍고 믿을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의 지퍼이다. 샌드백이 만든 지퍼를 최초로 주문한 것은 미 육군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쓰는 의료품으로 여러 가지 장비에 이용했던 것이다. 일반인들은 부츠나 주머니에 달린 벨트, 담배 주머니 등에 지퍼를 사용했다. 일반인들 옷에 지퍼가 붙여진 것은 대략 1920년 대의 일이다.

  지퍼가 처음부터 특별한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금속 지퍼는 녹이 나기 쉬웠으므로 세탁할 때 떼어 놓았다가 마르면 또다시 붙이는 수고를 해야 했다. 거기다가 지퍼에 대한 지식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단추를 단춧구멍에 끼운다는 사실처럼 손쉬운 것이 아니어서, 지퍼를 잠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옷에 지퍼를 달아 놓고도 그 장치의 사용 방법이나 손질법을 가르쳐 주는 안내서는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 1923년에 B. F. 굿리치 사는 이 새로운 '후크가 없는 파스너(fastener)'를 붙인, 고무로 만든 오버 슈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부츠의 파스너를 닫을 때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리에서 굿리치 자신이 의성어인 '지퍼'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굿리치는 신제품에 '지퍼 부츠'라는 이름을 붙였고, 나중에 터론 사라고 이름을 바꾼 부클레스 파스너 사에 15만 개의 지퍼를 발주했다. '지퍼'라는 독특한 이름과 함께 제품의 신뢰성도 커졌고 녹에도 강해졌으므로 지퍼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1920년대에 지퍼는 주머니 덮개에 숨겨진 채로 아주 당연한 옷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35년에는 복식 액세서리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이 해에 "뉴요커"지는 유명한 디자이너인 엘자 스카폴레리가 내놓은 봄옷 컬렉션을 "지퍼가 잔뜩 붙었다"고 소개했다. 스카폴레리는 색을 넣은 지퍼를 사용한 패션 디자이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탄생하고 또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은 긴 세월을 거친 뒤에 지퍼는 비닐 필통에서 고성능 우주복에까지 모든 것에 이용되는 길을 찾아냈다. 이 아이디어의 진정한 발명자였던 위트컴 잿슨은 불쌍하게도 자신의 발명품이 실용화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며 190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도 수십 년 동안 복식업계에서 지퍼의 안정된 지위를 뒤흔드는 발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화과 잡초의 작고 둥근 가시투성이의 덧껍데기를 본 한 남자가 그것을 합성섬유로 만들어봄으로써 매직 테이프가 탄생한다. 1948년 알프스에서 산을 오르고 있던 스위스 등산가인 조지드 메스트랄은 바지나 양말에 질기게 달라붙는 덧껍데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덧껍데기를 뜯어서 버리는 일을 되풀이하던 그는, 비록 지퍼를 대신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는 파스너를 덧껍데기 같은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매직 테이프는 두 장의 가늘고 긴 나일론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한쪽에는 무수한 작은 갈고리가 있고 다른 쪽에는 작은 고리가 있다. 두 장을 겹치면 갈고리가 고리에 걸리며 달라붙어 떨어지기 어렵게 된다. 이 단순명쾌한 아이디어도 완성되기까지 10년의 노력이 들었다. 드 메스트랄이 상담을 한 섬유업자들은 인공 덧껍데기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웃으며 응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한명 프랑스 리용에 있는 섬유 공장의 섬유공이, 특별히 만든 작은 베틀을 사용하여 한쪽에는 작은 갈고리가 있고 또 한쪽에는 작은 고리가 있는 두 장의 면조각을 간신히 만들어 주었다. 눌러붙이면 두 장은 딱 붙어서 일부러 뗄 때까지 붙어 있었다. 드 메스트랄은 이 시작품에 '로킹 테이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직조공의 손작업에 따를 만큼 미세한 작업을 하는 기계 장치를 개발하는 데는 기술적인 진보를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여러 번 개폐를 되풀이하는 사이에 면 소재에 붙인 갈고리와 고리가 못쓰게 되자 좀더 튼튼한 나일론 천으로 대체했다. 더 나아가 드 메스트랄이, 보들보들한 나일론 실을 적외선 밑에서 짜면 딱딱해지고 거의 망가지지 않는 갈고리와 고리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커다란 돌파구가 열렸다.

  1950년대 중반에는 첫 나일론제 로킹 테이프가 현실화되어 있었다. 상표를 결정할 때도 드 메스트랄은 단순히 울림이 좋다는 것 때문에 벨벳의 '벨'을 땄고 프랑스어로 '갈고리'의 파생어인 '크로셰'에서 '크로'를 따서 '벨크로'로 붙였다. 1950년대 말에는 기계 직조기에서 연간 6천만 야드의 벨크로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나일론제 파스너는 드 메스트랄이 바라던 것처럼 지퍼를 대신하는 일은 없었지만, 지퍼와 마찬가지로 다방면으로 사용되었다. 인공 심장의 심방 접합, 우주의 무중력 공간에서도 도구류의 고정, 그리고 드레스나 수영복이나 기저귀에도 사용되고 있다. 조지 드 메스트랄이 한때 꿈꾸었던 것만큼 무한하지는 않지만 매직 테이프의 용도는 끝이 없을 정도로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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