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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03:59

그리스문화의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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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문화의 이상화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 그리스문명에 대한 환상 ③


4. 그리스 문화의 이상화

아름답고 건전한 그리스 문화

이렇게 그리스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유럽인들이 그 문화를 이상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 문화에서 추하고 비참한 것, 어두운 것, 잔인함 등의 나쁜 요소들은 가능한 대로 감추려고 노력했다. 대신 용감함, 지혜, 정의, 도덕성 같은 좋은 요소들은 크게 부각시켰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원천으로, 법의 지배가 이루어진 곳으로,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인 문명을 만든 곳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반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면, 노예제나 성적인 문란함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은 가능한 한 축소시켰다. 서양 사람들이 19세기 이후에 쓴 많은 그리스 역사책들은 이런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 그리스 문화는 대체로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 관찰되었다. 그러므로 아프로디테나 많은 여신의 나신상들은 단지 옷을 벗은 여인의 아름다운 조각상만으로 받아들여졌고 파르테논 신전 같은 건축물들도 구조, 기둥모양, 비례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건축적인 요소만이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푸른 지중해와 그것을 배경으로 서 있는 흰색의 아름다운 대리석 신전'으로 상징되는 그리스의 아름답고 순수한 이미지는 19세기 이후 많은 문필가나 미술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 되었다. 특히 화가나 조각가들은 그리스 신화모티브로 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그리스를 이상화하는 데 중요한 몫을 했다.

시각적인 효과는 글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이다. 그래서 이들이 그리스의 서사시나 신화를 배경으로 근대에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이나 조각들을 감상하노라면 그 순수하고 깨끗한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그리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물론 상상하는 것만도 불경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 문화의 해석의 모든 면에서 나타난다. 그리스 문화의 몇 가지 면에서 이 점을 간단히 살펴보자






▲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19세기 초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1748~1825년)의 그림 (좌)텔레마쿠스와 유카리스의 이별,1818년 (우)비너스와 미의 여신들에 의해 무장해제된 마르스,1824년

민주주의의 근원인 아테네 민주주의

서양 사람들은 보통 근대 민주주의의 근원을 아테네 민주주의로 놓는다. 이는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가 중심이 된 아테네인들이 기원전 507년에 참주를 몰아내고 귀족정체 대신 민주정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족제도를 고쳐서 귀족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500인회의(뷸레)가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참주가 될 만한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도시 밖으로 추방할 수 있었다.

5세기 후반의 페리클레스(Perikles)는 그것을 더 발전시켜 민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 그래서 도시의 중요한 사안들이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에서 결정되었고 당시 행정을 책임진 10명의 스트라테고스(장군)들은 정치를 잘못하는 경우 민회에 의해 쫓겨나거나 사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 기원전 5세기 말의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

아테네가 그리스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 되어 풍부한 재정을 갖게 된 다음에는 민회나 재판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연극 구경을 하는 시민들에게도 수당을 지불했다.

이리하여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교대로'라는 원리에 따라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은 보통 1년 임기로 대부분의 관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모든 시민이 함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근대 서양인들이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주의의 실상은 이와는 달랐다. 우선 그 폭이 매우 좁았다. 거주외국인, 노예, 여성을 빼고 전체 인구 45만 명 정도 가운데 시민인 약 4만 명의 성인 남자들만이 이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 또 많은 사람이 생업에 종사해야 했으므로 민회에는 최대 6천 명 정도만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민회는 드물게 열리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하므로 자세한 논의를 할 수도 없었다. 의사결정도 투표수로 하지 않고 대충 손을 들어 했으므로 목소리 큰 편이 유리했다.

클레이스테네스 시대에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관이었던 500인회의는 민회에서 토의될 안건을 미리 준비하는 곳으로 그 구성원은 각 마을 단위인 데모스에서 인구에 비례하여 추첨으로 뽑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를 보면 500인회의 참석자가 반드시 추첨에 의해 선출된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해에 500인회의에 뽑히려고 서로 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뇌물이나 다른 영향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회나 500인회의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보증하는 기관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는 민중이 아니라 계속 부유한 귀족 출신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파당을 이루어 권력을 장악하고 또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런 모습은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했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이다.

기원전 5세기 말 이후의 아테네 정치는 선동가들에 의해 매우 어지러워졌다. 기원전 4세기 사람들인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정을 별로 호의적으로 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민주정을 통해 하층민들의 권리가 과거보다 더 신장되고 보호받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도 어느 한계 안에서의 이야기이다.






▲ 플라톤 (Platon, 기원전 428/427~348/347)

이런 의미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은 시민들의 의사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되고 관철되는 그런 이상적인 정치의 형태가 아니다. 게다가 아테네 민주정은 그리스에서도 예외적인 일이었다. 다른 도시들은 왕정이나 참주정을 채택했다.

그러면 아테네 민주주의와 근대의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름만 같을 뿐 사실상 아무런 관계도 없다. 서양에서 근대에 점차 발전한 민주주의는 17세기 이후 영국의 귀족들이 왕과 권력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나타난 것으로 그리스로부터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또 근대의 서양인들은 로마의 공화정을 중시했을 뿐 아테네의 민주정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그것을 유럽의 근대 민주주의와 연결시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와서이다. 그러니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아테네에서 찾는 것이 얼마나 허황한 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예제도

고대 그리스는 기본적으로 노예제 사회였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일로서 노예제는 그리스인의 생각이나 이데올로기의 많은 부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아테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양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아테네의 노예제에 대해 거북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것이 그들이 그리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언급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간략하게, 또 좋게 말하고 넘어갔다. 노예가 시민이나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고, 가게의 점원이나 경영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제에 대한 사료가 남아 있는 곳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키오스 정도이고 그 가운데 사료가 가장 많은 아테네의 경우도 그 전체 모습을 알기에는 태부족이다. 많은 부분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개 전쟁에서 붙잡혀 온 사람들로 노예를 잡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왔다. 기원전 468년의 유리메돈 강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한 후에는 한꺼번에 약 2만 명의 노예가 붙잡혀왔다. 이들은 그리스 주인들에게 팔렸다.
이들의 숫자는 가장 많았던 시기에 약 1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기원전 5~4세기에는 노예 소유가 일반화되어 보통 가정은 2~3인의 노예를 소유했던 것 같다. 가내 노예들은 농사일이나 집안의 궂은일을 했으나 수공업 작업장에는 수십 명, 또 광산 같은 곳에서는 수백 명씩 일한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그들이 자유로웠고 시민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주장은 어느 사료에 '자유인이 노예나 외국인 해방노예를 때릴 수 있도록 법이 허용했다고 해도 그는 자주 시민을 노예로 오인하고 때릴 수 있다. 왜냐하면 옷이나 일반적인 외양에서 일반인들은 노예나 외국인과 꼭 같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짧은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확대해석 한 것이다.

그러나 물건 같이 사고 팔리는 존재인 노예가 시민과 같은 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는 '살아있는 도구'로서 주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법정은 노예에게 고문을 가해서 얻은 증거를 합법적으로 받아 들였다.

또 라우레이움 은광산 같은 곳에서는 노예가 대규모로 부려졌다. 그 지하 100미터의 갱도에서 발견된 족쇄나 유골, 여러 생활 흔적으로 보면 이들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는커녕 채찍을 맞으며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것 같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 신분적으로 해방된 해방노예가 있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 노예가 다른 도시에서보다 특별히 나은 대접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아테네 사회의 이런 어두운 측면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은 문제이다.

그리스 미술

그리스 미술은 근대 서양인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된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리스 미술은 보통 그 인간중심주의, 자연주의로 평가를 받는다. 이집트에서와 같이 동물을 형상화한 신상 조각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고 또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원전 5세기 이후의 고전기 조각에서 그렇다. 그래서 고전기 조각은 일반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자율적인 미술을 발전시켰다든가 오리엔트 문화를 특징짓는 종교적 억압에서 해방된 것으로 이해된다.

'서양미술사'로 유명한 곰브리치(E. H. Gombrich)가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의 하나이다. 그는 '아테네인들이 자기가 눈으로 관찰한 것을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며 미술사 전체를 통해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혁명이 결실을 맺었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렇게 서양학자들이 그리스 미술의 자연주의를 강조하고 그것을 종교와 분리시키는 것은 그리스 문화를 세속적, 합리적인 것으로 보려는 일반적인 태도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기 조각 역시 종교적 신상 조각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해석은 오해를 가져온다. 실제로 그리스의 조각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종교적인 조각들이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 미술을 탈종교화하는 이런 태도는 오늘날 서양의 많은 박물관에서 그대로 표현된다. 신상이 그것이 만들어지고 이용되던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다른 배경 속에 진열됨으로써 단지 아름다운 미술품으로만 감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그것들은 20세기 로댕의 조각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 원래 있었던 파르테논신전(Parthenon)의 아테나 여신상은 현존하지 않고 이것은 작은 모작품이다.

또 그리스 조각이 반드시 인간중심적인 것은 아니다. 동물숭배의 흔적도 나타난다. 파르테논 신전에 있었다고 하는 기원전 5세기 말의 아테나 여신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 온 그리스 신상들과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그 머리에는 스핑크스가 묘사되어 있고 큰 뱀이 몸을 휘감고 있다. 방패에도 여러 마리의 뱀이 그려져 있다. 이는 뱀을 숭배한 고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집트의 신상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에페소스(Ephesus)의 아르테미스(Artemis)상은 사람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매우 기괴하다. 가슴 부분에 젖으로 보이는 수십 개의 돌기가 달려 있다. 그것이 보통의 인간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당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안 되었다. 이 신상은 오랫동안 소아시아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예배의 대상물이었다. 또 이집트 조각에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들이 남아 있으므로 자연주의를 그리스 미술에만 한정시킬 수는 없다.






▲ 에페소스(Ephesus)의 아르테미스(Artemis)상

그리스 문명이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은 서양 근대인이 만들어낸 편견에 불과하다. 그리스 문명도 기본적으로 종교가 지배한 문명으로 다른 어느 곳의 고대 문명과도 별 차이가 없다.

5. 그리스 문명을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그리스 문명은 서양인들에 의해 매우 과장되고 이상화되었다. 또 인종주의에 의해서도 색칠되어 있다. 따라서 그리스사를 이렇게 왜곡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헬레니즘 이데올로기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이 그리스뿐 아니라 고대 오리엔트 문명, 나아가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사 전체의 모습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바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를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서양인들에 의해 그 역사적인 진실이 왜곡되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서양인들이 그리스를 지렛대로 하여 세계를 보는 방식을 만들어낸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의 전통을 잇는 유럽과 그렇지 못한 비유럽을 둘로 나누어 세계사를 보는 인식의 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 1860년, 영불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고 원명원을 파괴했을 때의 그림으로 영국의 만화잡지 '펀치(Punch)'지에 실렸다. 이 그림에서 중국은 흉측한 용으로, 영불인은 그리스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점에서 근대 헬레니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럽지역은 항상 문명된 지역으로, 비유럽지역은 야만스런 곳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 자연히 유럽문명, 나아가 서양문명 전체를 우월하게 보고 비서양 세계를 비하하는 태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세계사 인식으로 반드시 고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 한국사회에서는 그리스 신화 열풍이 지나갔다. 어린이들마저 그리스 신 이름을 줄줄 외우는 것이 신기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그리스적인 요소로 채운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도 헬레니즘의 본질적인 한 요소로서 그리스를 미화하고 잘못 이해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를 멋모르고 동경하고 칭송하는 데에는 큰 함정이 숨어 있다. 헬레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에 비추어 그런 행동은 비서양인인 우리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 따라하기'가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나아간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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