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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71101102219&Section=04빙켈만이 이룬 대전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5> 그리스문명에 대한 환상 ②


3. 근대 유럽과 그리스 문명

  그리스 문화와 단절되었던 근대 이전의 유럽

  그러면 근대로 들어오기 전 유럽과 그리스 문화와의 관계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직접적으로 긴밀한 관계는 없었다. 유럽인들이 18세기까지도 자신들을 로마인의 후예로, 또 로마 문화의 계승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 문화를 상당부분 받아 들였으므로 나중의 유럽인들이 로마 문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스 문화를 받아 들였다고는 할 수 있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12주신(主神)의 신격을 받아 들여 자신들의 신으로 삼았다. 아프로디테가 비너스로, 제우스가 유피테르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또 그리스의 서사시, 역사, 미술, 과학 같은 것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헬레니즘적 시대(Hellenistic Age : 이는 보통 '헬레니즘 시대'로 번역해 사용하나 정확히는 '헬레니즘적 시대'로 불러야 한다. 서양 학자들이 이 시기를 고전 그리스 시대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뿐 아니라 로마 시대에도 그리스인들이 문화적으로 큰 활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세기 이후에는 그 관계도 점차 약화되었다. 로마가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마가 3세기 말에 동 · 서로마로 나뉘고, 서로마가 476년에 게르만 족에게 멸망함으로써 그 관계도 완전히 끊어졌다.
  반면 그리스를 포함하고 있는 동로마제국은 살아남았으나 6세기 이후에는 로마적인 성격을 잃고 언어나 문화에서 점차 그리스화했다. 그래서 이를 비잔틴 제국이라 부른다. 또 이 지역에서는 11세기 중반이후에 그리스 정교를 믿었으므로 서유럽과는 더 멀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성상(聖像)숭배 문제로 기독교 세계가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로 분리된 것이다.

  1453년에 오스만 터키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결정적인 변화가 왔다. 이제 그리스 지역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와 유럽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따라서 로마 말기부터 중세 때까지 근 천 년 동안 유럽인들은 그리스 문화와 거의 단절되어 있었다. 유럽인들이 그리스 문화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12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유럽의 중세사회가 점차 안정되며 아라비아어 판의 고대 그리스 서적들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다. 13세기 후반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책들이 번역될 정도가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기원전 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그런데 이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받아들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 Albertus Magnus, 1193? ~ 1280 ) 나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4~1274)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비난 받을까봐 몹시 두려워했다. 그 때만 해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슬람권의 철학자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Albertus Magnus, 1193?~1280)

  





▲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4~1274)

  사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8세기의 압바스 왕조 때부터 많은 그리스 책들이 아라비아어 번역되고 그리스 학문을 열심히 연구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 중심이 현재 미국의 점령 하에 있는 이라크의 바그다드이다. 이때만 해도 그리스 문화의 전통은 유럽이 아니라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인이 그리스 문화와 보다 접근하게 된 것은 1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비잔틴 학자들이 14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에 와서 그리스 말이나 학문을 가르쳤고 1476년에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많은 비잔틴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망명을 함으로써 이제 고전 그리스 문화를 보다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18세기 말까지도 유럽 사람들은 자기네 문화가 로마적이고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했지 그리스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리스 문명과 직접 연결되지도 않았지만 유일신을 믿는 유럽인들로서는 다신교가 중심인 그리스 문화와 가까워지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빙켈만이 이룬 대전환

  이런 태도가 바뀌는 것은 18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이다. 이 시기에 어렵사리 그리스에 들어간 여행자들이 낸 책들이 출판되며 점차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요한 빙켈만(J. J. Winckelmann) 때문이다.
  





▲ 요한 빙켈만 (1717-1768, 독일의 미술사가)

  그는 원래 독일 출신이나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에서 일했다. 그 가운데 유물 창고에 수장되어 있던 수많은 그리스 조각품들을 보고 큰 관심과 함께 매력을 느꼈다. 그것은 대개 로마 시대에 그리스 것을 본따 만든 모작품들로 르네상스 시대이래 교황청에서 수집한 것이다. 그것을 양식에 따라 구분하고 연대별로 정리하여 1764년에 출판한 것이 그의 유명한 <고대미술사>이다.

  이 책에서 그는 그리스 조각의 아름다움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가 헬레니즘적 시대의 조각인 라오콘에 대한 인상을 '고귀한 단순성과 조용한 숭고함'으로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그리스 조각의 특징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보여주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된다.
  





▲ 라오콘(Laocoon)상

  그가 '아폴로 벨베데레'라는 조각상을 찬미하는 말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엘리시움의 행복한 들판을 지배하는 것 같은 영원한 봄이, 그의 몸을 젊음의 매력으로 뒤덮고 그의 자랑스러운 팔, 다리에서 부드럽게 빛난다. … 핏줄이 없는 것 같은 이 몸은 신경이 아니라 천상의 영혼에 의해 움직인다. … 이 예술의 기적 앞에서 나는 모든 우주를 잊어버리고 그 존엄에 어울리게 영혼이 고양됨을 느낀다'
  





▲ 아폴로 벨베데레 (Apollo Belvedere)상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아폴로 상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또 그는 이런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낸 그리스 시대도 매우 높게 평가했다. 여기에서부터 근대 유럽문명이 발전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에게 고대 그리스는 '유럽의 소년기'였다. 거기에서 나중에 성숙한 유럽이 성장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리스 조각과 문화, 그 시대에 대한 빙켈만의 이런 높은 평가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과 교양 계층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읽고 그리스와 그 문화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빙켈만의 주장이 이렇게 받아들여진 것은 당시 유럽 지식인 사회가 기독교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것을 지향하던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유럽문명을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려 했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 지식인들이, 빙켈만에 의해 종교적 색채가 벗겨진 그리스 미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는 1768년에 여행 중에 강도에게 살해를 당해 명성을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후의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문화 매니아들을 양산하며 그리스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생각을 전면적으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그리스 문화 본격 수용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19세기 초에 들어와서이다.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와 함께 가장 큰 나라였던 프러시아가 그 출발점이다. 당시 프러시아는 1806년의 예나 전쟁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배하여 프랑스의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크게 떨어진 국민들의 사기를 다시 북돋기 위해서 프러시아는 대대적인 개혁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농노를 해방하고 군사제도를 개혁하고 베를린 대학을 새로 창설하는 등 개혁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개혁에는 정신적인 요소도 필요했다. 그들을 구원할 새로운 정신적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크리스티안 볼프 (Christian Wolff) 같은 철학자나 당시의 문교장관인 빌헬름 폰 훔볼트 (Wilhelm von Humboldt)가 그리스 고전을 프러시아의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의 교육과정에 집어넣은 것은 그 때문이다. 고전 공부를 통해 그리스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든 자기 절제나 이상주의 같은 덕성을 가르침으로써 젊은이들의 마음을 고결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크리스티안 볼프 (1679~1754, 독일 철학자)

  





▲ 빌헬름 폰 훔볼트 (1767~1835)
  

  프러시아에서 시작된 고전 교육은 독일 전체로, 나중에는 유럽 다른 나라나 미국으로도 퍼졌다. 그리하여 그리스 고전이 서양 사람들의 교양 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서양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 희곡을 듣고 배우며 그것을 자신의 문화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를 서양 문화의 뿌리로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유럽 여러 나라들은 19세기 초부터 다투어 그리스 유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많은 조각 작품이나 유물들을 도굴하거나 헐값에 사들여 유럽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그것을 새로 지은 대규모 박물관들에 전시했다.

  오늘날 유럽의 큰 박물관들 거의 대부분이 수많은 그리스 유물들을 수장하고 있는 것은 그 까닭이다. 그리스 문화유산을 자기네 것으로 여긴 것이다. 심지어 신전건물이나 성문을 통째로 뜯어와 박물관 안에 전시하는 곳도 있다.
  





▲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뭄 박물관 (Pergamum museum). 페르가뭄의 신전 제단과 바빌론 성문을 통째로 뜯어와 전시하고 있다.

  





▲ 그리스 신전 양식으로 지은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 전경.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영국박물관'을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를까? 이상하지 않은가?

  또 1820년대에 그리스인들이 터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전쟁을 벌였을 때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에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G. G. Byron)을 비롯하여 많은 유럽 사람들이 자원해서 참전했다.

  이렇게 유럽 국가들이나 사람들이 그 전에는 별 관심도 없던 그리스의 독립전쟁을 도와주고 목숨까지 내던진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을 이제 고대 그리스의 계승자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 바이런 (1788~1824)

  그래서 19세기 이후 그리스는 이제 서양의 역사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양 문명의 근원으로서 철학, 문학, 역사, 의학, 과학, 미술 등 모든 문화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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