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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소준섭의 正名論]<1> 정명(正名)이란 무엇인가?

"천황에 귀의하다"는 뜻의 '귀화(歸化)'

우리나라에서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귀화(歸化)'라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이 용어의 의미는 원래 "군주의 공덕(功德)에 감화를 받아 그 신민(臣民)으로 되다"는 의미로서 '귀순(歸順)' 혹은 '귀부(歸附)'와 그 뜻이 통하는 말이다. 일본에서 이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천황에 귀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일본 법무성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용어를 정식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에 있어 '귀화'라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민족 감정에 비추어 언어 사용에 있어 대표적인 오용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귀화'라는 이 용어는 중립적인 용어가 아니라 '감정의 동화 혹은 귀순'을 내포하고 있는 감정적, 주관적 범주의 용어로서 국적 관련 용어로서는 부적절하다.

이러한 용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현상은 실로 우리가 일상생활 그 자체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잃은 상태와 다름이 없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서는 이 '귀화'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고 '입국적(入國籍)'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천황의 공덕에 감읍하여 그의 신민이 되겠다."는 의미를 지닌 귀화(歸化)라는 용어를 아무런 의식도 없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 일제 식민지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극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귀화'라는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기본과 체계가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채 지표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오늘의 슬픈 징표이다.

'무리를 지어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정당(政黨)'

현재 'party'라는 영어 단어는 모두 '정당'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당(黨)'이라는 한자어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실제로『논어』에도 "君子, 群而不黨"이라 하였다. 즉, "군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무리를 이뤄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자(朱子)는『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당(黨)'에 대하여 "相助匿非曰黨", 즉, "서로 잘못을 감추는 것을 黨이라 한다."라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당(黨)'이라는 글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성어'로 추천했던 '당동벌이(黨同伐異)' 역시 "자기와 같은 무리는 편들고, 자기편이 아니면 공격하다"는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하나의 명제에서 이미 '당(黨)'이라는 단어는 '악(惡)'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당쟁(黨爭)'과 '붕당(朋黨)' 그리고 '작당(作黨)하다'의 '작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黨)을 아무리 잘 만들고 그 활동을 잘 해본들 모두 '작당', 혹은 '당리당략'이라는 좋지 않은 부정적 이미지의 틀을 결코 넘어설 수 없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정당'이 이렇듯 좋지 못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당(黨)'이라는 용어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으로 하여 '당(黨)'의 본래 의미를 너무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모두 모여서 잘못을 감추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정당(政黨)'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인하여 그 '당원'이나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부지부식 간에 '당(黨)'의 좋지 않은 이미지가 내포되어 '패거리를 짓고', '상대방은 공격하면서', '함께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즉, '당(黨)'의 의미와 부합하는 행위가 '정당'의 본연의 성격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 정당화시킬 여지를 만들어 놓게 된 측면이 일정하게 존재한다. 만약 '정당'의 '당' 자 대신 '사(社)'나 '회(會)'를 사용하여 '정사(政社)' 혹은 '정회(政會)'라는 용어라는 번역어를 채택했다고 가정할 경우, '사(社)'와 '회(會)'에는 '당(黨)'에 내포된 바의 '패거리', '편법' 등의 의미 내지 이미지가 없고 대신 '일정한 규율성을 띤'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소속하여 활동하는 자세 혹은 태도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비(非)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무(無)핵화'라고 해야

흔히 말해지는 '한반도 비핵화(非核化)'라는 말도 실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에 속한다.

'비핵(非核)'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핵이 아니다"라는 뜻으로서 결국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는 핵이 아니다"라는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뜻은 "한반도를 핵이 없는 상태로 만들기"의 내용이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무핵화(無核化)'라고 바꿔 사용해야 정확하다.


오역에서 비롯된 '주의(主義, -ism)라는 일본 번역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용어에서의 '주의(主義)'라는 단어 역시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잘못된 오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ism'이라는 영어의 번역어로서 일본이 만들어낸 이 '주의'라는 용어의 출전은『사기(史記) · 태사공자서』「원앙조착열전(袁盎晁錯列傳)」중에 나오는 "敢氾顔色以達主義"라는 문장이다. 일본에서 출판된『대한화사전(大漢和詞典)』은『태사공자서』중의 상기한 문장을 '주의(主義)'라는 용어의 한문(漢文) 출전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착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상기한 문장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감히 올바른 말로 직간하여 군주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도 개의치 아니함으로써 군주의 언행이 도의(道義)에 부합되게 하였으며"이다. 다시 말해『사기(史記) · 태사공자서』에 나오는 '주(主)'는 주상(主上)을 가리키며, 따라서 여기에서의 '달주의(達主義)'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킨다."의 뜻이 아니라 "주상(主上)으로 하여금 도의에 부합되게 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의(主義)'는 처음부터 하나의 독립된 언어의 구성성분으로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정명(正名)이란 무엇인가?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서 "이름(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명(名)'은 이제까지 주자(朱子)의 해석에 따라 '명분'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리하여 '정명(正名)'이란 '올바른 명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한(漢)나라의 정현(鄭玄)은 "正名, 謂正書字也. 古者曰名, 今世曰字(정명이란, 올바르게 문자를 쓰는 것이다. 옛날 명이라 하였고, 지금은 문자라 한다)."라고 하여 이를 '자(字)', 즉 '문자'로 해석하였고, 또『주례(周禮)』"외사(外史)"에는 "古曰名,今曰字(옛날 명이라 하였고, 지금은 문자라 한다)."이라고 하여 '명(名)이 글자(字)임을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儀禮』"釋文"에 "名, 謂文字也", 즉 "名이란 文字를 말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곽말약(郭沫若) 역시 "'정명(正名)'이란 후세 사람들이 말하는 대의명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사물의 이름, 특히 사회관계상의 용어이다"라고 규정하였다.

즉, '명(名)'이란 '문자(文字)' 혹은 '글자'의 의미인 것이다.

『주역』은 '털끝만큼 작게 틀렸어도 그 결과는 천리나 되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失之毫厘, 差以千里).'라고 말하였다.

공자는『춘추』를 저술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기술하면서 어느 용어를 선택할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주는 스스로 왕을 칭했으나 공자는『춘추』에서 당초 주나라 왕이 책봉했던 등급에 의거하여 그들을 '자'작(子爵)으로 낮춰서 기록하였다. 또 '천토(踐土)의 회맹(會盟)' 중국 춘추전국 시대 진(晋)나라 문공이 초나라를 물리친 후 여러 제후국의 제후들과 천토에서 회합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진 문공은 천하의 패자로 인정받았다.은 실제 진나라 문공이 천자를 부른 것이었으나 그것을 좋지 않게 평가하여 다만 '주나라 천자가 하양(河陽)까지 순수(巡狩)하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춘추필법'에 의해 당시 사람들의 행위가 예법에 위배되는가의 기준을 삼고자 하였다. 공자는 관직에 있을 때 모든 일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였으며 결코 독단적으로 혼자서 행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춘추』는 끝까지 혼자 집필하고 손수 교정을 보았다. 학식이 많은 제자인 자하에게조차 한 글자의 도움조차도 구하지 않았다. 공자는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어떤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전에 '자본주의 맹아(萌芽) 논쟁'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로 조선에 자본주의를 이식했지만, 당시 조선 사회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느냐의 여부에 관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이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의 의견 차이를 둘러싸고 발생하였으며, 결국 "과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자본'이라는 용어와 '주의'라는 용어 모두 일본인이 새로 만든 말이었고, 또 '자본주의'라는 용어로써 서양의 'capitalism'을 번역한 것 역시 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근대화 시기 중국의 저명한 학자 옌푸(嚴復)는 'capital'을 '자본'이라고 번역한 일본 방식을 반대하면서 대신 '모재(母財)'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만약 이러한 방식으로 'capitalism'이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번역되지 않고 다른 용어로써 번역되고 이해되었다면, 이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사고를 구체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표현 수단이다. 그것은 인간 생활 전반에 깊숙이 관련되면서 인간의 본질 및 인간생활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언어는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어생활은 인가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서로 상이한 개념과 이미지가 그 용어라는 그릇에 담겨져 사용되고 그것은 확대 · 심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념이란 특정 언어로 표현되어 특정한 내용을 내포하게 되는 것으로서 따라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공자 사상이 수천 년 동안 동양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자가 '개념'을 완전히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일본은 근대 이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개념, 즉 언어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곧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일본이 만들어낸 개념에 의하여, 일본인들의 언어에 우리가 지배당하는 한 우리는 계속 일본의 총체적인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 필자 소개







▲ 소준섭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1978년에 입학해 1997년 졸업했다. 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담았으며 고 제정구 씨등과 함께 상계동, 사당동 등에서 도시빈민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냉전 이후 한반도 정세변화와 주한미군의 지위).

현재 국회도서관 중국담당 해외자료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도시빈민연구>(1985년), <史記,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1992년), <서양보다 앞선 동양문화 91가지>(1997년) ,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史記>(2008년) 등 10여권의 저서가 있다.

<이 연재는 매주 수, 금요일 게재됩니다>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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