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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123180805&Section=04
근대적 인종주의의 본격적 발전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6> 인종주의와 서양문명 ③


3. 근대적 인종주의의 본격적 발전

블루멘바흐의 퇴화이론

17, 18세기는 인종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점점 확고하게 된 때이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은 인간을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등 여러 인종으로 나누었다. 그들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하나의 종일 수는 없으며 처음부터 다르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다인종설(多人種說)이며 많은 학자들이 그것을 믿었다.

이런 주장은 노예제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인종이 달라야 열등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인간은 아담의 자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17세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설명을 더 좋아했다. 인간은 모두 아담의 자손이기는 하나 아프리카인이 흑인으로서의 열등함과 추함, 그에 따라 영원한 노예의 운명을 갖게 된 것은 햄의 아들에 내린 신의 저주 때문이라는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스웨덴 학자인 린네(C.Linnaeus)가 동식물을 종으로 나누는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어냄으로써 다시 문제가 생겼다. 근대 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종을, 생식력 있는 후손을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인종 사이의 결합에서도 생식력 있는 아이를 낳을 수 있으므로 모두 하나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근대 생물학의 아버지인 린네(C.Linnaeus, 1707~1778)

이것이 학자들을 고민스럽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퇴화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그 곤란함을 피하려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18세기 후반의 독일인인 블루멘바흐 (J.F.Blumenbach)이다.

그는 기독교 교리에서 말하는 대로 단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여러 인종들의 두개골이나 신체 각 부위의 모양이나, 자세들을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인간은 하나의 종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 근대 인종주의를 학문적으로 확립한 블루멘바흐(J.F.Blumenbach, 1752~1840)







▲ 독일의 괴팅겐(Gettingen)시. 아름다운 대학도시인 게팅겐시는 19세기 초의 게팅겐 대학 7교수 사건 등 자유주의운동과 관련해서 많이 알려져 있으나 한편에서는 18세기 이후 유럽 인종주의 발전에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종으로 시작했으나 사는 곳이 달라짐에 따라 기후나 생활양식환경의 차이와 혼혈에 의해 다섯 개의 인종으로 나뉘었다고 생각했다. 코카서스 인종, 몽골 인종, 에티오피아 인종, 아메리카 인종, 말레이 인종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백인종인 코카서스 인종이야말로 최초로 생겨난 가장 아름답고 재능이 있는 인종으로 다른 인종들은 모두 이것이 퇴화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블루멘바흐의 이 퇴화 이론은 19세기 중반까지 인종주의적 생각의 중심 역할을 했다.






▲ 블루멘바흐가 분류한 다섯 개 인종의 두개골 모습.

인종주의의 학문적 확산

인종주의적 생각은 18세기의 계몽사상가들에게서도 거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인간의 보편성을 믿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비유럽인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유럽인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식민지배나 비유럽인의 노예화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유럽인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로크나 디드로, 달랑베르, 흄, 칸트, 헤겔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이런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나 그렇다고 인종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성과 문명은 전적으로 백인, 서유럽인과 동의어였고 유럽 외부의 비백인들은 비이성, 야만성과 동일시되었다. 결국 이런 주장은 유럽인의 문화적, 인종적 우월성을 고무시킬 수밖에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인종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으려는 노력은 해부학, 생리학, 언어학 등 여러 분야에서 집요하게 추구되었다. 녹스(R. Knox)는 1820년대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해부학자였다. 그는 많은 인간의 머리 골격이나 기타 몸체 구조의 분석을 통해 여러 인종은 분명히 해부학적인 차이를 보이며 그 외부적 특질은 지난 6천 년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종주의적 생각을 의학 분야에 광범하게 유포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언어학 분야에서 이런 일을 한 대표적인 사람은 고비노(J.-A. de Gobineau)이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인간을 세 집단의 어족(語族)으로 구분했다. 햄어족, 셈어족, 인도-유럽어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인도, 이란, 거의 전체의 유럽언어를 포함하는 인도-유럽 어족이다. 그는 인도-유럽어를 쓰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유럽의 추운 지역에 사는 게르만족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혼혈을 통해 타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름다움, 신체적 힘, 지적인 능력에서 다른 인종이나 종족들을 훨씬 능가하는 코카서스 인종의 게르만족(아리아족)이 다른 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비노의 주장은 19세기 유럽 인종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고비노(Joseph-Arthur Gobineau, 1816~1882)

노예제와 19세기 미국의 인종주의 이론

19세기 인종주의 이론의 중요한 발전은 미국에서도 이루어졌다. 그것은 미국이야말로 노예제의 합리화가 중요한 과제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선언서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노예제는 미국민의 자유와 평등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열등한 다른 종이 있다면 이런 원리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쪽으로 논리가 발전하였다. 그런 생각은 헌법 기초자인 토마스 제퍼슨에게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노예제가 미국인들의 도덕적 성격에 암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제의 폐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신체적인 아름다움이나 정신적,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의 흑인의 열등성을 지적하며 그들은 더위에 강하기 때문에 육체노동에 생물학적으로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그뿐 아니라 미국 독립에 기여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런 노력은 1840년대 이후 특히 이집트 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흑인의 문화적, 생물학적 열등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모턴(S.G.Morton)이라는 해부학자는 두개골의 크기를 인간의 도덕적, 지적 능력과 결부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인들의 두개골 연구를 통해 고대 이집트의 지배계급이 코카서스인이었다고 주장을 폈다.

'이집트에 니그로가 많기는 했으나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하인이나 노예였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고대 이집트를 흑인노예를 부리는 백인사회로 만들었다. 미국의 노예제 사회에 정당성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윈의 진화론과 인종

찰스 다윈은 1859년에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주장함으로써 생물학의 혁명을 불러왔다. 그는 동물이나 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지역을 여행하며 과학적 증거를 수집했다. 특히 1835년에 그가 남미 에콰도르의 태평양상에 있는 갈라파고스 섬을 탐사하여 생물 진화의 흔적을 찾아낸 것은 유명하다.






▲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0) 진화론의 창시자.

그의 이론의 핵심은 종이 변화해 가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자연도태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생존투쟁에 이로운 특질들을 가진 개체들은 살아남아 후손을 재생산하는데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경쟁에서 져서 그대로 사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도태를 통한 적자생존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것이 유전형질을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종의 변이를 가져오는데 이것이 바로 진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윈은 이제 이렇게 만들어진 진화론을 가지고 인종 사이에 나타나는 여러 차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모든 인류는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으나 진화에 의해 여러 인종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1850년대까지도 단일인종설(한 쌍으로 시작한 인류가 아마 환경에 의해 여러 인종으로 분화했다)과 다인종설(인종적 차이는 인류의 처음부터 존재했다)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다윈은 진화에 의한 변화를 가지고 단일인종설의 퇴화이론과 함께 다인종설의 불합리함을 함께 비판함으로써 두 이론의 다툼을 끝낼 수 있었다.






▲ 생물학의 보고인 갈라파고스섬(Galapagos Islands)의 이구아나.

스펜서와 사회적 다윈주의






▲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다윈주의를 인간사회에 똑 같이 적용한 이론이 사회적 다윈주의이다. 그 가장 유명한 주창자는 허버트 스펜서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생물학 원리를 받아 들여 그대로 사회에 적용했다.

동식물과 같이 개인이나 가족, 인종도 진화과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으며 결국 사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생존투쟁, 계급적인 생존투쟁, 인종적, 문명적 수준에서의 생존투쟁도 모두 이 원리에 의해 합리화될 수 있었다.

사회적 다윈주의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인종주의 이론의 기반으로 유럽에서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그것이 자연과학의 껍질을 둘러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맹목적으로 존중되고 있던 19세기 후반의 분위기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것은 유럽국가들의 제국주의 정책과도 관계가 있다. 이 시기는 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던 시기였으므로 사회적 다윈주의는 이것을 정당화하기에 아주 좋은 무기가 되었다. 유전적으로 우월한 유럽인이 열등한 비유럽인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다윈주의가 가장 크게 환영을 받은 곳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이다. 그 이론이 당시 거의 무제한한 자유를 누리며 급격하게 성장하던 미국 자본주의의 요구에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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