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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유럽사회와 인종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5> 인종주의와 서양문명 ②

인종적 편견이 없었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사회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종족이 다른 종족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문화나 생활방식이 친숙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 반면 다른 종족의 문화나 습관은 잘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족중심주의는 스스로에게 자신감불어 넣어줄 수도 있으므로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건강한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종주의 같은 형태로 지나치게 발전하면 문제가 된다.

고대인들은 대체로 피부, 머리칼, 눈의 색깔이나 얼굴, 신체의 생김새와 관련해 인종주의를 발전시킨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신분의 높고 낮음이 피부색이나 얼굴 모양과 별 관계없는 사회들도 있다. 이집트가 그 좋은 예 가운데 하나이다.

이집트의 역사 속에서는 인종적 편견이나 차별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이는 이집트인이 여러 종족의 혼혈이었던 것과 관계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전형적인 흑인 용모를 가진 파라오도 나타나고 흰 피부를 가진 노예들도 많다. 용모나 피부색이 사회적 신분과는 별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 흑인 파라오. 기원전 19세기의 Sesostri III와 기원전 18세기의 Amenemhet.







▲ 그리스 도기 가운데에는 흑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들이 꽤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 종족을 매우 귀히 여기고 주위의 다른 종족들을 미개하다고 야만인으로 경멸했지만 야만인을 피부색깔로 구분해서 정하지는 않았다. 또 흑인의 지적 능력이 낮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은 자연적으로 자유롭고 어떤 사람은 노예인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후자에게 노예의 조건은 이익이 되고 정당하다'고 말해서 논란거리를 남기고 있다.

타고난 특질에 따라 인간이 자유인과 노예로 자연스럽게 구분된다는 것이니 이는 인종주의적 편견과 연결될 수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의 서양인들은 노예제를 옹호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주장을 많이 이용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타고난 천성에 따라 노예가 되는 '자연적' 노예와, 전쟁에서 포로가 되거나 납치, 파선 등에 의해 노예가 되는 '관습적' 노예는 구분했다. 그리고 뒤의 경우와 같이 폭력이 작용하는 경우는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가 노예제를 정당화하고 야만인을 경멸하기는 했으나 용모나 피부색에 따른 차이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로마사회와 인간의 구분

로마인들도 인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로마는 수많은 종족들을 그 영토 안에 포함하고 있었고 이들을 제국의 법이나 정치의 틀 안에서 하나로 단결시켜야 했으므로 인종주의적 생각을 발전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공화국과 그것을 구성하는 시민이었다.

따라서 공화국의 법이나 정치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제국 안의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배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로마인들에게는 그 영역 안의 많은 종족 사람들이 그들과 생김새나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지 그들을 어떻게 질서 잡힌 시민권 안에 잘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만이 과제였을 뿐이다. 따라서 로마시대에도 노예제는 일반적인 일이었으나 그것은 인종적 차별과 관계가 없다.

기독교 시대에 들어와서는 다른 문화나 종교에 대해 많은 편견과 적대감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는 보통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같은 것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고취한 것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성경 속의 노예제와 관련되는 어느 구절에도 인종이나 피부색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또 검은 것을 악이나 악마적인 것과 관련시켰음에도 초기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흑인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 오리게네스 (Origenes. 약 185~254). 교부인 오리게네스는 인간의 영혼은 원래 에티오피아인같이 검은데 신성한 구제에 의해서 모든 영혼은 희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의 주된 구분은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이기 때문이다. 4세기와 5세기에 걸쳐 살았던 교부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은 개종을 하게 되면 신의 아이가 되며 기독교 문명 속의 일원으로서 평등해질 수 있었다. 개종을 하면 인종적 문화적 모든 차이가 기독교적인 형제애 가운데에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그리스인, 로마인, 초기 기독교인들이 나중에 인종주의를 불러 올 기본적인 구분을 -자연적 노예과 관습적 노예, 문명과 야만, 구제와 저주의-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구분 자체를 인종주의로 보기는 어려우며 더욱이 피부색에 의한 편견으로 비난 할 수는 없다.

중세사회와 종교적, 문화적 인종주의

중세 사회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사회이므로 다른 종교를 믿는 이교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중세 시대의 유럽인들은 급속히 커지고 있는 이슬람세력과 계속 싸움을 벌여야 했으므로 이슬람교도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 당시인 1099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한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은 그들이 이교도에 대해 얼마나 배타적이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슬람권의 문화수준이 월등하게 높았기 때문에 그들을 인종주의적인 면에서 열등하다고 차별할 수는 없었다.






▲ 제1차 십자군 전쟁(1099). 제1차 십자군이 이슬람의 성을 공격하는 장면.

유대인에 대해서는 전연 다르다. 유럽의 기독교 사회 안에서 소수집단을 형성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로 기독교 시대 초기부터 계속 비난을 받아왔다. 따라서 중세 시대 내내 빈번하게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십자군 전쟁 때에 심했는데 유대인에 대한 이런 박해는 근대의 인종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1492년에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가 함락된 후, 스페인에서는 그 땅에 오랜 세월 뿌리박고 살던 30만 유대인에 대한 추방령이 내렸다. 다른 곳으로 떠난 사람도 많으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추방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든가 또는 개종한 것처럼 가장했다.

이런 가짜 개종자들은 아무리 처신을 잘한다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있었으므로 기독교인들은 종교가 아니라 혈통에 의해 유대인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유대인의 피는 세례로도 지워질 수 없는 유전적인 더러움을 갖는 것으로 주장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이런 편견은 주로 종교적 이유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이 혈통과 관련되고 있으므로 인종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를 종교적 인종주의라고 부른다.






▲ 탈무드 등 유대교의 서적을 불태우는 중세 시대 유럽인들.

중세 말에 와서 지리적, 문화적으로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접촉이 늘어나며 '야만인'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 야만인들은 나체로 생활하고, 얼굴이나 발 외에는 털이 많이 나 있고, 원숭이는 아니나 원숭이 같은 모습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야만인은 폭력적이고, 성적인 면에서 난잡하고, 이성이 결여 되어 있고, 예의와 문명이나 도덕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는 유럽인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특성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가운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진출하여 이들 야만인과 직접 부딪쳤을 때 인종주의적 차별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문화적 인종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과 근대적인 생물학적 인종주의와의 차이는 사실 크지 않다.

근대적, 생물학적 인종주의의 등장

근대적 인종주의는 15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흑인들을 납치하여 포르투갈에서 노예로 팔기 시작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16세기 이후 스페인 이외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인들이 아메리카로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처음에 그들은 비유럽인에 대한 착취, 억압, 노예화를 신체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원시성에 돌렸다. 또 종교적 요인도 중요했다. 그러나 곧 생물학적인 인종주의가 등장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인들은 천성적으로 열등하며 노예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스페인인들은 이런 논리를 갖고 중남미 지역의 원주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처음 원주민들을 '고귀한 야만인'으로 보았던 잉글랜드의 청교도 식민자들은 기독교를 통해 이들의 영혼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토지를 둘러싼 다툼은 결국 원주민들의 이미지를 급속히 '저열한 야만인'으로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주민은 악마의 앞잡이로 신에 의해 저주받아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잘해봤자 열등한 인간이고 나쁘게 말하면 야만적인 야수 이상이 아니라고 믿었다. 심지어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동물은 모두 없애는 것이 가장 알맞을 것'이라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의 말대로 19세기말이면 백인에 의해 북미대륙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발전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프리카 노예의 수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노예화하려 하면 도망치거나 싸우다 죽는 등 노예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플랜테이션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하는 것이었다.






▲ 아메리카로 항해하는 배 위의 흑인 노예들

노예 농장은 17세기 초부터는 북아메리카로도 확대되었다. 담배 플랜테이션들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690년대가 되면 노예제도가 북아메리카 사회에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이 시기에 흑인들의 인종적 열등성을 주장하고, 흑인은 생리학적, 심리학적으로 노예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이렇게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그런 과정에서 자라난 것이다.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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