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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6 11:46

존 로크와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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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와 식민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3>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 ③

4. 존 로크와 식민주의

존 로크와 아메리카

로크는 보통 1688년 영국 명예혁명의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민정부 2론>이 군주에 대한 잉글랜드 의회의 우월을 확인한 명예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씌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서양에서 의회민주주의 확립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생각된다. 서양 근대 정치사상에서 그를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집어넣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그렇게 가르친다.






▲ 존 로크 (John Locke, 1632~ 1704)

물론 그가 사회계약설 등을 통해 자연법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자유주의 사상과 입헌군주제가 만들어지는 데 이론적으로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또 18세기 계몽사상의 중요한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사람들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비서양인의 입장에서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자연법사상이 아메리카 식민지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의사의 조수로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일하던 로크는 1666년에 당시 잉글랜드 정계의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인 샤프츠베리 백작과 알게 되고 그 후 그의 주치의이자 비서로서 일했다. 그 인연으로 1671년에는 샤프츠베리가 북아메리카의 캐롤라이나 식민지에 갖고 있던 영지의 관리를 돌보게 되었고 1673년에는 정부의 '무역과 플랜테이션위원회'에서 비서로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 캐롤라이나에서 거주하면서 북아메리카 상황에 대해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게 되었다.






▲ 샤프츠베리 (Anthony Ashley-Cooper, 1st Earl of Shaftesbury, 1621~1683)

이 시기는 북아메리카 동해안의 잉글랜드 식민지가 점차 확장되며 원주민과의 갈등도 점점 커져가고 있던 때이다. 식민자들이 울타리를 치고 농장을 확대하자 주로 사냥이나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던 원주민들이 생존권을 잃게 되고 따라서 강력하게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 북미 원주민의 들소사냥 모습

토지를 둘러싼 원주민들과의 분쟁들 가운데에서 로크는 잉글랜드 식민자들의 권리를 이론적으로 옹호하는 역할을 했다. 또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투자를 함으로써 식민지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정치사상 속에서 아메리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크의 자연법과 재산권 이론

로크는 자연 상태나 자연인, 사유 재산권 등 그의 자연법의 중요한 개념들을 그로티우스나 푸펜도르프에게서 빌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 속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앞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메리카의 현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도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인의 '정복의 권리'는 부인했다. 그것이 자연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자연인으로, 아메리카의 상태를 자연 상태로 보았다. 그것은 아메리카인을 원시적인 인간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국가나 종족 집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도 앞의 사람들과 같이 인간은 이 세계를 신으로부터 공유로 하사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본래적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타인을 배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이 이 세계를 공유물로 준 것은 마찬가지로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생존의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개인이 그것을 전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전유는 자연에 사람의 힘을 가함으로써 가능하다. 과실을 나무에서 따든 짐승을 잡든 모두 자기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힘이 자연에 가해져서 얻어진 것이다. 땅의 사유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로티우스는 땅의 사유를 경작과 관련시켰으나 로크는 그것을 보다 추상적인 개념인 '노동'이라는 개념과 결합시킴으로써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경작이라는 노동 행위를 통해 토지의 생산 능력을 높이고 그래서 이 세상을 더 풍요하게 만드는 사람만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면적의 잉글랜드 토지가 아메리카 토지에 비해 10배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이런 노동 행위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만으로 전유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울타리치기를 전제로 한다. 즉 개인이 울타리를 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울타리를 쳐서 땅이 전유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동 경작은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땅으로부터 원주민의 축출

이렇게 전유가 재산권의 기초이므로 집단으로 공동 경작을 하는 원주민이라 할지라도 그 재산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었다. 유럽적인 농업의 형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
이뿐이 아니다. 그는 더 나아가 원주민이 기존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한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아메리카의 버려지고 비어 있는 광대한 땅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버려진' 이나 '비어 있는' 이라는 표현들은 중요하다.

비어 있는 땅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땅이다. 따라서 그것을 차지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버려진' 땅은 적절히 관리가 되지 않은 땅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방치되어 결과적으로 버려진 땅'인 것이다.

이렇게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방치되어 버려진 땅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다시 전유가 가능했다. 그것을 경작하려고 하는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문제는 '방치' 되었다는 판단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것이다. 로크의 경우 이는 당연히 잉글랜드 식민자들이었다.






▲ 존 로크의 저서, 인간오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 존 로크의 시민정부2론 (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

로크는 시민정부제2론에서 재산권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로크는 전유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울타리를 치고 전유하고도 충분한 땅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땅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이 남아서 썩을 만큼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아메리카의 경우 인구에 비해 땅이 넓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두 번째 조건이다. 이 조건이 의미하는 것은 만약 원주민이 자기들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땅에서 생산물을 썩게 만들 정도로 많은 것을 얻게 된다면 이 조건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경우 그 땅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전유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땅의 풀이 그대로 시들어 썩든가 따지 않은 과일이 떨어져 썩는다면 그것은 '버려진' 땅으로 간주될 수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전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된다. 결국 원주민에게는 당장 소비할 수 있는 만큼의 과일, 사냥감 외에 다른 것을 더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차단된다.

그러면 잉글랜드인은 이 제한 조건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것은 화폐를 통해서이다. 화폐를 통해 '이 세계의 다른 부분들과 통상'을 함으로써 생산물이 썩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인디언들도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크가 전유를 제한하는 조건을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원주민의 토지 전유만 막을 뿐 잉글랜드 식민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잉글랜드 식민자만이 아메리카에서 대규모의 토지 전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또 화폐라는 장치를 통해 무한정한 자본 축적도 가능하게 된다.

원주민과 잉글랜드인의 차별

원주민에 대한 이런 차별적인 태도는 잉글랜드와 아메리카의 공유지에 대한 그의 다른 태도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그는 아메리카에서는 공유지는 원래 신이 인류에게 공동으로 준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조건만 맞춘다면 누구나가 전유할 수 있다.

반면 잉글랜드의 공유지는 어떤 사람들의 집단 사이의 계약의 산물로 생각한다. 잉글랜드에서는 그것이 모든 인류에게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이나 교구 사람들만의 공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아메리카에서의 경우와 달리 아무나 함부로 전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로크의 재산권 이론이 그 후 아메리카식민지에서 원주민을 토지에서 원천적으로 분리시키는 중요한 근거로 이용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원주민이 사냥을 위해 잉글랜드인이 만든 울타리를 넘거나 파괴하는 것은 잉글랜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제재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북아메리카에서 19세기 말까지 지속된 원주민 배제와 학살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장본인이 되었다. 후대인들이 계속 그의 논리를 이용했던 것이다.

로크는 서양인들에 의해 근대적인 사유 재산권 이론의 기초를 만들고 자유주의 사상의 기초를 놓은 선구자로 높이 평가 받으나 그것이 비유럽인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분명해졌을 것이다.

따라서 로크의 자연법을 유럽적인 문맥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크게 왜곡시킬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그의 자연법도 그로티우스의 것과 같이 유럽과 비유럽에 달리 적용되는 매우 차별적인 원리로서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 백인 식민자들의 들소사냥. 백인들은 특히 19세기에 가죽을 얻기 위해 중부평원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들소들의 씨를 말려서 원주민들의 생존을 크게 위협했다. 1880년대에 올란도 본드라는 사람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단 하루에 300마 리, 두 달 사이에 5,855마리의 들소를 사냥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들소의 머리뼈를 산처럼 쌓아놓은 광경.

5. 자연법은 보편적인 원리가 아니다

18세기 초가 되면 자연법 사상은 대부분의 신교 국가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에서 학문적인 도덕 철학의 가장 중요한 형태가 되었다. 또 빠르게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메리카에서 지반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정치경제학 같은 새 학문들의 발판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에서의 법 개혁 같은 개혁운동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법이 형식적으로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보편적 원리를 추구했으므로 이 자연법의 개념은 18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을 국제적이고 세계시민적이라고 믿게 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근대 자연법은 식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한 것이다. 그것은 유럽인과 비유럽인에게는 달리 적용되는 차별적인 원리로서 식민주의적 행위를 옹호하고 정당화 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구체적인 실천원리까지도 만들어 주었다.

물론 푸펜도르프에서와 같이 그것이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학문 체계로 발전할 싹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7,8세기를 주도한 것은 스페인,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랑스 같은 식민 국가들이었지 독일, 스웨덴 같이 식민 활동과 무관한 나라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로티우스나 로크의 자연법 이론이 주류를 이룬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자연법 이론의 이런 식민주의적 성격은 계몽사상에도 대체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래서 식민주의를 옹호하거나 상업의 자유를 주장하며 비유럽지역에 대해 통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17-18세기에 유럽 국가들이 벌인 수많은 전쟁들은 거의가 무역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당시 유럽 국가들은 모두 보호 무역의 장벽을 치고 있었으므로 어디에도 자유 무역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유럽지역에 대해서는 통상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법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역시 서양인들이 그 보편성과 세계 시민성을 강조하는 계몽사상에 내재해 있는 식민주의적 성격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단초가 된다. 자연법의 성격을 바로 안다는 것이 이에 대한 유럽 중심주의적 해석을 넘어서서 서양 근대 사상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게 해 주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인디언 유보지역(Indian Reservation).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쓸모없는 오지로 내몰고 그곳을 인디언 유보지라고 불렀으나 그 땅도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땅을 인디언 보호지구라고 부르나 그것은 결코 보호지구가 아니고 일종의 유형지이다.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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