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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세계체제론과 유럽중심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20>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④


5. 세계체제론의 확대

무엇이 자본주의인가

세계체제론에 대한 비판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계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월러스틴의 이론 체계가 전체적으로 비판을 받으며 그것이 시간, 공간적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세계체제론은 이미 월러스틴이 만들어 놓은 틀을 훨씬 넘어 서고 있다. 세계체제론이 더 이상 월러스틴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월러스틴은 16세기 이전에는 오직 세계-제국만 있었고 세계-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세계 경제가 1500년경에 날카로운 변화를 보이며 그 이전 시기와 구분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전 시대와 후의 시대를 나누는 기준이다. 월러스틴은 두 개의 기준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교환을 위한 생산이 존재했고 그것을 통해 자본축적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간의 노동 분업과 경쟁적인 축적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역할을 할 수 있었느냐의 여부이다.

월러스틴은 무역에 의해서만은, 즉 교환을 위한 생산만으로는, 이런 것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산관계의 변화가 있어야, 즉 임금노동이 만들어져야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로서 당연한 태도이다. 그러므로 자본축적에서도 경제원리보다는 정치원리가 지배적이었던 근대 이전에 세계-체제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무역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스승이라고 할 브로델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유럽에서의 자본주의 흥기를 16세기가 아니라 11세기 이후의 상업화 과정과 경제 팽창에서 찾고 있다. 중세 도시들도 이익을 내기 위해 노력했고 자본주의는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지 16세기에 와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대의 이집트에서 전근대의 일본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진정한 자본가, 도매상, 무역 대금업자, 그리고 그들을 돕는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도 근대 서양의 자본주의적 상인들과 얼마든지 비교 가능하다는 것이다.






▲ 기원전 2세기의 상거래모습을 보여주는 이집트 벽화.

프랭크도 이와 비슷하게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지는 정규적인 무역이 국제적인 노동 분업을 통해 세계-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역과 생산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역망과 노동 분업이 얼마나 광범하게 퍼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18세기 말 이후 산업화로 인해 자본축적이 양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에 대해 월러스틴 자신도 그 변화가 그렇게 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사실 지속적인 재투자와 그에 따른 자본축적은 모든 상업이나 수공업에서 자연스런 일이다. 그것은 최소한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아시아 사회라고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것을 16세기 이후의 유럽으로 한정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최근의 세계체제론자들은 '근대 역사가들이 자본주의의 기원과 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연금술사의 노력과 마찬가지'라고 혹평하고 있다.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으려는 무익한 일이라는 것이다. 프랭크도 이에 대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괴물과, 그것이 서유럽에 기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점잖게 충고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의 확대

이렇게 유럽중심적 세계-체제가 거부되며 체르닉(E.Chernykh) 같은 사람은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존하여 세계체제를 청동기 시대까지 소급시키고 있다. 이미 5천년 전에 광범하고 지속적인 국제무역과 주민들의 이주, 외적의 침입, 문화와 기술의 확산 등에 의해 사람들 사이에 광범한 접촉이 이루어졌고 금속, 목재, 곡물, 가축, 기타 원자재, 식료품, 직물, 도기 같은 부피가 큰 생필품들의 대량 무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반도, 레반트, 아나톨리아 반도, 이란, 이라크, 인더스 계곡, 트랜스 코카시아, 중앙아시아의 일부를 하나의 세계체제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아랍상인들이 주로 이용한 도우(Dhow)라는 배. 작지만 조종하기가 매우 편리한 배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했다.

이들은 근대에서와 같이 고대에도 무역이 생산의 성격에 영향을 미쳤고, 노동의 지역간 분업과 잉여의 정규적인 이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고대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또 중세 후기의 세계체제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유럽 헤게모니 이전에>라는 책을 쓴 자넷 아부-루고드(J.Abu-Lughod)는 1250년이 세계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라고 생각한다. 1250-1350년 사이에 중국에서 프랑스에 이르는 아프리카-유라시아의 핵심지역이 하나의 광대한 교역망으로 연결된 세계체제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몽골제국이 아시아와 유럽을 직접 잇는 교역망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체제에는 아시아와 이슬람권, 유럽의 세 개의 광역체제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세계체제가 무너진 것은 14세기의 흑사병 때문이다.






▲ 아부-루고드의 <유럽 헤게모니 이전에>의 번역본 표지.

또 질스(B.Gills)나 프랭크는 아프로-유라시아의 핵심지역에서 지난 5천년 동안 단일한 세계체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세계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월러스틴이 주장하듯 5백년이 아니라 5천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장거리 무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경기 순환 사이클로 푸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경제가 이렇게 상호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 세계적인 경기순환의 연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의 여러 지점에서 경기의 호황과 쇠퇴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모델스키(G.Modelski)와 톰슨(W.Thomson)은 A.D. 930년 이후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친 콘트라티에프 경기순환(50년을 주기로 하는 경기순환)을 19개 발견했다. 예를 들면 1760년대 초부터 1780년대까지 나타난 불경기는 콘트라티에프 경기순환의 하강 국면으로서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도, 러시아, 서유럽, 아메리카 등지에 동시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아메리카와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기순환이 전지구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경제가 하나로 묶여 있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체제론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16세기 이후의 유럽에만 한정되었던 시각을 5천년에 걸쳐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전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아직은 가설적인 단계에 있으므로 설득력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우 편파적인 유럽중심주의적인 체계에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월러스틴의 시각은 그야말로 좁은 유럽 지역에만 제한된 시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6. 월러스틴 세계체제론의 유럽중심주의

지금까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과 그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를 통해 그것이 더 이상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한계들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 경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특히 중국경제에 대한 연구 성과들에 대해서 논쟁이 지속되고는 있으나 여하튼 새로운 연구들이 근대 세계경제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그것은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유럽중심적 세계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생각하는 '자본주의'라는 근대성의 기원을 유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것을 유럽 안에만 한정된 발전과 차단시킴으로써 근대성의 의미 자체에 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월러스틴이 세계체제론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정열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의 객관적 이해에 실패한 것은 이러한 유럽중심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며 전 세계를 하나로 포섭하기 이전에도 이미 전 세계의 주요 지역들이 하나의 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부분들로 묶여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브로델의 한계를 되풀이한 데 불과하다. 사실 월러스틴의 근대 경제에 대한 역사적 설명의 많은 부분은 브로델의 것을 빌리거나 변형,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러스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브로델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먼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월러스틴이나 브로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블로트가 말했듯이 '유럽식민자는 세계를 식민화했을 뿐 아니라 역사도 비슷하게 식민화'함으로써 아직까지도 우리의 역사인식에 매우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른 세계사의 인식을 위해 어떤 인식의 틀을 가져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고 하겠다.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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