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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홀로코스트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6> 유럽의 해외팽창 ④


4) 아메리카가 유럽에 가져다 준 것들

새로운 농작물들의 도입

유럽은 아메리카로부터 많은 것을 들여왔다. 콜럼버스는 첫 귀환길에 앵무새와 아메리카인을 대동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뒤에도 사람들은 아메리카의 신기한 동, 식물들을 많이 갖고 들어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 고추, 토마토, 담배 같은 새로운 농작물들이다. 카사바는 아프리카에 옮겨졌다.

특히 옥수수나 감자는 유럽에서 얼마 안 가 주식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미 18세기 전반이면 옥수수는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작물이 될 정도였고 프랑스에서도 많이 심어졌다.






▲ 16세기에 그려진 옥수수 그림







▲ 1579년에 그린 신세계 작물인 토마토

감자는 18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자는 처음에는 유럽인들이 다가서기가 어려운 작물이었다. 땅속의 뿌리 식물은 기독교적 전통에서는 악마와 관련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조량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그 후 기후가 좋지 않은 유럽의 가장 중요한 식량자원의 하나가 되었다. 사실 18세기 이후 유럽의 인구 급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이들 새로운 작물인 것으로 보인다.

또 지중해 지역에서 일부 재배되던 사탕수수가 서인도제도로 이식되어 대량 재배되며 유럽인의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유럽에서 17세기 이후 커피홍차 같은 음료 문화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담배도 16세기부터 유럽인들의 기호품으로 굳게 자리 잡았다.

유럽경제의 발전과 중심 이동

아메리카의 정복은 유럽에게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식민지인의 착취와 함께 귀금속의 대량 유입, 대서양 무역의 발전이 유럽의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래서 16세기부터 유럽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귀금속의 유입은 그때까지 만성적인 화폐 부족에 시달리던 유럽경제에 큰 자극을 주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금, 은의 양이 증가하며 통화량이 늘어나자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화폐량의 증가는 유럽의 경제 규모를 확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아메리카에서 들어 온 귀금속은 아시아와의 무역에서 결제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수출할 상품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방물산을 사오는 대가를 주로 은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럽의 만성적인 무역역조를 해결해 주었다.

이렇게 식민지 착취나 아시아 무역을 통해 축적된 돈은 다시 설탕정제업, 노예무역, 조선업, 대서양 어업 등에 투자되며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점차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16세기 말부터 유럽에서는 뚜렷한 경제적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도시도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16세기부터 대서양에 면해 있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의 경제가 보다 활성화함에 따라 유럽의 중심도 바뀌었다. 지중해 연안은 고대 이래 항상 유럽의 중심이었으나 이런 상황이 처음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1504년에 한 베네치아 상인이 후추사기 위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갔으나 한 포대도 살 수 없었다. 그것은 무역로가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 새 항로로 들어오는 후추는 값도 절반이나 쌌다. 그러니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나 그와 연결된 독일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서유럽국가들이 유럽의 중심이 된 것은 그 결과이다.

크게 확대된 유럽인의 시야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를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1492년에만 해도 교육받은 유럽인들은 모든 지식의 근원을 기독교의 성경, 그리스 · 로마의 고전들, 당시의 권위 있는 몇몇 책들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믿어지던 성경이나 고전 등 옛 이론이나 지식들은 더 이상 아메리카에 적용할 수 없었다. 아메리카에서 목격한 것들은 그런 지식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 중반의 호세 드 아코스타라는 스페인 사람의 이야기가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서인도 제도 지역을 지나가며 나에게 일어난 일을 쓰겠다. 열대에 대해 시인이나 철학자들이 쓴 것을 읽고 나는 적도에 도달하면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내가 적도를 넘을 때는 …… 너무 추워서 햇볕에 몸을 덥혀야 했다. 그러니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氣象學)과 그의 철학에 대해 웃지 않고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여행에서 목격한 것이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과 모순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자 고전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내버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 16세기에 유럽인들이 관찰한 아메리카 들소(Buffalo)의 모습

또 많은 동식물들은 유럽에서는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해 오던 동, 식물의 분류를 전혀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라 인간 자체도 문제였다.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만나게 된 원주민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지 혼란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사람인지, 신의 이미지대로 만들어졌는지, 이성을 가졌는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17세기 초가 되면 지식은 도서관의 경계선을 넘어섰다. 지식이 세계 그 자체와 같이 크고 다양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은 망원경을 이용한 천문학자의 기록, 항해자들의 보고서, 의사들의 해부학 보고서 등 다방면으로 확대되었다. 교수들도 더 이상 책에만 의존할 수 없었으므로 대학에 식물원, 해부실, 천문대 등을 마련하여 경험적 관찰을 중시하게 되었다. 학자들이 일종의 박물학자가 되었다.






▲ 항해기록을 문헌과 비교하여 검토하고 있는 17세기 학자의 모습 (Theodor Galle의 그림)







▲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해부학 극장 (1625)

이 점에서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의 지식틀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유럽에서 비교적 객관성을 띤 근대학문이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 점에서 유럽인은 큰 은혜를 입었다. 아메리카가 유럽인들의 스승이 된 셈이다.

5) 1492년은 세계사의 전환점

1492년은 매우 중요한 해이다. 이로 인해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인의 정복이 시작되었다. 한 아스텍 사람이 이것을 파치쿠티(대재난)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그런 표현으로는 모자란다. 그것은 인류사에서 아마도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근 1억에 가까운 아메리카인들이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학살, 노예화, 강제노동 그리고 억압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인류 최대의 홀로코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수 세기 동안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 인이 끌려와 혹독한 노예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그 결과 서양이 오늘날과 같은 번영과 부를 누리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서양인들이 오늘날 누리는 부와 호사의 상당부분은 아메리카, 또 아프리카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메리카인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1492년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1492년은 다른 면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 해가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시작점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1492년 이전의 유럽은 부나 힘, 과학, 기술, 문화적 영향력에서 아시아를 능가하지 못했다. 오히려 상당히 뒤쳐져 있었다. 또 이때까지만 해도 유럽이 반드시 우월하거나 지배적이어야 할 필연성도 없었다.

그러나 1492년 이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유럽 문명이 아메리카를 매개로 국제적이고 지구적인 우월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유럽의 8배나 되는 광대토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수천만의 노동력,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흥기로 말미암아 19세기에 현실화했다. 세계의 지배를 달성한 것이다. 이 점에서 1492년은 세계사적 전환점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비록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했지만.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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