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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819181554&Section=04정확한 언어 사용은 사회적 약속 이행의 시작
[소준섭의 正名論] <12>동사, 명사, 명분론 그리고 실용주의

사람들을 '문맹'으로 만드는 그릇된 용어

고위공무원의 비리가 발각되어 '직위해제' 되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이 '직위해제'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파면되어 옷을 벗게 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직책에서 물러났다는 얘긴지 알 수가 없다. 사실상 모든 사람을 '문맹'과 다름없게 만든다. 앞부분에서 설명했지만, 우리나라 용어들은 일본 영향을 받아 두 글자 한자어로 구성하는 조어 방식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이 도저히 알 수 없게 만들어진 용어가 적지 않다.

얼마 전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던 이른바 '존엄사'라는 용어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용어로 바뀌게 되었다. 사실 '존엄사'라는 말은 그 개념이 모호하고 이를테면 '의사의 조력 자살'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조계를 비롯하여 의료계, 종교계, 시민단체전문가들의 토론 끝에 용어를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애매모호하고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켜 사회적 논란을 초래하는 용어를 관련 기구 및 인사들의 논의를 거쳐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제까지 우리말은 대부분 단어수를 줄이고 축약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아왔으나, 위의 사례처럼 앞으로는 단어수를 늘여서 정확하게 내용을 표현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우리 문장 구조의 특성으로부터 강화된 '명분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장구조 역시 우리의 사고 패턴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서양어의 문장구조(중국어 포함)는 '주어(S)+동사(V)+목적어(O)'인 데 반해서 우리의 구조는 '주어(S)+목적어(O)+동사(V)'의 방식이다. 그리하여 서양어에서는 동사가 명사보다 앞에 놓이게 되어 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명사가 동사 앞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서양어는 말을 할 때 항상 동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반면, 우리는 우선 명사부터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문장 구조는 필연적으로 사고 패턴에 커다란 차이를 발생시킨다. 즉, 동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서양(중국 포함)은 구체적인 행위나 실천, 실행을 먼저 고려하게 되고, 또 그러한 언어 습관에 의하여 일상생활 역시 행위(action), 실천, 실행의 측면이 강화되게 된다. 하지만 명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우리의 경우 명칭이나 개념 그리고 명분의 측면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결국 서양에서 실용주의가 발전하고 우리 사회의 경우 명분론이 강화되게 된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서양어가 동사(動詞)를 위주로 하는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언어 체계는 명사(名詞)를 위주로 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는 move라는 동사로부터 movement 혹은 moving이라는 명사와 movable의 형용사가 만들어진다. provide라는 동사로부터 provider, provision 그리고 provisional 등의 단어가 생성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말은 '운동'이라는 명사로부터 '운동하다'의 동사나 '운동가', '운동권' 등의 명사가 생성되고, '공급'이라는 명사로부터 '공급하다'라는 동사나 '공급자'의 명사가 생성된다. 이러한 '명사 위주의' 언어 체계의 구조와 관행이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때 실제로 '움직여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의 측면보다 추상적인 명분이나 구호가 앞서고 결국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향성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항상 상호 간에 '명사'가 서로 먼저 부딪치면서 '고정성과 불변성'의 '명사 중심의 사고행태'로서의 명분전이 전면화 되는 반면, 항상 '변화 가능성과 응용성을 고려하는' '동사 중심의 사고행태'로서의 타협과 협상은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이 강화된다. 그리고 이것이 장기간에 걸쳐 집단적인 언어생활을 통하여 걸쳐 전체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성격으로 고착될 수 있는 경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표의(表意)문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의 경우, 이를테면 '工作'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명사도 되고 동사도 된다. '活動' 역시 마찬가지로 동사로도 사용되고 명사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살펴보면, 동사가 명사보다 앞에 나오는 문장 구조와 함께 동사와 명사를 한 단어로 표기하는 중국의 경우에는 실용주의에 명분론이 가미되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비록 이렇듯 동사와 명사가 한 단어에 내포된 한자를 받아들였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할 때는 중국과 달라진다. 이를테면 '工作'은 명사의 경우 곧바로 '工作'으로 사용 가능하지만, 동사의 경우 '工作' 뒤에 '하다'를 붙여야 비로소 '공작하다'의 동사가 이뤄진다. '學習'의 경우도 이와 완전히 동일하다.

한자의 유입으로 인하여 억제 당한 우리 민족의 '실천성'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즉, 고유한 순수 우리말은 동사 위주였다는 점이다. '짓다', '먹다', '막다', '만들다' 등등 모두 동사 위주이고 이들 단어로부터 각각 '짓기' 혹은 '지음', '먹기' 혹은 '먹음', '막기' 혹은 '막음', '만들기' 혹은 '만듦'의 명사가 비롯되었다.

그런데 한자어가 대규모로 우리말에 들어와 주도적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우리말 자체가 거꾸로 명사 위주의 단어 구조로 변화되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원래 유목민족으로서 항상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행동과 실천에 민첩성을 발휘했던 민족이었다. 하지만 정착 농경민족인 중국 한족으로부터 한자를 받아들인 뒤, 동사 위주였던 우리말의 언어 구성이 명사 위주로 전환되면서 이의 영향으로 인하여 실천성이 약화되고 대신 명분론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말의 소리, 즉 발음도 중요하다

사실 언어에서 어떤 정확한 문자를 사용하는지의 여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소리 즉, 발음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꾀꼬리의 소리는 아름답다고 느끼는 반면에 까마귀 소리나 까치 소리는 왠지 모르게 꺼려지고 시끄럽게 느껴지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평화(平和)라는 말의 '평(平)'이라는 한자어는 '우(于)'와 '팔(八)'이 합쳐진 글자로서 '우(于)'는 '기(氣)가 방해를 받지만 그것을 뚫어낸다'는 뜻이고, '팔(八)'은 '끊는다', '분단하다'의 의미이다.『설문(說文)』에 "平, 語平舒也"라고 설명되어 있는 바대로 '평(平)'이란 "어기(語氣)가 평화롭고 편안하다"는 의미로서 인간에게 편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언어의 말투나 어기(語氣)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음을 이 글자로서도 알 수 있다.

중국어의 예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에서 北京을 대부분의 TV 앵커들이 '뻬이징'이라 발음한다. 그러나 北京의 발음은 '베이징'이다. '뻬이징'이라 하면 중국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더구나 TV 정규 뉴스 시간에 거의 '공식적으로' 남의 나라 수도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도 초래될 수 있다.

좋은 말을 사용할 때 그 말을 주고받는 사회 구성원과 사회 전체가 자연스럽게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리(발음)로써 대화를 할 때 화자(話者)의 심성도 아름다워지고 듣는 상대방도 어울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사회 구성원 간의 분위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말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가능한 최선의 아름다운 말과 발음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가장 좋은 거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어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언어가 단순히 그러한 표현의 기능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개념'의 소위 언어적인 외피(外皮)가 곧 '말(語)'이다. '언어(言語)'의 '언(言)'이란 '직접 말하는 것'을 가리키며, '어(語)'란 '의론하고 반박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의 '입'을 통하여 일단 세상에 나온 말은 분명한 구속력을 지니면서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남녀 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전과 말을 하고 난 뒤의 상황은 전혀 다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 대하여 '유죄' 판결이 내리기 전과 내린 후의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라이프니쯔는 "언어는 인간 정신의 가장 좋은 거울이다"라고 말했다. 언어는 인간 생활의 독특한 특징이고, 인간의 삶이란 의사소통 과정을 떠나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서양에서도 명칭에 관한 정당성의 문제, 즉 명칭론(Bennenungstheorie)은 고대 및 중세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였다. 명칭론의 일반적 개념에 따르면, 명칭의 도구적 성격 즉 단어는 그것이 어떤 대상을 표시함으로써 도구와 같으며 그 도움으로 인간 활동에서 그 단어에 의하여 명명된 사물이 생성된다. 그리하여 명칭론은 명칭, 언어, 사물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플라톤의『대화록』은 명칭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언어의 내용은 표현과 연계되어 있고 이 양자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구성요인을 식별할 수도 없다는 이율배반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윤환, "구조주의 언어학과 인문학",『언어학과 인문학』, 서울대학출판부 참조할 것).

스토아학파는 언어의 형식과 의미의 이분법을 형식화하여 언어 속의 '표현하는 것(signifier)'과 '표현되는 것(signified)'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는 훗날 소쉬르의 이론에 이어졌다. 루소는 그의 저서『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몸짓이 아닌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관계가 성립했다고 보는 입장에 이르며, 언어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 수단임을 역설하였다. 데카르트는 언어란 인간이 기계가 아니고 생각하는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외적 징후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활동이 사회적 활동 속에 편입되어 있으며,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모든 언어는 인간의 마음에 주어진 보편적인 생득적(生得的) 능력의 결과로 볼 수 있고, 이 생득적 능력의 해명이야말로 언어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주장한다. 언어를 기호 체계로 파악하는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 기호란 시니피앙(signifiant;청각영상)과 시니피에(signifié;개념)의 결합이며, 양자는 종이의 양면처럼 상호 결합되어 있어 분리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이나 촘스키 그리고 소쉬르의 언어학이론은 난해하기로 이름난 여러 학설과 이론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이론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이론들이 난해한 이유는 언어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서 동시에 그것이 철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뿐만 아니라 예술자연과학의 분야까지도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철학은 전통적으로 인정되었던 경험이나 관념보다도 언어를 인식의 매체로 더 주목하게 됨으로써 의식의 철학에서 언어 철학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의 사회철학도 인식 과정에서 언어행위가 지니는 중요성을 수용하였다. 하버마스를 비롯한 일련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에서 일관되게 언어행위를 강조하였는데, 그들의 이론과 개념들의 핵심에는 언어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

지식인으로서의 책무

그리스어 중에 'barbro'라는 말이 있다. '야만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 단어는 동시에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눈에 언어란 문명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만약 우수한 언어가 없다면 곧 문명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정련된 언어는 문명 진보의 중요한 요소이다.

우수한 언어란 첫째, 우수한 해석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둘째, 우수한 묘사 능력을 지녀야 한다. 전자는 인간의 지적 활동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후자는 인간의 감성 활동을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우수한 언어는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통일을 이뤄낸다.

만약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들이 사물의 '실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또 허장성세의 추상적이고 개괄적이며 모호한 빈말, 이른바 허언(虛言)과 공론(空論)이 언어생활의 주류를 이룬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감각은 조잡해지고 혼란스럽게 되어 퇴화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성취해낸 문명 역시 곧 쇠락해지고 말 것이다.

정확한 언어에 대한 선택과 사용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사회적 약속 이행의 시작이다. 특히 사회문명의 품격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란 언어의 해석 능력과 묘사 능력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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