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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속 신선 이야기 - 민경환
 



   12. 내 조그마한 스승

  임당이라는 도호를 가진 같은 동료 사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항상 임당을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한시라도 존경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사람이야."

  농담 식의 이야기긴 하지만 진심이 80% 이상  되는 표현인데도, 임당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가지고 노는 건 좋은데, 제자리로 갖다 놓기만 해요."

  워낙에 쓸데없는 농담을 즐기는(?) 나이긴 하지만(이러는 내 자신이 나도 이제는 정말 싫다), 어찌 존경이란 단어를 함부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내가 임당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그러니까 존경하기 시작한 이야기를 하자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성동에 도장이 있었던 시절이다. 그때는  임당, 일우, 수인, 일정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실무진도 아니면서 도장에 기숙하는 도에 미친 회원들-을 애칭으로 '기생 실무진'이라 불렀다. 도장이 서서히 발전되어 나가면서 당시 사범이었던 기라성 같은 1기 사형들이 지방에  생기는 지원으로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도장에 인력이 부족해졌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기생 실무진들이 모두 도장의 정식 실무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일우의 경우, 공학도 출신으로 '대우'에 다니고 있었으나 마음은 항상 도장에 와 있어 직장 생활을 하기 심히 어려운 사람이었다. 도장에서 매일같이 수련하랴, 이야기하랴, 밤을 새우고는 근무처인 대우 사옥을 침실로 사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대우 회장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벌써 사표 쓰라고 한소리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매불망 회사를 그만두고 도장에 들어오기만 호시탐탐 노렸던 사람이라서 실무진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되어 있었다. 나 또한 워낙에 일이 없는 개점 휴업 상태의 작가였고 마땅히 할 일 없는 백수였으므로 실무진에 들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지 수인의 경우, 지방에 본업이 있는 관계로 그 당시엔 서울 본원에서 기숙을 하는 입장이 아니었으므로 약간의 예외였다.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일정과 임당이었다. 일정과 임당은 형제 사이로 부모님과 함께 수련하는 선도가족이다. 일정은 그 잘나간다는 '삼성'에 다니고 있었고, 임당은 공무원 생활을 막 시작하던 참이었다. 생각해보라!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입장에서, 아들 둘이 모두 도장의 실무진으로 들어온다면 그 어느 부모가 쌍수를 들어 환영하겠는가 말이다. 일정은 회사에 다니기 싫어 거의 광란지경에 이르러 있었기에 실무진으로 들어오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으나 문제는 임당이었다. 임당의 부모님 또한, 일정은 실무진에 들어가고 임당은 직장생활을 계속하다가 나중에 도장의 형편이 나아지면 합류하는 것이 좋겠다는 당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 사범의 한달 임금이 5만원이었다. 산술적으로 간단하게 계산해도 일정 가족은 두 아들이 버는 월 10만원의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혹시라도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까봐 보충 설명을 잠깐  해야할 것 같다. 석문호흡 도장은 돈하고는 담을 쌓은 곳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돈하고 원수진 일이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내가 도장에 입회할 때의 이야기는-얼마 안되는  회비를 말하면서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던-이미 한 바 있다. 앞으로 도장이 발전하면 모든 회비를 무료로 해야 한다는 도장 방침이 있을 만큼 돈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회비를 몇 달 밀리는 회원이 있어도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회비 안 냈다는 통보도 하지 않을 정도니 말을 해 무엇하겠는가? 모두들 스승을 닮아 순순한 열망과 도심만으로 도장이 운영되고 있었기에 도장의 재정 상태는 언제나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상태였다. 도장을 처음 여신 한당 선생님이 집은커녕 전셋돈도 없이 도장 한 켠의 원장실이라는 방에서, 사모님 그리고 장남 세운이와 함께 생활할 정도였으니 어찌 제자들이 돈 욕심을 내겠는가? 이러한 사정을 일정 부모님께서 모르실 리 없었다. 아직, 실무진으로 들어오는 것이 확정되지 않은 어느 날의 일이다. 주말이라서 도장에 사람이 없었다. 임당과 나 둘이서 사범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임당의 얼굴이 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 당시,  언제부터 정식 실무진이 되는지가 가장 궁금했던 때라 실무진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큰 화제였다.

  "일정한테 얘기는 들었는데, 임당은 일단 직장 계속 다니지 그래요. 특별히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
  "선생님께서도 사정을 아신다면 당분간 직장 생활하다가 나중에 들어오라고 하실 거예요."
  "지금 다들 고생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다들 고생할  때 편하게 직장 생활하다가 도장 안정되면 실무진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그게 무슨 명목이  있겠어요? 다들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해서 도장을 발전시켜야죠. 부모님께도 그렇게 말씀 드렸어요."
  "..."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누가 임당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평상시 말이 없이 과묵해서,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던 사람. 남이 보든 안 보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했던 사람. 선생님이 지어 주신 임당이라는 도호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이 시대에는  도꾼이 없다. 순수한 열정으로 공부를 해나가려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선도수련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먹고 입을 것을 다 챙겨두고 편하게 도 닦을 생각을 하지, 뜻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생각은 하지 않는 세상이다. 생사를 뛰어넘어 나 스스로의 본질을 깨달아 살아 있는 신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이 정도의 발도심 없이 어찌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떨까? 임당과 같은 상황에서 함께 고생하자는 이야기를 흔쾌히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날의 대화  이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임당이지만 항상 존대를 붙여 말을 한다. 내 스스로 임당의 말에서 얻은 교훈이 너무 크기에 조그마한 스승으로 대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과묵하기만 하던 임당이 요즘은 입만 벌렸다하면 사람들을 웃긴다.

  "임당, 참 많이 변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요."

  수련이란 것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렇게 과묵하던 사람이 이렇게 놀라운 달변가로 바뀐걸 보니 말이다. 나도 그렇고, 임당도 그렇고, 모든 수련인이 석문호흡을 통해 많은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변해갈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살아 있는 신선이 되어 함께 웃으며 저 광활한 우주와 눈에 보이지 않는 도계를 여행 다니게 될 것이다. 도시 속의 살아  있는 신선들이 그렇게 늘어나다 보면 '옆집 아저씨 알고 보니 신선이었네?'라는 이야기가 동네 반상회에서 나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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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종 2010.08.11 18:53
    <P>별 재미가 없는 듯. 연재 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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