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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5. 스칼렛은 배꼽티를 좋아했다

여성들의 저항의 상징, 바지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묘사된 성 판타레오네(판타로네)의 의상이 판타롱, 그것이 좁아져서 바지가 되었다. 성 판타레오는 '모든 것에 자비를 베푼 자'로 알려진 4세기 기독교의 의사이자 순교자다. 로마 제국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명령으로 참수된 판타레오네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고 그 피(지금도 액체라고 알려져 있다)를 넣은 성 유물 상자는 이탈리아의 바렐로 마을에 남겨져 있다. 판타레오네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름이 옷 이름에 붙여진 명예를 얻은 유일한 성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적인 것이다. 판터레오네라는 이름은 '전부 사자('판'은 전부 '레오네'는 사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성인은 두뇌 회전이 빠른 경건한 의사였는데 이탈리아의 전설에서는 기묘하게도 사랑스럽지만 머리가 둔한, 전혀 성자 같지 않은 인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전설의 인물 판타레오네의 이상한 행동이나 의상으로부터 훗날 팬츠의 이름이 태어났다고 한다. 판타레오네는 하인을 뼈와 가죽만 남도록 굶주리게 만들었다. 또 신사로서의 체면에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여성을 농락했기 때문에 여성으로부터 노골적인 조소를 받았다. 이런 이야기가 16세기 이탈리아의 "코미디 아델라루테"에 등장하는 야위고 검고 턱수염을 기른 판타로네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이 인물은 발목에서 무릎까지는 다리에 딱 붙고 그 위는 페티코트처럼 퍼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코미디는 유랑 극단에 의해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도 전해졌지만 판타로네는 어디서나 매우 특색 있는 이 바지를 입은 채 나타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 인물과 바지를 '판탈롱(pantalon)'이라고 불렀고 영국에서는 '팬터룬(pantaloon)'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멋대로"에서 이 영국식 이름을 더욱 유행시켰다.

팬트룬은 18세기에 들어(이미 이 무렵까지는 무릎 길이의 바지로서 한 스타일을 확보하고 있었다) 미국에 상륙하자 축소되어 '팬츠(pants)'라고 불리게 된다. 성 판타레오네가 돌고 돌아 팬츠라는 이름의 의상 제공자가 되었으며, 고대 켈트인은 남성의 발을 덮는 의상으로 'trews'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것이 바지(trousers)가 된다. 또한 로마인은 헐렁한 바지를 뜻하는 말인 'laxus'를 사용했는데 '넉넉한'을 뜻하는 이 말에서 '슬랙스(slacks)'가 태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옛날에 발을 덮던 의상에는 아직까지 주머니라는 편리한 것이 붙어 있지 않았다. 주머니만큼 단순하고 게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1500년대 말까지 없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사람들은 돈이나 열쇠, 약간의 신변 잡화는 작고 깨끗하게 포장하여 임시로 쓰는 가방에 넣거나 옷의 어딘가에 적당한 부분에 넣고 다녔다. 1500년대의 남성이 흔히 소지품을 넣은 곳은 코드피스(바지의 터진 앞부분을 숨기기 위한 장식용 봉지)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너무 커져서 우습고 성가시게 되어 못쓰게 되지만 원래는 바지의 터진 앞부분을 숨기는 편리한 덮개(단추 가리개)로 태어난 것이다. 당시의 패션에서 이 덮개에는 천을 넣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남성의 귀중품을 싼 천조각을 넣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코드피스가 유행하지 않게 된 뒤로도 이 천만은 살아남았다. 윗부분을 끈으로 조여서 작은 가방으로 만들었고 허리에 매달았던 것이다. 이렇게 천이 주머니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바지에 처음으로 주머니가 나타난 것은 1500년대가 끝날 무렵이다. 주머니가 될 때까지는 2단계의 진전이 있었다. 우선 처음에는 남성이 몸에 딱 맞는 바지의 옆 봉제선을 터서 이곳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은 천으로 만든 작은 봉지를 넣었다. 그리고 곧이어 바지와 떨어져 있던 작은 봉지가 바지에 영구적으로 붙게 되는 것이다. 주머니가 한번 붙자 매우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세기로 들어서자 주머니는 남녀 모두의 케이프나 코트의 주요한 디자인이 된다. 처음에는 코트의 소매 부분에 붙던 주머니가 곧이어 허리 부분에 붙게 된다. 멜빵(서스펜더)은 바지를 매달아 올리기 위해 사용되기 전까지는 양말 고정용으로 장딴지에 감아서 사용했다. 당시의 양말은 흘러내리지 않을 만큼 신축성이 없었다. 멜방이 나타난 곳은 18세기 영국이다. 어깨에 거는 단추로 바지에 고정시킨 영국식의 이 패션을 채택해서 이름 그대로 '서스펜더'(거는 것)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8세기의 뉴잉글랜드 사람들이었다. 초기의 브리치스(무릎 길이의 반바지)와 마찬가지로 니커보커스는 넉넉한 바지로서 무릎 바로 밑에서 주름을 잡아 조였다. '니커보커스'라는 이름은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 시)의 초기 이주자들에게 많았던 네델란드인의 성인 니커보커에서 온 말이다. 그들이 즐겨 입고 있던 것이 넉넉한 바지였다. 하지만 이 별명이 붙은 것은 19세기의 작가인 워싱턴 어빙이 작품 속의 작가인 디트리히 니커보커를 탄생시킨 뒤의 일이다. 어빙이 1809년에 쓴 유머러스한 두 권의 작품"세계의 시작부터 네델란드 왕조 끝까지의 뉴욕 역사"속에서 네델란드계 시민인 니커보커는 무릎 바로 밑을 버클로 조인 브리치스를 입은 네델란드인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일러스트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미국인들은 특히 소년용 바지를 흉내냈던 것이다.

옛날에 전 유럽 남성이 입고 있던 몸에 딱 맞는 타이츠 형태의 바지와 비슷한 '레오타드'는 19세기 프랑스인인 주르레오타드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레오타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몸에 딱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공중제비를 함으로써 묘기와 돋보이는 의상 두 가지로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많은 여성팬을 가졌던 레오타드가 남성들에게 남긴 충고 한마디, "부인들에게 사랑 받고 싶으면 자신의 가장 훌륭한 곳을 숨기지 않도록 좀더 자연스러운 의상을 입어야 한다." 발목 부분에 주름을 잡은 헐렁헐렁한 바지에 벨트가 달린 짧은 웃옷은 1851년 뉴욕 주에 살던 아메리아 젱크스 블루머가 선보인 스타일이다. 친구인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의 팬츠룩을 흉내낸 이 남성용 옷은, 여권 신장론자이며 사회개혁가인 스잔 B. 앤소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블루머 부인의 이미지와 강하게 연결되어 '블루머'라는 이름이 붙어 버렸다. 당시에는 남성 의상이었던 바지가 블루머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블루머는 당시의 커다란 후프 스커트(원래는 스커트 허리가 소매까지 펼쳐진 17세기의 퍼지게일)가 부도덕하고(임신을 숨기기 위해서 고안된 스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바람이 들어가 입는 것이 성가시고 화장실에서 불편하다며, 여성의 복장 개혁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1840년대에는 탄력이 있는 린넬과 말털로 짠 크리놀린(버팀살을 넣어 부풀게 만든 페티코트)이 유행하여 드레스는 더욱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블루머는 유행하던 드레스 입기를 거부했다. 1851년부터 블루머는 헐렁거리는 바지와 짧은 웃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부인 참정권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어나자 이 바지를 저항을 상징하는 유니폼으로 삼았다. 바지를 입기 시작한 움직임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유행한 자전거 열풍으로 더욱 성황을 이룬다. 스커트는 자주 자전거의 톱니 바퀴나 체인에 말려서 가벼운 상처를 입기 쉬웠다. 때로는 커다란 상처를 입기도 했다. 블루머는 자전거를 탈 때 이상적인 복장이 되었고, 바지를 입는 성별이 결정되어 있던 그때까지의 긴 전통에 도전하게 되었다.

블루머처럼 활동성이나 실용성을 강조하며 현대에 들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 바로 미국에서 탄생한 청바지이다. 아직 청색도 아니고 바지도 아니었던 무렵의 진스는 데님과 비슷한 능직물 목면으로서 튼튼한 작업복용 천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 천은 이탈리아의 도시인 제노바(Genova)에서 직조되었는데 그것을 프랑스의 직조공들이 제느(Genes)라고 불렀던 데서 '진스(jeans)'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하지만 청바지의 기원은, 리바이스 스트라우스라는 17세의 미국 이민 재봉사의 전기 자체라고 할 수 있다. 1850년대 골드 러시의 전성기에 샌프란시스코로 이민간 스트라우스는 텐트나 포장마차에 크게 필요하던 캔바스 천을 팔고 있었다. 재주 있는 장사꾼이었던 스트라우스는 광부들의 바지가 금방 해지는 것을 알아차리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튼튼한 캔버스 천으로 오버올(아래위가 한데 붙은 작업복)을 만들어 보았다. 이 바지는 천은 딱딱하고 거칠었으나 수명이 길었으므로 스트라우스는 재봉사로 성공하게 된다. 1860년대 초기에 스트라우스는 캔버스 천을 프랑스의 님에서 짠 좀더 부드러운 데님으로 바꾼다. 이것이 유럽에서 '서지 드 님(serge de Nimes 님산 서지)'으로 알려진 천으로 미국에서 '데님(denim)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나아가 스트라우스는 이 데님 바지를, 더렵혀져도 눈에 띄지 않는 짙은 감색으로 염색했다. 인기는 배로 늘어났다. 카우보이들은 몸에 딱 붙게 하려고 스트라우스의 바지를 입은 채 말의 물통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나와 햇빛 속에 누워서 천이 마르며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데님 바지는 튼튼하고 잘 찢어지지 않았지만 광부들은 장비가 무거워 자주 주머니의 봉제선이 찢어져 버린다고 불평했다. 스트라우스는 이 문제를 러시아에서 온 유태인 재봉사 야곱 데이비스의 아이디어를 빌려서 해결한다.

1873년에는 구리로 된 리벳이 주머니 이음새마다 붙었고, 광부가 금을 구분하느라 쭈그려 앉을 때 가랑이의 봉제선이 찢어지지 않도록 앞부분 끝에도 또한 붙였다. 그런데 가랑이의 리벳은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모닥불 바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리벳이 뜨거워져서 화상을 입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가랑이의 리벳은 달지 않게 되었다. 주머니의 리벳은 1937년까지도 계속 붙였었는데 이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한결같이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는데 교장은 엉덩이 주머니의 리벳이 목재 책상이나 의자를 후벼파서 더이상 수리가 힘들 정도로 상하게 한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주머니의 리벳은 제거되었다. 완전히 실용성만을 생각하여 태어난 청바지는 1935년에 패션 상품이 된다. 이 해의 "보그"지에 두 명의 사교계 부인이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은 광고가 실렸고 이것이 '웨스턴 시크'라는 유행의 발단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유행은, 1970년대에 들어서 디자이너 청바지의 유행이 시작될 때까지는 한동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애용되었다. 그러나 작업복으로 태어난 바지가 또다시 외출용으로 바뀌자 바야흐로 거대한 산업을 낳게 되었다. 디자이너 청바지 전쟁이 한창일 때는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는 값이 무려 50달러나 됐는데도(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일 주일에 25만 벌씩 팔리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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