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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속 신선 이야기 - 민경환
 



   9. 천안통 수련

  역시 삼성동 때의 일이다. 워낙에 영대가 밝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보던 운석 사형이 옥상으로 호출을 했다. 얼마 전, 구성 프로그랭을 맡고 있을 때 리포터 일을 맡겼던 한 여학생이 서울로 올라온다고 하기에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그때만해도 '해가 떠도 도통(道通), 달이 떠도 도통'을 외치고 다니던 시절이라 여자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그러나 서울 구경을 시켜 달라는 사람을 매정하게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올라오면 전화하라고 약속을 정하고는 고민하던 차에, 옥상에서 차를 마시자는 운석의 호출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옥상에 올라가니 싱그런 가을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했다.

  "내일 누구 만나기로 했어요?"
  "네. 예전에 리포터로 같이 일했던 애예요."
  운석은 돗자리를 바닥에 펼쳤다.
  "누웁시다."
  "그럽시다."

  서울 하늘 아래 돗자리를 펼치고 옥상에 누워 있는 기분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발차(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사발에 녹차를 잔뜩 우려서 두고두고 마시는 차로써, 밤에 글을 쓸 때 아직도 애용하곤 한다)를 옆에 두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니, 기분은 하늘로 두둥실 날아 다녔다.

  "지금 그 여학생 감정이 어떤지 알아요?"
  "뭐요?"
  "내일 만난다는 후배 말예요."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있겠어요? 원장실에 들어가 있지... 흐흐..."

  이때의 말버릇이 아직도 남아 가끔 회원들이 수련단계를 체크해 달라고 하면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애용하곤 한다.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있겠어요? 원장실에 폼잡고 앉아 있죠!"
  "내가 그 학생 감정 그대로 끌어올 테니까, 한 번 느껴봐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도장의 수련법에는 선인법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감정, 길흉화복까지 중단전을 사용하여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수련법에 관심을 가지고 입회를  했다가도 수련이 진척이 되면서 마음이 닦이게 되면, 술수에는 둔감해져서 거의 쓰지 않게 된다. 물론 사사로운 목적에서 사용할 우려가 있는, 마음이 덜 닦인 사람에게는 전수시켜 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운석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 가슴 위에 10센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올려놓더니만 눈을 감고 무언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 답답해."

  중단전을 알 수 없는 기운이 꽉 차서 들어오는데 답답하게 옥죄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느낌이 어때요?"
  "모르겠어요, 답답하기만 하고."
  "조금만 더 있어 봐요."

  답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대주천 수련이 끝나서 중단전이 개발되어야만 가능한 술수를, 소주천 수련중인 내 중단전에 쓰고  있으니 그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 잠깐만요... 이제 답답한 건 좀 멎었는데?"
  "조금만 더 있어 봐요. 슬슬 느껴질 거예요."

  아닌게 아니라, 내 감정도 아닌 것이, 내 마음도 아닌 것이 스물스물 중단전을 중심으로 기어올라오기 시작한다.

  " 아... 느껴지네요. 제대로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떤데요?"
  운석이 손을 거두면서 물어본다.
  "뭐랄까? 아주 감상적인... 그러니까, 애틋한 영화를 봤을 때의 흥분이랄까?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슬픔은 아니고, 감동 비슷한... 근데, 이거 제대로 느낀 거예요?"
  "제대로 느꼈네요. 지금 그 여학생  기분이 그래요. 아마도 내일 만남을 앞두고 기대를 품고 있나 봐요."

  야... 이거  희한하다. 저 남쪽에 있는  타인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니,  이 어찌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있으리.  소주천 수련하는 사제에게 감정이입을  성공해서인지 운석도 슬슬 흥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거 한 번 해봅시다."
  "뭘요?"
  "일사도 가능할 거예요. 가만히 심법을 걸고 타인의 미래를 보세요."
  "타인의 미래?"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가 보고자  하는 사람의 10년 후를 본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러면 그 영상이 보일 거예요."
  "지금 내가 그런 게 보이겠어요? 최소한 대주천은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
  "해봐요. 될 거예요."
  내친걸음이다. 되든 안되든 하번 해보자.
  "그럽시다."
  누구를 볼까? 갑자기 대학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여자친구가 생각이  났다. 10년 후는 너무 요원하고 3년 후를 볼까?
  "어어...?"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생각을 하고 몇 초나 지났을까? 눈앞에는 아쉽게도 컬러영상은 아니지만, 흑백의 선명한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시골집 부엌 같은데... 수도꼭지가 바닥에서 나와있는 시멘트 부엌, 거기서 애를 등에 업고 쌀을 씻고 있네요. 표정은 아주 밝아요. 가난한 집에 시집가서 생활은 넉넉지 않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 같아요."
  "내 것도 한 번 봐요."
  운석이 자기 미래도 한 번 보란다.
  "세상에... 소주천하는 나한테 보라구? 사형이 직접 보면 되잖아요."
  "난 그런 거 안 보이니까 일사가 좀 봐요."

  이왕 내친걸음이다. 한 번 볼까?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마음만으로 그런 영상이 보인다는 게 너무 놀라워 스스로도 한 번 보고 싶었다(지금 같으면 보여도 안 보려고 피했을 것이다). 운석의 4년 후를 부기로 했다.

  "어때요?"
  "운석이 조급하게 보채기 시작했다.
  "가만있어 봐요. 집중이 안 되잖아요."

  눈앞에서 무언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더니 다시 흑백영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좋지가 않다. 조그마한 골방에서 운성이 머리를 민 모습으로 쪼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는 듯한 모습...

  "어때요?"  
  "그냥 별거 안 보이네요. 도장 같은데, 조용히  앉아서 수련하고 있어요. 아마도 4년 후쯤이면 수련에 매진해서 한 소식 듣고 있을 거 같은데요?"

   가뜩이나 요즘에 무슨 고민이 있는지 우울해 하는 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얼렁뚱땅 둘러대고 말았다.

  "그래요? 다행이네..."

  운석은 무언가 생각에 빠지는  듯했다. '아... 이런 술수가 내 단계에서도 되는구나'라는 흥분에 젖어 운석과 나는 잠시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을 게다. 운석이 우울한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난 아무 것도 없어요. 평생 도만 찾아 헤매느라 친구도 하나 없지요. 오로지 도화제 식구들뿐이에요."
  "..."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흥분상태였던 나에게는 너무 분위기가 안 맞는 말이었다. 내 마음 속엔 과연 내가 본 것이 허상인지, 아닌지 얼른 선생님께 확인해 봐야겠다는 초조감밖엔 없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같아 반쯤 남은  사발차를 훌훌 마셔버리고 파장을 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께서도  잠을 늦게 주무시는 체질이시라  믿고 방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주무세요?"
  "일사? 들어와."

  이럴 때는 염치 불구하고 들어가야지.

  "웬일이야?"
  "다름이 아니고 뭐하나 여쭤보려구요."
  "뭔데?"
  "사실은 방금 전,  옥상에서 운석하고... 이러쿵저러쿵... 그게 제대로  본 건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큰일날 짓을 하고 있네."

  윽... 이거 분위기가 영 아니다. 대뜸 언성이 높아지셨다.

  "그게 천안통인데, 천안통 수련은 최소한 이천도계 이상가야 연습할 수 있는 거야. 그걸 지금 연습했다가 나중에 빛 수련할 때 얼마나 고생을 하려고 그래!"
  "몰랐습니다."
  "그런 거 하지마. 뭐든지 봐야 할 단계에 가서 봐야지 미리 보면 수련에 마가 되는 거야. 나가 봐."
  "네... 죄송합니다. 앞으론 안 그렇습니다."

  어떤 단체에서 주문수련을 하면서 영안이 열려버린 운석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아왔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솔직히, 미리 봐서 좋을 거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무엇을  본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리면 '나는 왜 그런 게 안 보일까'라는 초조감도 생기곤 했었는데, 제대로 보았다고 생각했다가 야단만 맞았다. 사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선생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 본 일이 없다. 그렇게 야단맞아 보기도 처음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운석은 지금 도장을 떠나고 없다. 참으로 외로웠고 술수에 능한 사람이었으나 너무 빠르게 이것저것을 의식적으로 보다 보니 스스로 마에 빠져, <천서>에 나온 대로 스승의 말도 안 듣는 지경에 빠진 것이다. 본인이 보는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을 했으니 더 이상의 공부가 불가능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까지도 선생님께 그날 내가 본 것이 과연 바르게 본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허상이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럴 마음도 없다. 다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그 대학친구는 하사관에게 시집가서 관사에서 살고 있다 하니 제대로 본 것도 같다. 운석 또한 도를 찾아 헤매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도문을 떠난 이후 방황을 하고 있다 하니, 그날 본 것이 허상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날 이후 의식적으로 무엇을 보려고 노력을 해도 전혀 보이지가 않으니, 이 또한 마에 빠질 우려가 있는 못난 제자를 위해  선생님이 도법으로 막아 놓으신 게 아닌가 지레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선도수련 중의 마는 어떻게 오는 것일까? 무협지에 나오듯, 수련 중에 기괴한 진에 빠져 헤매다가 출구를 찾지 못하면 절명하는 식의 시험이나 마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선이 되고자 하는 공부를 함에 있어 그러한 오해들이 결코 황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겠으나,  마란 그리고 시험이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자리를 뚫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운석이 보았다는 천상의 존재나, 내가 본 천안통의 일면 등도 그저 보고 무시하거나 사심을 갖지 않게  되면 결코 위험한 마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기 전의 단편적인 영상이란 본질에 대한 선입관을 안겨주어 본질을 보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자만에 빠져, 공부함에 있어서 진의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 보고 나면 또 보고 싶고, 보려 해도 안  보이면 초조해지는 사람의 마음이란 어찌 이다지도 나약할까? 차라리 안  보이면 빠질 것도 없을 것이다. 몇몇 회원분들이 우연찮게 보게 되는 도계형상들을 부러워하는 또 다른 회원들을  보면, 말 그대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무엇이든 때가 있는 법이라서 보는 것도 볼 때 가서 보아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수련인들은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화신  수련 가기 전까지 아무 것도 안 보이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절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 또한 경험을 하자마자 선생님께 의논드린 것이 다행이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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