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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비록 장인이지만

  옛날 무기에 쇠뇌라는 것이 있다. 총대같은 나무 대 끝에 활을 장치해 바짝 당기어서 틀에 걸어 가지고, 목표물을 겨냥해 걸쇠를 당겨 퉁겨서 쏘는 무기다. 활처럼 목표물을 보고 나서 당기는 것이 아니라 재어서 가지고 있다 쏘게 되니까 효율이 훨씬 뛰어나다. 수나라 양제가 30만 대병을 거느리고 침공해 온 것이 고구려 영양왕 23년(612년)이다. 견디다 못해 고구려는 항복하겠노라고 사신을 보냈는데, 양제가 그들을 배 안으로 맞아 왕이 올린 항복 문서를 막 읽는데, 따라갔던 사람 중의 하나가 품속에 감춰 가지고 간 조그만 쇠뇌로 양제의 가슴 한복판을 쏘아 맞추었다. 그 때문에 양제는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야 했는데, 크고 강한 쇠뇌였다면 가슴에 관통했을 것이고, 이런 장난감같은 조그만  것이라면 실촉에 무서운 독약을 발라, 의당 죽었을 것인데 거기 대해선 기사가 없다.

  화약이 발명되기 전이라 전쟁무기의 연구 개량은 각국이 모두 쇠뇌나 사다리차 거북이차 같은, 성을 공격하는 무기에 힘을 쏟았다. 신라가 오랜 동안의 거국적인 노력 끝에 삼국을 통일한 이면에는 이런 방면의 많은 연구가 있었을 것은 물론이다. 백제와 합동하여 한강 연안을 수복하고는, 백제의 세력을 내몰아 서쪽 해안에 진출하여 당과 손잡을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원교근공, 먼 데 나라와 손잡아 가까운 곳을 협공해 치는 역사적인 수법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넘어뜨리는 데 성공했으나, 같은 침대에 자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더니, 두 나라 사이가 그 꼴이다. 당나라가 신라 좋으라고 군대를 풀었을 리 만무하고, 신라도 동족의 나라를 이민족에 팔아먹으려는 뜻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좋은 척 갖은 교태를 다 부려 그들 눈앞에 노랑수건을 흔들어야 했으니 딱한 노릇이다. 문무왕 9년(668년) 백제를 멸한 지 6년째요, 고구려가 지도에서 사라진 바로 이듬해다. 그해 겨울 당나라 사신이 임금의 조서를 갖고 와 전하고, 쇠뇌 만드는 기술자로 구진천을 데리고 돌아갔다. 당으로 끌려가 너희 나라 방식으로 어디 목노를 한 번 만들어 보라는 명령을 받고 한 대를 꾸며서 바쳤는데 화살이 30보 밖에 안나간다. 보라면 두 발자욱, 곧 한 칸 길이가 된다. 30칸 거리면 약 50m. 이까짓 거 가지고는 실전에 소용이 안된다.
  “듣자니 너희 나라에서는 쇠뇌가 일천보를 능히 간다던데, 이게 겨우 30보밖에 안 나가는 것은 어인 일인고?”
  당나라 황제의 물음을 받고 그는 아주 공손이 대답하였다.
  “글쎄올시다. 아마 재료가 같지 않아서 그런가 싶사옵니다. 만약에 본국에서 재목을 가져온다면 만들 수 있을지, 여기 재료 가지고는 도무지...”
  머리를 긁적긁적 했는지는 미처 모르겠으나, 황제는 그의 말을  따라 신라에 기별하여 재목을 들여오게 하였다. 그동안 몇 달 좋이 걸렸을 것이니, 술밥 거저 얻어먹고 편히 지냈을 밖에...

 신라에서는 복한이라는 대내마 지위에 있는 사람을 시켜 재목을 실려 보냈다. 나라 사이의 일이나 좋은 재료를 곧 많이 보냈을 것이니 구진천은 다시 깎고 맞추는 일을 해야 했다. 여러 날 걸려 완성된 것을 쏘아 보니 이젠 겨우 60보밖에 안 나간다. 넉넉히 잡아 100m거리니 야전이고 공성이고 별로 큰 효과가 없다. 재료가 틀려 그렇다더니 너희 나라에서 들여왔는데  왜 이모양이냐고 까닭을 물으니까, 겉으로는 겸손한 체를 자못 유들유들하게 대답한다.
  “글쎄올시다. 신도 그 까닭을 모르겠사와요. 아마도 재목이 바다를 지나오는 사이 습기를 먹어서 그런 거나 아닌지... 그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당나라 사람들이라고 그 뱃속을 짐작못할 이가 없다. 재주를 다 내놓도록 어르고 달래고 별짓을 다하였지만 소용 없었다. 정작으로 재주를 다해 천보는 마치 몰라도 화살이 그 절반만 나가도 당시로서는 신예의 위력있는 무기다. 그것이 누구를 겨냥하게  될 것인지를 잘 아는 그이기에, 고양이로  치면 발톱을 끝내 내보이지 않은 것이다. `너희 나라하고는 친교가 있는 사이아니냐?`  `신라같이 산이 첩첩한 나라에서는 별 소용 안 닿고, 서역으로 평야를 달려 오랑캐를 치려는  것이니, 그 방면 책임자를 시켜주마, 좋은 집을 주마, 홀몸으로 와 있을테니 장군의 딸로 장가를 들여 주마.` 무슨 유혹인들 없었겠는가? 어떤 협객은 말하였더란다.
  “아무 것도 싫다는 놈처럼 다루기 힘드는 상대는 없대나.”
  술과 계집과 재물도 지위도, 세속에서 귀히 치는  것을 어느 하나도 나는 싫다니, 이런 귀찮고 괴로운 상대가 어디 있나? 먼저 수나라 양제를 저격한 일행도 단 한 사람 살아 돌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목숨조차 싫다는 독종들이니 애먹었을 밖에... 구진천에겐들 얼마나 위협이 따랐으랴? 서역 원정에 병정으로 딸려 보낼테다, 병신을 만들어 놓겠다, 죽이겠다, 그래도 꼼짝 않았으니 신라왕이 좋은 신하 둔 것을 무척이나 부러워 했을 게다.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의 도를 행하여서, 부귀로도 그를 더럽히지 못하고, 빈천으로도 그의 뜻을 돌려 놓지 못하며, 위무로도 굽히지 못할 때, 이를 대장부라 한다.”고 맹자는 말씀하셨다. 일개 활 만드는 기술자로, 만리 타국에서 고향땅 가족들을 그리며 외로이 말년을 보냈을 그의 심경을 생각해 보면 감회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