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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행색은 초라해도

  조선조 중엽의 명재상이요, 뛰어난 문장가로 월사 이정구라는 분이 있었다. 광해군이 재위하던 혼란기와 병자호란의 격동기를 모두 최일선에서 겪었으며, 좌의정에까지 올라 국사에 진췌한 분이다. 한문학의 대가로 신흠, 장유, 이식과 함께 당대의 4대가로 일컫기도 한다. 그런 그가 사생활에 있어 가정을 어떻게 꾸려갔던지 이런 일화가 전한다.

  선조대왕은 공주 하나에 옹주가 아홉 분이나 되었으니, 그중의 어떤 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며느리를 맞게 되었을 때 얘기다. 임금의 외손자가 장가드는 잔칫날이라, 우에서도 한껏 기뻐 상류층의 부인들은 모두 모여 즐기라는 특명까지 하달되었다. 옛날에는 남편이 출세하면 부인도 덩달아 거기 맞게 칭호를 내리는 법이어서, 1품재상의 부인이면 정경부인, 정2품관의 아내면 정부인, 정3품 당상관의 마누라님은 숙부인의 첩지를 받는 법이라, 서로 부를 적에도 `정부인, 어서 듭시오.` 하는 식으로 호칭하였다. 그런 상류층 여인들이 모두 모였으니, 그 현란하기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집안에서 누군가가 중국 사신을 다녀오면, 그때마다 그곳 사치품이 바리바리 실려오고, 그런 것을 못 만져보는 계층 앞에서 흐르리하르리 차려 입고 `네가 더 고우냐? 내가 고우냐?` 으시대는 게 사뭇 요샛말로 패션쇼 자리같다. 거기다 국내에서는 나지 않은 값진 항료를 향랑에 넣어서 차고 값진 노리개를 줄줄이 늘여차, 구경하기에 정신을 못차릴판이다. 아무리 나라에서 하사한 넓고 큰 부마댁이라도  온종일 벅적벅적 하는데, 저녁나절 느직이 두 사람이  매는 보교 한 채가 대문, 중문을  거쳐 안마당 깊숙이까지 들어 온다. `온 저런? 저런 껑청한 가마가 예까지 들어오다니?` 하고 모두의 눈길이 쏠렸다. 앞채를 쳐들자, 반백이나 넘은 노부인이 그것도 무명 저고리에 베치마 차림으로 나타나는데 아니, 공주님이 신을 거꾸로 신고  쫓아 내려가 부액해 모시고 올라와 대접이 극진하다. 물론 안방 아랫목에 모셔 앉히고 잔칫상을 올렸는데, 일변 공주님과 대화하며 수저를 놀리며 잡숫는 양을 보니, 역시 점잖으신 댁 부인답다. 상을 물리고 나서 일어서려고 하니 공주가 말린다.

  “정경부인! 다른 부인들도  와 계시고 하니 좀더 앉아 한담이라도 하지 않으시고...”
  “아니야요, 대감께오서 약원도제주로 새벽부터 입궐해 계시고...”
  `아니 저런? 정경부인이요. 약원도제주라니? 그럼 어떤 정승 부인이실꼬?`
  “큰 아이가 정원에 나아가 있고, 작은 애가 승지로 입직해 있으니 이 늙은이가 있어야 저녁상을 돌봐서 들여 보낼 것이라,  자갸를 이렇게 뵈오니 반갑고 늦갑습니다마는 그만 물러가야겠으니 이해해주셔와요.”
  `아니 작은 아들이 승지라? 그러면 월사상공의 부인 아니셔? 아이고머니나! 그런 줄도 모르고...`

  그리고는 모두가 각자의  몸에 넘치는 사치한 물건을 걸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는 그런 얘기다.

  두 분 아드님은 백주 명한, 현주 소한의 형제분으로, 맏이는 이조판서, 아우는 참판까지 하였으며, 백주의 아드님 일상도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대제학에 뽑혀 드물게 보는 명문으로 치는 가문이다. 이렇게 검소하고, 또 남자들의 식사는 꼭 몸소 돌보아야 하는 가풍이 이런 훌륭한 자손을 또 줄줄이 두게 된 연유일 것이다.

  일제 때 이런 얘기도 있다. 일본서 노련한 정객으로 꼽히는 오자끼라는분이 서울 온 길에 한국의 민족지도자를 만나자고 요청해 왔다. 그래 예의바르게 월남 이상재 선생을 가회동 자택으로 찾았더니, 여덟 칸 짜리 초가집, 추녀가 머리에 와 닿는 오막살이에서 반백이나 된 머리를 깎은 영감이 내다보더니, “응! 오셨구랴. 우리 응접실로 갑시다.”  `응접실? 이런 집에 살면서...` 그런데 안에 들어가 헌 돗자리를 한닢 끼고 나와, 뒤 등성이 소나무 아래 펴고, 거기 마주앉아 장시간 담화를 나눴더란다. 오자끼가 돌아가 한 말이 재미있다.
  “이번 조선에 갔다가 히도이 오야지(지독한 영감태기)를 만나고 왔네.”
  대개는 돈이나 권세로 낚겠는데, 이건 안되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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