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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6. 마리 앙투아네트와 패션 민주화

     예쁜발 경연대회

  옷 가운데에는 몸을 보호할 목적으로 태어난 것도 있지만 먼 옛날부터 대부분의 여러 가지 옷들은 지위나 계급,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색이나 모양이나 천 등으로 고승과 평신도, 입법자와 위법자, 지휘관과 사병 등을 구별했던 것이다. 옷은 문화의 중심적 인물을 기타 대중으로부터 돋보이게 했다. 실제로 지금도 옷만큼 사회적 계급을 직접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내는 수단은 달리 없다. 소박한 옷차림을 명령한 검약령 등은 옷이 태어난 시점에서는 전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 영향이 옷에 뚜렷한(가끔 특이한) 각인을 주게 되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구두도 매우 실용적이면서 옛날부터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확실하게 나타내는 장식품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신발은 샌들이다. 파피루스를 엮어 만든 신발이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의 묘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기후가 따뜻한 지역의 고대인들이 신었던 샌들에는 여러 가지 디자인이 있었으며 모양도 아마 지금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다양했다고 생각된다. 그리스의 가죽 샌들인 '크레피스'는 여러 가지 염료로 염색하고 장식을 박고 금박을 씌운 것이다. 로마의 '크레피타'는 바닥이 두텁고 옆면은 가죽이고 발등 부분에 끈을 건다. 고르인은 뒤가 높은 '캠퍼구스'를 좋아했고 쿠어인은 마와 아프리카에서 나는 풀들을 가지고 그물 모양으로 짠 샌들인 '아르파르가타'를 신었다. 고고학자들은 묘지나 고대의 회화에서 실로 여러 가지 모양의 샌들을 발견하고 있다. 샌들은 고대의 가장 대표적인 신발이었지만 그 밖의 신발도 있었다. 샌들 이외의 신발로 기록에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가죽을 묶어 신은, 뒤축이 없는 모카신 형태의 구두다. 생가죽 끈을 다리에 감은 것으로 기원전 1600년 무렵의 바빌로니아에서 애용되었다. 그것과 비슷한, 발에 딱 맞는 구두를 기원전 600년 무렵부터 그리스의 상류 계급 여성들도 신기 시작했는데 당시 흰색과 빨간색 구두가 유행하였다.

  구두 가게의 길드(동업 조합)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기원전 200년 무렵 로마인이다. 이 프로 구두 기능공들은 구두 가게에서 두 발에 맞춘 구두를 최초로 만들었다. 로마인의 신발은 모양과 색으로 사회 계급을 명확하게 나타냈다. 신분이 높은 여성들이 신은 것은 발을 덮는 형태의 구두로 대개 흰색이나 빨간색, 특별한 경우에는 녹색이나 노란색이었다. 신분이 낮은 여성들은 색을 칠하지 않고 발이 보이는 가죽 샌들을 신었다. 원로원 의원은 갈색 구두를 신었는데 네 개의 검은 가죽끈을 장딴지 중간까지 매고 두 번 묶었다. 집정관은 흰색 구두를 신었다. 브랜드 따위는 아직 없었지만 어디 어떤 길드의 기능공이 만든 구두는 특별히 고급스럽고 발에 딱 맞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싶어했는데 당연히 그런 기능공의 구두는 값도 비쌌다.

  구두를 나타내는 말도 구두의 모양과 마찬가지로 차례차례 변화했다. 영어권에서 'shoe'의 철자는 열 일곱 번이나 바뀌었고 복수형은 적어도 서른 여섯 종류가 있었다. 가장 최초의 앵글로색슨어는 '덮다'를 뜻하는 'sceo'였는데 이것이 복수형으로는 'schewis'가 되었고 이어서 'shooys'로 바뀌었고 마지막으로 'shoes'가 된 것이다. 14세기 초까지는 문명이 발달한 유럽의 어떤 사회에서도, 설령 왕족일지라도 규격 사이즈의 구두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주 값비싼 맞춤 구두라도 각 기능공의 사이즈 측정 방법이나 실력에 따라서 한 켤레 한 켤레의 사이즈가 달랐던 것이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1305년이다. 당시의 영국왕인 에드워드 1세는 상거래의 정확한 기준으로 보리 세 알의 길이를 1인치로 하라고 포고했다. 영국의 구두 기능공들은 이 도량법을 채택하여 처음으로 규격 사이즈의 구두를 제조하기 시작한다. 보리 열세 알 분량의 길이인 아이들 구두는 사이즈 13이라고 불렀으며 그렇게 지정하여 주문을 받았다. 또한 로마 제국 쇄망 후에 보이지 않던, 좌우 구분이 있는 신발이 14세기 영국에서 또다시 만들어지게 된다.

  14세기에는 새로운 모양도 등장하는데 앞이 매우 길고 뾰족한 구두다. 그 길이가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에드워드 3세는 발끝에서 2인치 이상 튀어나온 구두를 금지하는 법령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잠시 동안은 이 법률을 따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1400년대 초에는 발끝이 18인치가 넘는 '크라코우'라는 긴 구두가 나타났다. 그것을 신은 사람은 걸핏하면 발이 걸려 넘어졌을 것이다. 크라코우는 르네상스를 낳은 독창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타났는데 이것을 시작으로 이런 모양이 유행했다가 다른 모양이 유행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예를 들어 이상하게 발끝이 뾰족한 구두의 유행 뒤에는 발끝이 아플 정도로 뭉툭한 모양에다가 폭은 발이 두 개라도 들어갈 정도로 헐렁거리는 재미있는 사각형 구두가 유행했다. 17세기에는 영국의 학술 도시인 옥스퍼드의 구두 기능공들이 앞부분에 끈을 묶는 쇠고리가 세 개 또는 세 개가 넘은 송아지 가죽의 편상화인 '옥스퍼드'를 만들어 냈다. 당시 미국은 구두 디자인에서 한 걸음 뒤져 있었다. 식민지에 최초로 등장한 구두 가게에는 '스트레이트형'이라는 단 한 종류의 구두형밖에 없었으며, 좌우 구분이 없는 구두였다. 그 때문에 부자들은 영국제 수입품을 구입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구두 종류가 많아지고 가격이나 착용감이 개선된 것은 미국 최초의 구두 공장이 매사추세츠에 생긴 18세기 중반의 일이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구두는 대량 생산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가죽의 재단이나 바느질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집에 있는 여자나 어린이가 약간의 수공비를 받고 봉제한 것을 공장에서 완성 가공한 것이다.  구두 제조의 완전한 기계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량 생산은 꽤 오랫동안 실현되지 않았다. 영국의 노샘프턴 맨필드 제화 회사가 규격 사이즈의 질이 좋은 구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기계를 처음으로 도입한 1892년의 일이다. 구두가 대중화하면서 편리하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건강에 좋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발에 생긴 물집이나 티눈 그리고 평발이 더욱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최초로 티눈과 발바닥 물집용 패드를 발명한 인물이 구두 가게에서 일한 사람이라는 것은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윌리엄 숄은 부모님이 경영하는 미국 중서부의 낙농장에서 일하던 10대 무렵부터 구두와 발 손질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1882년에 열세 형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태어난 윌리엄은 소년 시절에 스스로 생각해낸 튼튼한 밀 실로 대가족을 위해 구두를 기웠다. 한 집안의 전문 구두쟁이로 멋진 솜씨와 발명에 재능을 보이자 그의 부모님은 윌리엄이 열 여섯 살 때 그를 구두 가게 조수로 내보냈다. 1년 뒤에 윌리엄은 다른 구두 가게에서 일하기 위해 시카고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구두를 파는 일을 하는 동안 윌리엄 숄을 발의 물집이나 티눈, 평발이 얼마만큼 손님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발은 주인에게 무시당하고, 무시당하는 발에 대해 의사나 어느 구두 가게 주인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윌리엄은 그 일을 스스로 떠맡기로 했다. 낮에는 구두 판매를 하면서 시카고 메디컬 스쿨의 야간 학과를 졸업했다.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1904년에 이 스물 두살의 의사는 처음으로 만든, 발바닥의 장심을 받쳐 주는 '풋이저'로 특허를 얻어냈다. 윌리엄이 만든 구두 깔창의 인기가 솟자 풋케어(foot-care) 제품 산업이 탄생하게 되었다. '풋이저'를 팔려면 올바른 풋케어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윌리엄은 구두 가게 점원들을 위해 발 치료 통신 교육을 시작했다. 또 컨설턴트를 모아 그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올바른 발 치료에 대한 의학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을 설명하도록 했다. 윌리엄은 건강하지 못한 발이 미국에 넘치고 있는 것은 미국인 50명 가운데 한 사람밖에 올바른 걸음걸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펴고, 발부리를 똑바로 앞으로 내밀고' 하루에 2마일씩 걸을 것을 권장했으며 하루에 두 켤레의 구두를 신을 것을 권했다. 그렇게 하면 한 켤레씩 번갈아 가며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의사들을 대상으로 "사람의 발, 그 해부학, 기형, 치료"(1915)를 냈고, 좀더 일반적인 입문서로 "발 사전"(1916)을 출판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하고 선전한다'는 윌리엄의 신조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맨발을 내보인 광고에 물집용 패드를 붙인 것과, 깔창에 얹은 발을 공공연히 보이는 것은 외설이라는 항의가 쇄도했다.

  1916년에 윌리엄이 후원자로 나선 '신데렐라 발 콘테스트' 덕분에 발에 대한 의식이 전국적으로 높아졌다. 가장 완벽한 발을 노린 수만 명의 여성들이 구두 가게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참가자의 발은 윌리엄이 발명한 장치로 정밀히 검사되고 계측되어 족형이 떠졌다. 발 전문가로 이루어진 심사 위원단이 신데렐라를 뽑았고, 국내의 주요 신문과 잡지에 수상자의 족형이 실렸다. 윌리엄이 기대했던 대로 많은 미국 여성들이 자신의 변변치 못한 발과 미국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발을 비교하며 앞다투어 그의 제품을 사러 왔다. 전국의 약국, 백화점, 그리고 잡화점에서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된 닥터 윌리엄 숄의 상품이 미국 풍경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윌리엄 숄은 1968년에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잊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윌리엄은 일생을 통해 한 번 본 발은 잊지 않는 것을 최후까지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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