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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조약돌 하나라도 - 임옥숙

  저는 햇수로 7년째 투병 생활중인 스물다섯의 여자입니다. 뭐라고 마땅히 이름붙일 것일 없어서 '투병 생활'이라고 억지로 끌어다 붙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치스런 이름이고, 사실 제 몸에서 정상인 신체 기관은 눈과 귀뿐입니다. 사고 때 뇌신경을 건드린 까닭에 언어 장애가 와서 의사 표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신체적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사고 직후에는 안면 근육은 물론 전신이 마비되어 약 한 달 간 눈을 못 뜨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의식도 없는데 두 팔로 허공을 부여잡고 몸이 자꾸 치솟아 간호원이 두 다리를 꽉 누르고 있었지요. 언니의 등에 업혀서 퇴원을 했으나 저를 간호할 문제였습니다.

  저는 식물 인간을 간신히 면했을 뿐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으니, 누군가 시중을 들어 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장사하시느라, 언니는 회사에, 동생은 학교에 다니느라 제 곁에서 간호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나을 병이 아니니 그것이 문제였지요. 궁여지책으로 분가해 사는 올케가 연년생의 젖먹이 조카 둘을 데리고 출퇴근을 하면서 저의 병 수발을 했습니다.

  약 1년 후 걸음이 갓난아기 걸음마 정도가 되어 저 혼자 집을 지키게 되었을 때, 저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나만의 성을 두텁게 쌓고 그 안으로만 숨어 들어갔습니다. 오랫동안 가족들 외의 남들하고는 접촉이 없는 밀폐된 생활을 해온 탓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제겐 여러 사람들과 쉬이 어울릴 수 없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는 매우 세심하고 상처 받기 쉬운 성격이어서 더 더욱 그러했지요. 사람들의 경멸하는 눈초리가 두려워서 저 스스로 달팽이처럼 내부의 세계로만 침잠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죽음을 생각했지요. 가족들이 자신의 생활 무대로 떠나 버린 텅빈 방에 남아서 저는 온종일 죽음만을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천사-그렇습니다. 죽음을 천사에 비유하듯이, 그때의 내겐 죽음이 천사처럼 여겼습니다. 발전도 희망도 없는 이 삶에서 탈출할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지요. 해질녘 강둑을 방황하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맥없는 발길을 돌리기도 했고, 남의 눈에 띄어 슬그머니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것 또한 몇 번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수없이 죽음의 시도를 꾀했으나 실패한 뒤의 어느 날 밤 저는 짤막한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는 몰래 집을 나갔습니다.

  <먼저 가는 불효 자식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이것이 저의  마지막 효도입니다.>

  차가운 빗방울이 이마를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정신없이 걷던 발길을 멈추고 칠흙같이 어두운 강변에 혼자 서 있었습니다. 강변은 무덤같이 조용했습니다. 마주 보이는 강 건너 마을의 아파트 창문마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조용히 강을 건너오고 있었을 뿐... 자갈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가  어둠 속을 공허하게 울리고는 사라져 갔습니다. 발 밑으로 찰랑거리는 물결이 지나갈 때, 저는 하늘에 무수히 박혀 꽃같이 빛나는 별들을 우러러보며 마지막 기도를 했지요.

  "하느님, 이 가여운 영혼을 받아 주세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시에 죽는다는 일도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곧 이어서 이대로 죽기는 너무나 허망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일망정 그래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자문자답했습니다. 그래, 좀더 살다가 죽자. 좀더 살다가 "그동안 열심히 살다 이제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하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 보자!

  그때부터 두 평 남짓한 셋방에서 지겨운 병마와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어코 승리하고 말리라고 전 결심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무한정하며 불가사의한 것이니까요. 사람의 잠재된 능력이란 개발하기에 따라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하더군요. 죽음이란 단순히 육체의 소멸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날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 그래서 죽음이 슬프다는 것도 그날 알았지요.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으나, 일단 결심한  바가 있는 터여서 저는 태연했고 침묵으로 모든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다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남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남이 못 갖춘 것을 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맹인에게는 없는 빛, 나는 그 빛의 충만함 속에서 살고 있다, 신체 중 일부가  없어진 사람이나 신체 내부에서 쉼 없이 솟구치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보다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아에게는 없는 부모가 있으니 행복하고, 경련하는 턱을 베개에 얹고서 왼손으로 20초에 한 자씩이나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으니 그 또한 행복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지요.

  행복의 원리는 간단하다. 자신의 욕망을 줄이면 된다. 냇가의 조약돌이 쓸데 없다고 전부 걷어 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는다...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의 돌을 제거하면 환희와 승리의 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믿습니다. 저도 반드시 쓸모가 있으리라고.

  조약돌 하나라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쓸모  없이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에게랴!

(제2회 샘터 수기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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