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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작은 별 -  김경숙

  "안녕하셨어요, 유 소령님?"
  누운 채 손을 내밀어 때늦은 카드며 선물을 받아드는 유 소령님의 눈에는 그렇게 봐서 그런지 쓸쓸함이 스쳤다. 내가 유 소령님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2월 중순경, 군 계통 병원 근무를 하게 된 지 한 달도 못돼서였다. 토요일 오후, 일직인 나는 병실을 차례로 돌고 있었다. 정형외과 D동 장교실에 들어섰을 때 경환자들이 모두 주말 외출을 나가고 6인용 방에는 그분 혼자 계셨다. 장교실이라야 커튼을 하나 사이에 두고 외출이 금지된 사병 오륙십 명과 격리되어 있는 곳이지만, 커튼과 계급이 주는 단절이란 대단했다.

  나는 방에 들어서면서 멈칫했다. 환자의 인상이 놀랄 만큼 날카로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측정을 마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손에선 땀이 다 났다. 오랜 병상 생활을 한 환자들은 이유 없이 신경질을 내게 마련인데 아무 잔소리를 안 듣고 나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소령 유호철. 우측골 및 좌대퇴 복합 골절.' 몇 달 후인 5월, 나는 바로 그 정형외과 D병동으로 배치되었다. 순간 까다로울 그 소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D동 근무 사흘 뒤, 엄 중위란 해군 장교가 양쪽 다리 골절로 급히 후송되어 왔다. 골절 환자는 특히 고통이 심하므로 조심스럽게 처치를 하고 나오려는데 유 소령님이 나를 불렀다. '이크, 드디어 신경질이 터지나 보다.' 잔뜩 각오를 했더니, 뜻밖에 엄 중위를 잘 보살펴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잘 부탁한다는 당부였다. 나는 차츰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온화한 성품이었다.

  1970년 6월, 육사 출신으로 최전방에 근무하던 그는 무장 공비와의 접전 끝에 양쪽 대퇴와 측골에 탄환이 다섯 발이나 관통하는 중상을 입었다. 몇 차례 수술로 총알이 박힌 다리의 뼈를 3센티미터씩 잘라 내고 다행히 다리를 절단하는 불행은 면했지만 가슴까지 석고 붕대를 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몇 달에 한 번씩 수술 결과를 보기 위해 잠깐씩 석고 붕대를 뺄 때 이외에는 식사는 물론 세수 둥 모든 일을 누워서 치뤄야 했다. 몸을  뒤척일 수 없는 건 말할 나위도 없고, 수술 부위의 통증 또한 대단했다. 매일 몇 차례씩 맞는 항생제에다, 링거액은 바늘을 뺄 새도 없이 병만 바꿨다. 새벽 네 시에 바늘을 꽂아 이튿날 새벽 한 시에서 두 시 사이에 자유로운 한쪽 팔마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곁에서 보다 못한 사람들이 똑똑똑 떨어지는 포도당액을 더 빨리 떨어지게 해놓으면 유 소령님은 벌컥 화를 냈다.

  "포도당이란 몸 안에 필요한 농도가  넘으면 배설되지 않는가. 잠깐 편하자고 빨리 맞아 그냥 내보내면 내 고생의 보람이 뭐겠나?"

  이렇게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좌절감에 빠진 다른 환자들을 격려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누워 있는 환자에게 여름은 특히 괴로웠다. 찌는 듯 더운 저녁 나절이면 나는 유소령님의 침대를 밀고 베란다로 나가 음악을 듣곤 했다.

  "미스 김은 내게 어느 별을 주겠어?"
  "물론 가장 크고 밝은 별을 드려야죠. 저기 저거요."
  "아니, 나는 그 옆의 조그만 별을 늘 보아 왔어. 그게 나야. 너무 작고  희미해서 잘 안 보이지만 개인 날이나 흐린 날이나 늘 그렇게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고, 어느새 또 나타나 깜박이거든."

  침대에 누운 채 밤 하늘의 별을 헤며 독백 같은 말을 하는 그의 곁에서 나는 말을 잃고 있었다. 그가 입원한 지 만 3년이 되던 6월 29일, 나는 꽃을 한 묶음 사들고 그의 병실로 들어갔다.

  "어머나, 아무도 안 왔어요? 오늘이 기념일이잖아요."
  "누가 남의 불행을 오래 기억해 주겠어?"

  그날만은 그도 언짢은지 평소와는 다른 기색이었다.

  "그럼 저라도 축하해 드릴게요."

  나는 뒤에 숨겼던 꽃다발을 내밀며 애써 명랑하게 말을 꺼냈지만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이제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 무섭게 덥던 여름, 공연히 울적했던 가을도 지나고, 크리스마스며 설날도 차례로 지났다. 명절때마다 쾌활한 친구들에게 에워싸여 떠들썩하게 웃다가도 문득 유 소령님의 담담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흰 눈이 온누리를 덮은 오늘, 난 갑자기 그의 병실을 찾아 달려온 것이다. 그동안 다소 차도가 보여 휠체어를 타고 물리치료를 받다가 병이 재발하여 수술을 기다린다는 유 소령님. 난 펑펑 쏟아지는 흰 눈을 바라보며 부디 유 소령님이 석고 붕대를 떼고 일어나, 강인한 인내력의 승리를 외칠 날이 빨리 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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