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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5 22:48

한중록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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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록 (2/2)

  선희궁께서는 나를 대하시면 눈물을 흘리시고 두려워하셔 "어찌 할꼬?" 하는 탄식만 하셨다. 수일을 머무르시고 올라가시니 어머님도 우시고 아드님도 매우 슬퍼하시니 마지막 영결로 그리하셨던가? 갈수록 동궁의 하시는 일이 극도로 낭자하시니, 전후 일이 모두 본심으로 하신 일이 아니건마는 인사 정신을 모르실 적은 화에 들떠서 하시는 말씀이 칼을 들고 가서 죽이고 싶다 하시니, 조금이라도 본 정신이 계시면 어찌 이러하시리오. 당신의 팔자가  기구하여 천명을 다 못하시고 만고에  없는 참혹한 일을 당하려는 팔자니,  하늘이 아무쪼록 그 흉악한 병을 지어 몸을 그토록 만들려 하신 것이다. 하늘아 하늘아, 차마 어찌 이리 만드는가. 선희궁께서 병으로 그러신 아드님을 아무리 책망하여도 믿을 것이 없으매, 자모되신 마음으로 다른 아들도 없이 이 아드님께만 몸을 의탁하고 계시더니 차마 어찌 이 일을 하고자 하시리오. 처음은 자애를 받잡지 못하여 이같이 되신 것이 당신의 종신지통이 되어  계시나, 이미 동궁의 병세가 이토록 극심하고 보모를 알지 못할 지경이니 사정으로 차마 못하여 미적미적하다가 마침내 증세가 위급하여 물불을 모르고 생각지 못할 일을 저지르게 되시면 사백 년의 종사를 어찌하리오. 당신의 도리가 옥체를 보호 하옵는 대의가 옳고, 이미 병이  할 수 없으니 차라리 몸이 없는 것이 옳고, 삼종(효종, 현종, 숙종) 혈맥이 세손께 있으니 천만 번 사랑하여도 나라를 보존하기가 이밖에  없다 하시고 십삼 일  내게 편지하시되, "어젯밤 소문이 더욱 무서우니 일이 이리 된 후는 내가 죽어  모르거나, 살면 세손을 구해서 종사를 붙드는 것이 옳으니 내가 살아서 빈궁을 다시 볼 것 같지 않소." 하셨다. 내가 그 편지를 잡고 울었으나 그 날에 큰 변이 날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오. 그  날 아침에 대조께서 무슨 전좌 나오려 하시고 경현당 관광청에 계셨는데, 선희궁께서 가서 울면서 아뢰되, "큰  병이 점점 깊어서 바랄 것이 없사오니 소인이 모자의 정리에 차마 이 말씀을 못 하올 일이오나, 옥체를 보호 하옵고 세손을 건져서 종사를 평안히 하옵는 일이 옳사오니 대처분을 하옵소서." 하고, 또 이어서 말씀하시되, "부자지정으로 차마 이리하시나 병이니 병을  어찌 책망하오리까? 처분은 하시되 은혜는 끼치셔서 세손 모자를 평안하게 하옵소서." 하시니, 차마 그 아내로 처하여 이것을 옳게 하신다고 못하나 일인즉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따라 죽어서 모르는 것이 옳되 세손을 위해 차마 결단하지 못하고 다만 망극한 운명을 서러워할 뿐이었다.

대조께서 들으시고 조금도 지체하시지 않고 창덕궁 거동령을 급히 내리셨다. 선희궁께서 사정을 끊고 대의로 말씀을 아뢰시고 가슴을 치고 기절할 듯이 당신 계신 양덕당으로 가서 음식을 끊고 누워 계시니 만고에 이런 정리가 어디 있으리오. 그 날이 임오년(영조 38년) 윤오월 열 이틀이었다. 그 날 아침 들보에서 부러지는 듯이  굉장한 소리가 나니 동궁이 들으시고,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왠일인고." 하고 놀라셨다. 동궁은 부왕의  거동령을 듣고 두려워서 아무 소리 없이 기계와 말을 다 감추어 흔적없이 하라 하시고 교자를 타고 경춘전 뒤로 가시며 나를 오라고 하셨다. 근해에 동궁의 눈에 사람이  보이면 곧 일이 나기 때문에 가마 뚜껑을 하고 사면에 휘장을 치고 다니셨는데, 그 날 나를 덕성합으로 오라 하셨다. 그 때가 오정쯤이나 되었는데 홀연히 무수한 까치 떼가 경춘전을  에워싸고 울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괴이하였다. 세손이 환경전에 계셨으므로 내 마음이 황망중 세손의 몸이 어찌 될지 걱정스러워서 그리 내려가서 세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 천만 당부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거동이 웬일인지 늦어서 미시 후에나 휘녕전으로 오신다는 말이 있었다. 그 때 동궁은 나를  덕성합으로 오라 재촉하시기에 가보니, 그 장하신 기운과 언짢은 말씀도 않으시고 고개를 숙여 깊이 생각하시는 양 벽에 기대어 앉으셨는데, 안색이 놀라서 핏기가 없이 나를 보셨다. 응당 홧증을 내고 오즉 하시랴. 내 목숨이 그 날 마칠 것도 스스로 염려하여 세손을 경계 부탁하고 왔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나더러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 살게 하겠네. 그 뜻들이 무서워." 하시기에 내가 눈물을 드리워 말없이 허황해서 손을 비비고  앉았었다. 이때 대조께서 휘녕전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하자" 는 말도 "달아나자"는 말씀도 않고 좌우를 치지도 않으시고 조금도 홧증 내신 기색도 없이 썩 용포를 달라 하여 입으시더니, "내가 학질을 앓는다 하려 하니 세손의 휘항(남바위와 같은  방한모)을 가져오너라." 하셨다. 내가 그 휘항은 작으니 당신 휘항을 쓰시라고 하였더니 뜻  밖에도 하시는 말씀이, "자네가 참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고 하기에 오늘 내가 나가서 죽을 것 같으니 그것을 꺼려서 세손 휘항을  안 주려고 하는 심술을 알겠네." 하시지 않는가. 내 마음은 당신이 그 날 그 지경에 이르실 줄은 모르고 이 일이 어찌 될까 사람이 설마 죽을 일이요, 또 우리 모자가 어떠하랴 하였는데  천만 뜻밖의 말씀을 하시니 내가 더욱 서러워서 세자의 휘항을  갖다 드렸다. "그 말씀이 하도  마음에 없는 말씀이니 이 휘항을 쓰소서." "싫다. 꺼려하는 것을  써 무엇할꼬." 하시니 이런  말씀이 어찌 병드신 이 같으며, 어이 공순히 나가려 하시던가. 모두 하늘이 시키는 일이니 슬프고 원통하다.

그러할 제 날이 늦고 재촉이 심하여 나가시니 대조께서 휘녕전에 앉으시어 칼을 안으시고 두드리시며 그 처분을 하시게 되니 차마 망극하여 이 경상을 내가 어찌 기록하리오. 섧고 섧도다. 동궁이 나가시며 대조께서 엄노하시는 음성이 들려 왔다. 휘녕전과  덕성합이 멀지 않아서 담 밑으로 사람을 보내서 보니 벌써  용포를 덮고 엎드려 계시더라 하니, 대처분이신 줄 알고 천지가 망극하여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였다. 거기 있는 것이 부지러워서 세손 계신 데로 와서 서로 붙잡고 어찌할 줄 몰랐더니, 신시(오후 4시 전후) 쯤 내관이 들어와서 밖 소주방에 있는 쌀 담는 궤를 내라 한다. 이것이 어찌 된 말인지 황황하여 내지 못하고, 세손궁이 망극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뜰 앞에 들어가서, "아비를 살려 주업소서." 하니, 대조께서 "나가라." 하고 엄하게 호령하셨다. 세손은 할 수 없이 나와서 왕자재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때  정경이야 고금 천지간에 없으니 세손을 내어 보내고 천지가 개벽하고 일월이 어두웠으니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고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옆의 사람이 빼앗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죽고자 하되 칼이  없어서 못하였다. 숭문당에서 휘녕전 나가는 건목문 밑으로 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대조께서 칼 두드리시는 소리와 동궁께서,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으니 이제는 하랍시는 대로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내 간장이 마디마디 끊어지고 앞이 막히니 가슴을 아무리 두드린들 어찌하리오. 당신의  용력과 장기로 궤에 들어가라 하신들 아무쪼록 들어가지 마실 것이지 왜 필경 들어가셨는가? 처음엔 뛰어나오려 하시다가 이기지 못하여 그 지경에 이르시니, 하늘이 어찌  이토록 하였는가? 만고에 없는 설움뿐이며, 내 문 밑에서 통곡하여도 응하심이 없었다. 집으로 나와서  나는 건넌방에 눕고, 세손은 내 중부와 오라버님이 모셔 나오고, 세손빈궁은 그  집에서 가마를 가져다가 청연과 한데 들려 나오니 그 정상이 어떠하리오. 나는 자결하려다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십일 세 세손에게 첩첩한 고통을 남긴  채 내가 없으면 세손이 어찌  성취하시리오. 참고 참아서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으니 만고에 나 같은 모진 목숨이 어디 있으리오. 세손을 집에 와서 만나니 어린 나이에 놀랍고 망극한 경상을 보시고 그 서러운 마음이 어떠하리오. 놀라서 병날까, 내가 망극히 함을 이기지 못하고,  "망극 망극하나 다 하늘이 하시는 노릇이니, 네가 몸을 평안히 하고 착하여야 나라가 태평하고 성은을 갚사올 것이니, 설움 중이나 네 마음을 상하지 말라." 하고 위로하였다. 이십 일 신시쯤 폭우가 내리고 뇌성도 하니, 뇌성을 두려워하시던 일이나 어찌 되신고 하는 생각 차마 형용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음식을 끊고 굶어 죽고 싶고 깊은 물에도 빠지고 싶고,  수건을 어루만지며 칼도 자주 들었으나 마음이 약하여 강한 결단을 못하였다. 그러나 먹을 수가  없어서 냉수도 미음도 먹은 일이 없으나 내 목숨 지탱한 것이 괴이하였다. 그 이십 일 밤에 비오던 때가 동궁께서 숨지신 때던가 싶으니, 차마 어찌 견디어 이 지경이 되셨던가. 그저 온 몸이 원통하니 내 몸 살아난 것이 모질고 흉하다.

  선희궁이 마지못하여 그렇게 아뢰어서 대처분은 하시려니와,  병환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신 일이라 애통하여 은혜 더하시고 복제나 행하실까 바라왔더니,  성심이 그 처분으로도 성노를 풀지 못하시고 동궁께서 가깝게 하시던  기생과 내관 박필수 등과 별감이며  장인이며 부녀들까지 모두 사형에 처하시니 이는 당연한 일이오시니 감히  무슨 말을 하리오. 슬프고 슬프도다. 모년 모월 일을 내 어찌 차마 말을 하리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빛을 잃고 캄캄해지는 변을 만나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어 목숨을 끊으려 하였더니 곁의 사람들이 칼을  빼앗음으로 인하여 뜻 같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십 일 세 세손에게 첨첩한 큰 고통을 끼치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성취를 어찌하리요. 참고 참아서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부르짖었다. 그 때 부친이 나라의 엄중한 분부로 동교에 물러나서 근신하고 계시다가 사건이 일단락 된 후에 다시 들어오시니 그 무궁한 고통이야 누가 감당하리오. 그날 실신하고 쓰러지니 당신이 어찌  세상에 살 마음 계시리요마는, 내 뜻과 같아서 오직 세손을 보호하실 정성만 계셔서  죽지 못하시니 이 뜨거운 정성이야 귀신이나 알지 누가 알리오. 그 날 밤에 내가 세손을 데리고 사저로 나오니 그 망극하고 창황한 정경이야 천지도 응당 빛을 변할지니 어찌 말로 형용하리오. 선왕께서 부친께, "네가 보전하여 세손을 보호하라." 하고 분부하셨다. 이 성교 망극지중하나 세손을  위하여 감읍함이 측량없고 세손을 어루만지며, "착한 아들이 되어 선친께 효도하고  성은을 갚으라." 하고 경계하는 슬픈 마음이 또 어떠하리오.  그 후 성교로 인하여 새벽에  들어갈 때에 부친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중마당에서 실성 통곡하시며, "세손을 모셔 만년을 누리사 노경의 목록이 양양하소서." 하고 우셨으니, 그 때의 내 슬픔이야  만고에 또 있으리오. 인산전에 선희궁께서 나를 와 보시니 가없이 원통하신 설움이 또  어떠하시리오. 노친께서 슬퍼하심이 지나치시니 내가 도리어 큰 고통을 참고 우러러 위로하되, "세손을 위하여 몸을 버리지 말으소서." 하옵더니, 장례 후에 윗대궐로 올라가시니 나의 외로운 자취가 더욱 의지할 곳 없었다. 팔월에야 선대왕께 뵈오니 나의 슬픈 회포가 어떠하리오마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고 다만, "모자 함께 목숨을 보전함이 모두 성은이로소이다."  하고 울며 아뢰었다. 선대왕께서 내  손을 잡고 우시면서, "네 그러한 줄 모르고 내 너 보기가  어렵더니 네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하니 아름답다." 하는 말씀을 듣자오니, 내 심장이 더욱 막히고 모질게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또 아뢰기를, "세손을 경희궁으로 데려다가 가르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네가 떠나기를 견딜까 싶으냐?" 하시기에, 내가  눈물을 흘리고 "떠나서 섭섭한 것은 작은 일이요, 위를 모시고 배우는 것은 큰일이옵니다." 하고 세손을 경희궁으로 올려 보내려 하니 모자가 떠나는 정리 오죽하리오. 세손이 차마 나를 떨어지지 못하고 울고 가시니 내 마음이 칼로 베는 듯 참고 지냈다.  선대왕께서 세손을 사랑하심이 지극하시고  선휘궁께서 아드님 정을 세손에 옮기셔서 매사를 돌아보시고 한  방에 머무시면서 새벽이면 밝기 전에  깨워서 "글 읽으라."하고 내보내셨다. 칠 십 노인이 한가지로 일찍 일어나셔서 조반을 잘 보살펴 드리니, 세손이 이른 음식을 못 잡수시되 조모님 지성으로 억지로 자신다 하니 선희궁의 그때의 심정을 어찌 또 헤아리리오. 그해 구월에 천추절을 만나니  내가 몸을 움직일 기운이 없었으나 상교로 인하여 부득이 올라가니 이름 지으시고 현판을  친히 써 주시며, "네 효성을 오늘날 갚아주노라." 하셨다. 내가 눈물을 드리워 받잡고 감히 당치도 못하고 또  불안해 하더니 부친이 들으시고 감축하시오 집안 편지에 매양 그 당호를 써서 왕래하게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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