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글나눔

방문자수 (2014.04~)

전체 : 808,143
오늘 : 403
어제 : 806

페이지뷰

전체 : 35,670,479
오늘 : 6,028
어제 : 14,119
2010.04.24 17:40

한중록 (1/2)

조회 수 21201 추천 수 3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한중록 (1/2)


  앞 부분을 생략하고, 사도세자(경모궁)의 출생에서부터 화를 당할 때까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신년 (영조 4년)후로 왕세자가 오래 비었으매 영조께서 주야로 초조하게 극심하시다가 을묘년 영조 11년 정월, 선희궁께서 경모궁 사도세자 을 탄생하시니 영조께서와 인원, 정성 두 성모께서 종사의 큰 경사를 기뻐하심이 비할 데 없고, 나라의 신민이 또한 기뻐서 춤을 추었다. 경모궁께서 태어나시니 천성과 용모가 비범하게 특이하셨으니 궁중에 기록하여 전하는 바를 보면, 나신 지 백일 안에 기이한 일이 많으시고, 넉 달만에 걸으시고 여섯 달 만에 영조께서 부르시는 데 대답하시고, 일곱 달만에 동서남북을 알아서 가르키고, 두 살에 글자를 배워서 육십여 자를 쓰시고 세 살에 과자를 드리매 수자 복자 박은 것을 골라 잡수시고 팔괘 박은 것은 따로 골라 놓고 잡숫지 않으므로 어떤 신하가, "잡수소서." 하고 권하였더니, "싫다. 팔괘는 먹지 않겠다." 하고 잡숫지 않았다. 그 후에 태호 복희씨가 그려진 책을 높이 들라 하고 절하시고 천자문을 배우시다가, 사치할 치와 부할 부자에 이르러서 치자를 짚으시고 입으신 옷을 가르켜서 이것을 사치라 하시고 영조 어리실 때 쓰시던 감투에 칠보 얽힌 것이 있어서 쓰시게 했으나 이것도 사치라 하고 쓰지 않으셨다. 돌 때에 새 옷을 입으시게 하매 "사치스러워서 남 부끄러워 싫다." 하고 입지 않으셨다. 세 살 때 어느 신하가 명주와 무명을 놓고, "어느 것이 사치요, 어느 것이 사치 아니오니까?" 하고 물었다. 대답하시기를, "명주는 사치하고 무명은 사치하지 않다." "어느 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싶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무명을 가르키시며, "이것이 좋을 것이다."하셨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그 어른께서 탁월하시던 성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체구가 커서 웅장하시고 천것이 효우 총명하셨으매, 만일 부모님 옆을 떠나지 말게 하고 모든 일을 교도하여 자애와 교육을 명행하여 드렸더라면 덕기의 성취가 놀라웠을 것을, 그렇지 못하여 일찍이 각각 멀리 떠나 계신 일로 인연하여 사태가 역전하여 작은 일이 크게 되어, 필경은 말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천수의 불행과 국운의 망극함이니 인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할 일이려니와 나의 지극히 원통함이야 어찌 측량하리오.

영조께서 처하시는 데와 선희궁 처소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두 분께서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으시고 날마다 오셔서 머무셨다 하나, 어찌 한 집 속에서 조석으로 양육하시며 끊임없이 교훈하심과 같으리오. 어찌하신 생각에서인지 귀중하신 종사를 의탁하실 아드님을 겨우 얻으셨으니 부모측에서 양육하며 성취하시게 하지 않고, 처소가 멀리 떨어져서 인사 아실 즈음부터 자연 떠나심이 많고 모이심이 적으니 조석에 대하시는 사람은 환신, 궁첩이요, 들으시는 것이 항간의 잡담뿐이니, 이것이 벌써 잘 되지 못한 장본이며, 어찌 슬프고 원통하지 않으리오. 어렸을 때에 이미 덕기가 이상하시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상도에 벗어남이 없으시고, 기상이 엄중하시고 말이 없고 침착하셔서 뵈옵는 사람이 어른 임금을 모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여겼다. 이러하신 천품과 자질로써 부모 옆을 떠나지 않으시고 부왕께서 정사의 여가에 글 읽고 일 배우심을 옆에서 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모빈께서도 이 아드님 성취하시는 것이 당신의 으뜸가는 소원이시니, 손 밖에 내보내지 마시고 매사를 가르치셔서 흔연히 사이가 없었더라면 어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처음 당하는 참변이라 슬프고 애닲은 것이, 하나는 어리신 아기를 저승전에 멀리 두심이요, 둘은 괴이한 나인들을 들이신 연고이매 이는 여편네의 잔소리가 아니라 사실의 시초를 대략 기록한다. 처음엔 영조께서 지극하신 자애가 비할 데 없으셔서 서오 세까지도 저승전에 오셔서 주무시고 계시기를 자주하셔서 자야하심이 틈이 없으시더니, 국운이 그릇되려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에도 성심이 불언중 격노하시고, 하루 이틀 어찌 된 줄 모르게 동궁에 머무시는 일이 차차 줄어들게 되었다. 막 자라시는 아기네라 한때만 가르치지 않고 잘못을 금하지 않으면 달라지기 쉬운 시절에 자연 안 보실 때가 많으니 어찌 탈이 나지 않으리오. 점점 자라심에 따라 놀기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이는 아기네의 성정이라.

그 때 한 상궁이라 하는 것이 나무와 종이로 큰 탈도 만들고 활과 화살도 만들어드리며 부채질을 하였으니, 놀기에 팔려서 글은 아니 하시고 놀기만 하다가 부왕께 꾸중을 들을까, 모친이 아실까 염려하게 되니 자연 부모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이가 뜨게 된 것이다. 더구나 부자 성품이 다르셔서 영조께서는 영명인효하시며 자세하고 민첩하신 성품이시고, 경모궁께서는 말이 없이 침중하셔도 행동이 날래지 못하고 민첩치 못하시니 덕기는 거룩하시나 범사에 부왕의 성품과는 다르셨다. 성시에 물으시는 말씀이라도 곧 응대하지 못하셔 머뭇머뭇 대답하시고 무엇을 물으실 때에도 당신 소견이 없는 것이 아니로되,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곧 대답지 못하여 영조께서 매양 갑히 여기셨는데 이런 일도 또한 큰 화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저 아이 가르치는 것이 비록 지존한 터에 나셨더라도 당신 부모를 모시고 가르침을 받자와 부모 스스로가 허물이 없어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포대기 시절부터 부모를 떠나고 나인들이 아기 네 스스로 할 일까지 전부 시중들어서, 심지어 옷고름, 대님 매는 것까지 다하여 드리니 매사를 남에게 맡기고 너무 편하시기만 하였다. 강연에서 학만을 인접하실 때 글 외는 소리도 엄숙하며 맑고 크시고 글 뜻도 그릇됨이 없으시니, 뵈옵는 이가 거룩하다 하여 영명이 많이 나타나시되 갑갑하고 애닲을손, 부왕을 모시고는 어려워서 응대를 민첩하게 못하시는 일이다. 영조께서 한 번 갑갑하시고 두 번 갑갑하시다가 결국 격분도 하시고 조심도 하시나, 이럴수록 가깝게 두어서 친히 가르치셔야 지정이 무간하게 될 도리는 생각지 않으시고, 항상 멀리 떼어 두고서 스스로 잘 되어서 성의에 맞으시기를 기다리시니 어찌 탈이 생기지 않으리오. 그리하여 점점 서먹서먹하게 지내시다가 서로 보실 때에는 부왕께서는 책망이 자애에 앞서시고, 아드님께서는 한 번 뵈옵는 것도 조심스럽고 두려우심이 무슨 큰 일이나 지내는 것 같아서 불언중 부자분 사이가 막히게 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가깝게 두실 적은 책문도 힘쓰시고 부자분 사이도 무간하시고 유희도 안하시더니, 멀리 계신 후는 유희도 도로 하시고 강학도 전일치 못하시니 부자간의 서먹서먹 하신 것도 더 심해졌으니, 만일 부모님 손 밖에서 내시지만 않았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이 한 가지 일로 생각하여도 서러운데, 어찌하신 성의인지 아드님을 조용한 때 친근히 앉히시고 진정 교훈하시는 일이 없으시던가? 모두 남에게만 맡겨 버리고 아는 체하지 않으시다가 항상 남들 모인 때면 흉보시듯이 말씀하시니 얼마나 답답하리오. 한 번은 인원 왕후도 내려오시고 여러 옹주와 월성, 금성 두 부하도 들어오고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나인을 명하셔서, "세자 가지고 노는 것을 가져오라." 하시고 여러 사람이 보게 하여 무안하게 하시고, 강학에 대해서도 여러 신하가 많이 모인 때에 굳이 부르셔서 글 뜻을 물으시되, 아기네 자세히 대답하지 못할 대목을 각박히 물으시곤 하셨다. 본대 부왕 면전에서는 분명히 아시는 것도 쭈볏쭈볏하시는 데 여러 사람 앞에서 어려운 것을 일부러 하시듯이 물으시니 경모궁께서는 더욱 두렵고 겁이 나서 못하면 남이 보는 좌 중에서 꾸중하시고 흉도 보셨다. 경모궁께서는 그런 일이 한두 번 만이면 감히 원망하실 것이 아니로되, 당신은 진정 교훈을 하시지 않는 것을 노엽고 어렵게 여겨서 필경 천성을 잃기에 이르도록 하시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본디 경모궁께서는 천질이 넓고 크시며 도량이 활달하시고, 부왕을 무서워는 하시나 잘못한 일이라도 사실대로 정직하게 아뢰고 일호도 기망하시는 일이 없으므로 영조께서도 속이지 않는 것은 알고 계셨다.

  기사년 경모궁이 십오 세 되시니 관례하시고 합례를 정하니 그저 기뻐하시고 조용히 재미를 보시면 좋으실 텐데, 어찌하신 성의이신지 홀연히 대리하실 영을 내리시니, 억만사 대리 후에 탈이니 어찌 서럽지 않으리오. 영조께서는 공사 중 금부, 형조, 살육 등의 일은 친히 보시지 않고 동궁께 맡기셨다. 대리를 맡으신 후의 공사는 한 달에 여섯 번 있는 차대에 보름전 세 번은 대조께서 하시는데 동궁이 시좌하시고, 보름 후 세 번은 소조께서 혼자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순편하지 못하고 편론이나 하는 상소는 소조께서 혼자 결단하지 못하여 대조께 묻자오면, 상서가 아랫사람의 일이지 소조께서는 아실 바 아니로되 격노하셨는데 그것은 소조께서 신하를 잘 조화시키지 못한 탓으로 그런 상소가 나왔다고 책하셨다. 그리고 그런 상소에 대한 비답도, "그만 일을 결단하지 못한 탓으로 나를 번거롭게 하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하시며 꾸중하셨다. 그러나 아뢰지 않으면 또, "그런 일을 어찌 알리지 않고 왜 자탄할 수 있느냐?" 하고 꾸중하셨다. 이처럼 저리할 일을 이리하지 않는다 꾸중하시고 이리할 일을 저리하지 않았다 꾸중하셔서 이 일 저 일 다 격노하여 마땅하지 않게 여기셨다. 심지어는 백성이 추운데 입지 못하고 굶주리거나 날이 가물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소조에게 덕이 없어서 이렇다." 하고 꾸중을 하셨다. 그러므로 소조께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을 하거나 하기만 해도 겁을 내게 되므로, 마침내 사사망념으로 병환이 생기는 줄을 깨닫지 못하시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한 번 꾸중에 놀라시고 두 번 격노에 겁내시면 아무리 웅위하시고 영장하신 기품이라 한들 한 가지 일이라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으리오. 경모궁이 십오 세 되시니 능행을 한 번도 못하시고 성장하셨는데, 항상 교외 구경을 하고 싶으셨어도 매양 거절하고 못 가시게 하니, 처음에는 서운하고 섬득하신 것이 점점 성화가 되어서 우실 적도 있었다. 당신이 부모님께 속으로 본디 정성은 거룩하시건마는 민첩하지 못하신 행동이 정성의 백분지 일도 나타나지 못하니, 부왕은 그 사정을 모르시고 미안하신 사색은 매양 한 번도 부왕의 관용을 입지 못하시니  점점 두려운 것이 마침내 병환이 되어서 화가 나시면 푸실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내관과 나인에게 푸시고, 심지어 내게까지 푸시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영조께서는 창의궁에 오래 머무르시고 환궁하지 않으실 때 경모궁께서는 시민당 손지각 뜰의 얼음 위에 짚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대죄하시다가 창의궁에 걸어가셔서 또 짚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대죄하시고 머리를 돌에 부딪쳐서 망건이 다 찢어지고 이마가 상하여 피가 나왔으니, 이런 일이 천성의 효성과 본질이 중후하신 것이요, 억지로 꾸민 일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리하실 즈음에 또 꾸중이 어떠하시리요마는 공손히 도리를 다하시니 변을 당하여 잘 처리하시기로 영명을 많이 얻으셨다. 경모궁께서 매양 경문 잡설 등을 심하게 보시더니, "옥주경을 읽고 공부하면 귀신을 부린다하니 읽어보자." 하시고 밤이면 읽고 공부하셨다. 그러더니 과연 깊은 밤에 정신이 아득하셔서, "뇌성보화 천존이 보인다." 하시고 무서워하시며 병환이 깊게 드시니 원통하고 슬프다. 십여 세부터 병환이 생겨서 음식 잡숫기와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 다 예사롭지 않으시더니 옥추경 이후로 자주 기질이 변화하신 듯이 되어 무서워하시고 옥추 두 글자를 거들지 못한다. 단 오셨을 때는 옥추단도 무서워서 찾지 못하고, 그 확에는 하늘을 퍽 무서워하시고 우레뢰, 벽력벽, 그런 자를 보지 못하시고 그 전에는 천둥을 싫어하시나 그리 심하지는 않으시더니 옥추경 이후는 천둥 때면 귀를 막고 엎드려서 다 그친 후에야 일어나시니 이런 일을 부왕과 모친께서 아실까 질겁하시는 것은 형용하지 못할 일이었다.

  을해년 이월에 역변이 나서 오월까지 영조께서 친히 심판하시니 그 때 역적을 정법하여 모든 대신들이 늘어서는 때면 동궁을 불러내서 오게 하시고 날마다 전파하셔서 심판하시다가 들어오시면 인정 후나 이 경이 되고 삼사 경이 될 적도 있었으니 하루도 폐하지 않으시고, "동궁 불러라." 하시어 가시면 "밥 먹었느냐?" 하고 물으신 후에 대답하시면, 즉시 그 날 친국하신 일 물으시고 가시려는 것이매, 실은 좋고 길한 일엔 참례치 못하게 하시고 상서롭지 못한 일에는 참석하게 하시고 잠깐 수작이나 하시면 그러도 하련마는 날마다 다른 말씀은 한 마디 하시는 일없이 마치 대답시켜서 듣고 귀를 씻고 가시기 위해서 하루도 폐하지 않고 밤중에 그러시니 아무리 지극한 효심이요, 병 없는 사람이라도 어찌 싫지 아니하리오, 그 병환의 증세를 생각하면 짜증이 나셔서, "왜 부르십니까." 하실 듯 하되 그 병환을 능히 참으시고 날마다 방중이라도 부르시는 때를 어기지 않으시고 대령하고 계시다가 그 대답을 어기지 않고 하시니 본연의 효성을 알 수 있다. 그 병환이 이상스러운 것은 처자가 애쓰고 내관이나 나인이 주야에 두려워 지내나 자모도 자세히 모르시니 부왕께서 어찌 자세히 아실 수 있으리오. 위에 뵈올 적과 신하에 대하실 적은 보통과 다름없이 예사로우시니 그것이 더욱 답답하고 서러운 일이었다. 병자 설날에 상으로부터 존호를 받자오시되 경모궁은 참례시키지도 않으셨다. 병화는 더욱 깊어서 강연도 더듬으시고 취선당 바깥 소주방이 깊고 고요하다 하여 많이 머무르시더니 오월에 영조께서 홀연 낙선당을 보러 나오시니 그 때 동궁이 세소도 잘 못하시고 의대 모양이 모두 다정치 않으셨다. 마침 금주가 엄한 때라 술을 잡수셨나 의심하시고 대노하셔서, "술 드린 이를 찾아내라." 하시고 경모궁께서 누가 술을 드렸느냐고 엄중히 물으셨으나 사실로 술 잡수신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리오. 영조께서는 아무일이든지 억측으로 생각하시어 엄히 꾸짖으시는 일이 많았다. 그날 경모궁을 뜰에 세우시고 술 먹은 일을 엄문하시니 실지로 잡수신 일이 없건마는 감히 무서워서 변명을 하는 성품이시라 하도 강박히 물으시니 하는 수 없이, "먹었나이다." 하시니 "누가 주더나?" 델 데가 없어서 "밖의 소주방 큰 나인 희정이가 주옵더니다." 하시니 영조께서 두드리시며. "네 이 금주하는 때 술을 먹어 광패히 구느냐?" 하고 엄책하셨다. 이 때 보모 최상궁이 원통하여 참을 수 없어서 아뢰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모궁께서는 최상궁을 꾸짖으셨다. "먹고 아니 먹고 간에 내가 먹었다고 아뢰었으니 자네가 감히 말할 것이 있는가. 물러가소." 보통 때는 부왕 앞에서 주저하여 말씀을 못하시더니 그 날은 원통이 꾸중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던가. 그 때 두려워서 벌벌 떠시던 중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다행하더니 영조께서 또 격노하셨다. "네 내 앞에서 상궁을 꾸짖으니 어른 앞에서는 개도 꾸짖지 못하는데 그리하느냐?" "감히 와서 변명을 하기로 그리 하였습니다." 얼굴을 낯추어서 아래사람의 도리로 잘하신 일이었다.

그러나 금주령 하래서 동궁께 술을 드렸다고 희정이를 멀리 귀양보내시고 대신 이하 인견하라 하시고 춘방관을 먼저 들어가 면담하라 하오시니, 그 날 억울하고 슬퍼서 홧증을 참기 어렵다가 춘방관이 들어오니 처음으로 호령하셨다. "너희놈들이 부자간에 화하게는 못하고 내가 이렇게 억울한 말을 들어도 너희들은 말 하나  아뢰지 않고 감히 들어올까 보냐. 다 나가라." 춘방관 하나는 누구였는지 모르나 하나는 원인손이었다. 그는 무어라 아뢰고 썩 나가지 않으니 경모궁께서 화를 내시고 "어서 나가라 " 하고 쫓아내실 즈음에 촛대가 거꾸러져서 낙성당 온돌 남창에 닿아 불이 붙었다. 불 잡을 사람은 없고 화세는 급하여 순식간에 낙선당이 타니 영조께서는 아드님이 성결에 불을 지르신 것이 아닌가 하고 노염이 십 밴타 더 하셔서 함인정에 제신을 모으시고 경모궁을 부르셔서, "네가 불한당이냐, 불을 왜 지르느냐?" 하고 호령하셨다. 그때의 설움이 가슴에 복받쳐서 또 거기서도 그 불이 촛대가 굴러서 난 불이라는 원인을 여쭙지 않으시고 스스로 방화한 듯이 하시니 절절이 슬프고 갑갑하였다. 그날 그 일을 지내시고 막히셔서 청심환을 잡수시고 울화를 내리시더닝, " 아무래도 못살겠다." 하고 저승전 앞뜰의 우물로 가서 떨어지려 하시니 그 놀라운 경상과 끔찍한 형용을 어찌 말할 수 있으리오. 가까스로 구하여 덕성합으로 나오시게 하였다.

  대저 부자분 사이가 좋지 못하신 곡절이 또 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신미 동짓달에 현빈궁 상사나시니 영조께서 효부를 잃으시고 애통하시어 장례에 친히 임하시어 간곡하게 돌보셨다. 그러는 중 그 곳 시녀 나인이 문녀였는데 상사 후 가까이 하셔서 잉태하고, 그 오라비는 문성국이란 놈인데 그것을 별감으로 사랑하시고 문녀도 총애하여 계유 삼월에 옹주를 낳았다. 문성국이 제 무슨 심장으로 동궁께 흉한 뜻을 먹었는지 요악 간흉한 놈이 아니리오. 부자분 사이가 좋지 못하신 것을 그놈이 알고 그 틈을 타서 부왕의 성의만 맞추어서 동궁 하시는 일을 전부 염탐해다가 고자질해 올렸다. 동궁 하시는 일을 누가 사이에서 말할 이 있으리오마는, 성국이는 세력을 믿고 무서운 마음이 없어서 동궁 액속들이 모두 제 동류이므로 동궁의 사소한 일까지 듣는 족족 대조께 여쭙고, 문녀는 안으로 모든 소문인즉 다 여쭈니, 모르실 제도 의심하시던 터에 날로 동궁의 험만을 들으시니 성심이 갈수록 갑갑하게 되실 수밖에 없었다. 국운이 불행하여 요녀와 간적이 일어난 일이 슬프다. 병자년 마마병으로 모친 상사를 당하시니 슬프시기도 하고 마음을 많이 쓰시니 병환은 점점 더하시고 성국이는 듣는 일마다 아뢰어 두 분 사이가 더욱 망극하여다. 그 때 가뭄은 들고 노염이 장하셔서 엄교가 많으시니 그 밤에 동궁이 덕성합 뜰에서 휘녕전 바라보시고 슬피 울면서 죽고자 하시던 일을 어찌 다 적으리오.

  그 유월부터 홧증이 더 하셔서 사람 죽이기를 시작하시니 그때 당번 내관 김환채라는 것을 먼저 죽여서 그 머리를 들고 들어오셔서 나인들에게 보이시니, 내가 그때 사람의 머리를 벤 것을 처음 보았는데 그 흉하고 놀랍기 이를 것이 어이 있으리오. 사람을 죽이고야 마음이 조금 풀리시는지 그 때 나인 여럿이 상하니 그 갑갑하기 측량없어 마지 못하여 선희궁께, "병환이 점점 더하여 이러하시니 어찌 할꼬?" 하고 여쭈니 놀라서 음식을 끊고 자리에 누워서 근심하시니 또한 망극하니 그저 죽어서 모르고 싶었다. 정축년 동짓달 변 후에 관희합에서 머무르시더니 무인 삼십 사년 이월에 부왕께서 또 무슨 일로 불평하시고 동궁 계신 데로 찾아가시니 동궁 하고  계신 것이 어찌 눈에 거슬리지 않으시리오. 숭문당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시니 동짓달 후 처음 만나셨다. 여러 조건을 많이 꾸중하시고 하신 일을 바로 아뢰라고 추궁하셨다. 경모궁께서는 아무리 어른들이 아시면 큰 일이 날 줄 아시면서도 어전에서는 당신 하신 일을 바로 아뢰시는 품이니 이는 천성이 숨김이 없어 그러신지 이상하였다. 그 날도 그 말씀에 대답하시기를,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을 죽이거나 하여야 마음이 풀립니다." "어찌하여 그러하냐?" "마음이 상하여 그러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상하느냐?" "사랑하지 않으시므로 슬프고, 꾸중하시기로 무서워서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하고 사람 죽인 수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세세히 다 고하였다. 영조께서도 그 때 일시 천륜이 정이 통하셨던지 마음에 측은하셨는지, "내 이제는 그리 않으마." 하시고 노염이 조금 감하시고 경춘전으로 오셔서 나더러 하시기를, "세자가 이러이러 하니 그리할시 옳으냐?" 하시니 부자간에 그런 말씀이 처음이었다. 하도 뜻밖의 말씀이라 내가 창졸에 듣잡고 놀라 기뻐하고 감읍하여 눈물을 드리워 아뢰었다.  "그러옵다 뿐이오리까? 어려서부터 자애를 입삽지 못하와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서 심병이 되어 그러하옵니다." "마음이 상하였다 하는구나." " 상하기 이르오리까? 은혜를 드리시면 그렇지 않으오리다." 이렇게 여쭈며 서러워서 우니 안색과 말씀이 좋아지셨다. "그러면 내가 그리한다 하고, 잠은 어찌 자고 밥은 어찌 먹느냐? 내가 묻는다고 하여라." 하셨는데, 그 날이 무인(영조 34년) 이십 칠일이었다. 내가 대저께서 관희합에 가시는 양을 보고 또 무슨 변이 날까 혼비백산하여 애를 쓰다가 의외의 하교를 받잡고 하도 감격하여 울며 웃으며 "이리하와 그 마음을 잡게 하시면 오죽 좋겠습니까?" 하고 절하고 손을 비비며 축수하매 내 거동이 가엾으시던지 온화하게, "그리 하여라." 하고 가셨다. 이것이 어찌 되신 성교이신지 희한한 꿈 같았다.

마침 경모궁께서 나를 오라하여 가 뵙고 "왜 묻지도 않으신 사람 죽인 말씀을 하셨습니까? 스스로 그런 말씀을 하시고 나중에는 남의 탈을 삼으시니 어찌 답답지 않습니까?" "알고 물으시니 다 말씀드릴 수밖에." "무엇이라 하시옵더이까?" "그리 말라 하시더군." "이렇게 듣자왔으니 이 후는 부자간이 다행히 좋아지겠습니다." 하였더니 홧증을 덜퍽 내시면서, "자네는 사랑하는 며느리라 그 말씀을 다 곧이 듣는가? 부러 그러하시는 말씀이니 믿을 수 없소. 필경을 내가 죽고 마느니." 그러할 제는 병환 계신 이 같지 않고, 아까 부와께서 유연한 천륜으로 말씀하셨으니 믿잡지 못하오나 한때 그 말씀이라도 감축하여 울었고, 경모궁께서 병환 중 능히 하시는 밝은 소견을 들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으리오. 대저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토록 하시게 하여 아버님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이 도로 미움이 생기시고, 아드님은 속이는 일이 없이 당신 과실을 고하시니 이는 천질의 착함이라 좀 예사로우시면 어찌 이같이 하시리오. 하늘 뜻이 어찌하여 이토록 만고에 없는 슬픔을 끼치셨는지 애통할 뿐이다. 이때 의대병이 극심하시니 그 무슨 일인고. 의대병환의 말씀이야 더욱 형편없고 이상한 괴질이신, 대저 옷을 한가지 입으려 하시면 열 벌이나 이삼십 벌이나 하여 놓으며 귀신인지 무엇인지 위하여 놓고 혹 불사르기도 하고, 한 벌을 순하게 갈아입으시면 천만 다행이요, 시종드는 이가 조금만 잘못하면 옷을 입지 못하여 당신이 애쓰시고 사람이 다 상하니 아니 망극한 병이냐? 어떤 때는 하도 많이 하니 무명인들 동궁 세간에 무엇이 많으리오. 미처 짓지도 못하고 옷감도 얻지 못하면 사람 죽기가 순식간에 일이니, 아무쪼록 옷을 해대려도 마음이 쓰이는지라. 부친이 이 말을 들으시고 근심하는 탄식이 무궁하시고, 내가 애쓰는 일과 사람 상할 일을 민망히 여기시고 그 옷을 이어 주셨다. 그 병환이 육칠 년에 걸쳐서 극히 성한 때도 있고 좀 진정한 때도 있었다. 그 옷을 입지 못하여 애를 쓰시다가 어찌하여 조금 증세가 나아서 천행으로 한 벌 입으시면 당신도 다행한 것같이 여기고 더럽도록 입으셨으니 그 무슨 병이련고. 천백 가지 병 중 옷 입기 어려운 병은 자고로 없는 병인데 어찌 지존하신 동궁이 이런 병을 들으셨는지 하늘을 불러 알 길이 없었다.

정성 왕후와 인원 왕후 두 분의 소상을 차례로 무사히 지내고 두어 달은 극심한 탈은 없이 지나가고 국상 후에 동궁께서 홍릉에 참배하지 못하였으므로 마지못하여 따라가게 하셨다. 그 해 장마가 지지하다가 거동날 큰비가 쏟아지매 부왕께서 날씨가 이런 것은 아드님을 데려온 탓이라 하시고 능에 미처 가지 못하여, "도로 들어가라." 하고 동궁을 쫓아 돌려보내고 부왕만 가셨다. 동궁께서는 능에 전알하려 하시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셨으니 어찌 섭섭하지 않으시리오. 거동이 잘 다녀오시기를 축수하다가 이 기별을 듣고 나는 망연 실색하고 이제 들어오시면 짜증을 얼마나 내실까 하고 쩔쩔매고 있었더니 동궁께서 큰비를 맞고 도로 들어오시니 그 마음이 어떠하시리오. 격기가 올라서 바로 오실 수 없어 경영고에 들러서 기운을 진정하고 들어오셨다니 그 모양 얼마나 고통스럽고 걱정스러웠을까? 그런 동굴을 생각하니 그 일은 병들지 않으시더라도 대순의 효도가 아니고는 섧지 않으실 리 없을 것이다. 선희궁과 나는 서로 마주잡고 울뿐이었다. 당신도 비관하신 어조로, "점점 살길이 없다." 하시고 그 후에 옷을 잘못 입고 가서 그런 일이 났는가 걱정으로 의대 증세가 더 하시니 안타까왔다. 이렇듯 신사년이 되니 동궁의 병환이 더욱 심해지셨다. 대조께서 이어하신 후에는 후원에 나가서 말타기와 군기 붙이로 소일할까 하시다가, 칠월 후에는 후원에도 늘 가시니 그것도 심심해서 뜻밖에 미행(몰래 나들이 하는 일)을 시작하셨다. 처음의 일이라 어이없으니 어찌 다 그 근심을 형용하리오. 병환이 나서면 사람을 상하고 마셨다. 그 옷시중을 현주의 어미가 들었는데, 신사년 정월에 미행하려고 옷을 갈아입으시다가 의대증이 발작하여 당신이 총애하시던 것도 잊으시고 그것을 쳐죽이고 나오셨다. 즉각에 대궐에서 이런 탈이 났으니 제 인생이 가련할 뿐 아니라 제 자녀가 있으니 어린것들의 정상이 더 참혹하였다. 이렇게 하여 정월 이월 삼월을 미행으로 보내서 궁 밖 출입이 잦으시니 그 때 내 마음이 얼마나 무섭고 조심스러웠으리오.

경진년 이후 내관 나인이 동궁께 상한 것이 많으니 기억하지 못하되 뚜렷이 나타난 것은 서경달이니 내수사 것 더디 거생한 일로 죽이고 출입한 내관도 여럿이 상하고, 선희궁 나인 하나도 죽어서 점점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장님들도 불러 점을 치시다가 그것들이 말을 잘 못하면 죽이고 의관이며 역관이며 액속 죽은 것들도 있어서 하루에도 대궐에서 사람 죽는 것을 여럿 쳐내니 내외 인심이 황황하며 언제 죽을지 몰라서 벌벌 떨었다. 당신의 천질은 진실로 거룩하시건만 그 착하신 본성을 잃으시고 아주 그릇되시니 이를 어찌 차마 말하리오. 경진 오월 선희궁이 세손 가례 후 처음으로 세손빈도 보실 겸 아랫대궐에 내려오셨다. 동궁께서 반갑게 대하심이 과중하셨는데 마음이 영하여 마지막 영결로 그리하셨는지 모른다. 잡수시는 것과 잔치하는 진상이 거룩하여 과실을 놓게 고이고 인삼과도 하여 놓고, 수연시를 지으시고 잔을 올리시고 남은 것 없이 받으셨다. 그리고 후원에 모셔갈 제 가마를 대연 모양으로 하여 권하자, 선희궁께서 마다하시고 억지로 태우시고 앞에 큰 기를 세우고 풍악을 합치며 모셨다. 그 모양이 당신으로는 극진히 효행하기는 일이라 선희궁께서는 동궁의 그러시는 것이 병환인 것을 망극히 놀라시고 거절하셨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 용궁부연록 바람의종 2010.07.12
42 윤지경전 바람의종 2010.05.29
41 어우야담 中 바람의종 2010.05.18
40 춘향전(2/2) 바람의종 2010.05.13
39 춘향전(1/2) 바람의종 2010.05.11
38 이생규장전 바람의종 2010.05.10
37 흥부전 2/2 바람의종 2010.05.07
36 흥부전 1/2 바람의종 2010.05.06
35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 中 동명일기 바람의종 2010.04.30
34 조침문 바람의종 2010.04.28
33 한중록 (2/2) 바람의종 2010.04.25
» 한중록 (1/2) 바람의종 2010.04.24
31 인현왕후전 바람의종 2010.04.17
30 윤씨행장 바람의종 2010.04.13
29 홍길동전 바람의종 2010.04.03
28 강도몽류록 바람의종 2010.04.02
27 계축일기 바람의종 2010.03.31
26 산성일기 바람의종 2010.03.23
25 장화홍련전 바람의종 2010.03.16
24 만복사저포기 - 김시습(1435~1493) 바람의종 2010.03.1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