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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11:08

윤씨행장

조회 수 20144 추천 수 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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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씨행장

  참판공이 다른 자제 없고, 정혜옹주 다른 자제 없고, 오직 대부인 하나뿐인 고로, 옹주 친히 기르시니 입으로 외워 소학을 가르치니, 대부인이 총명하고 숙성하여 한번 가르치매 입을 올리니, 옹주 매양 그 여잔 줄을 한하더라. 및 자라매 의복과 음식을 사치치 아니케 하여 가로되 다른 날 가난한 선비의 아내 되면 어찌 장 이같이 하리요 하더니, 및 우리 선군께 들어오매, 옹주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부가는 예법하는 집이라, 혹 부도를 어기어서 나를 부끄럽게 말라."

하여 가르치기를 아 같이 하는 지라. 대 부인이 나이 바야흐로 열 넷이로되 심히 기림을 받더라. 정축년 난리에 선군이 강도에서 사절하시니, 대 부인이 바야흐로 잉태하여 홍부인 계신 데 있더니, 배를 얻어 화를 면하니, 이때 선형은 바야흐로 다섯 살이요, 불초 만중은 배 속을 떠나지 못하였더라. 난 이 정한 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돌라와 부모 슬하에 의지하여, 안으로는 홍 부인을 도와 가사를 보살피고, 밖으로는 참판공을 섬겨 능히 받기를 옛 효자같이 하고, 틈을 얻으면 서사를 보아서 스스로 심사를 위로하니 날로 답게 됨이 너르더라. 이에 참판공이 아들 없음을 잊고 일찍 탄하여 가로되,

"매양 손녀로 더불어 말하매 마음이 문득 시원하니, 만일 사나이면 우리 집 한 대제학이니리리오."

하더라.

'중략'

이로부터 집안이 더욱 가난하여 몸소 띠를 짜고 수놓아 조석을 잇되 늘 태연하여 일찍 근심하는 빛 없고, 또한 불초 형제로 하여금 알게 아니 하니, 대게 일찍이 가사에 골몰하여 서적 공부에 방해로울까 염려함이러라. 불초 형제 아이 적에 비길 스승이 없으니, 소학, 사략, 당시 같은 유는 대부인이 다 손수 가르치시니, 비록 사랑하기를 과히 하나, 그 글 전하시기는 심히 엄히 하사 늘 이르되,

"너희 무지 다른 사람에 비길 바가 아니라, 반드시 재주가 남보다 한층 뛰어나야 반드시 가로되, '과부의 자식이로다'하는 지라. 이 말은 너희 마땅히 뼈에 새기라."

하시고 불초 형제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몸소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시며 울며 말씀하시되,

"네 부친이 네 형제로써 나에게 의탁하고 죽었으니, 네 이제 이렇듯 한지라, 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 너의 부친을 보리오. 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지라."

하니, 그 말의 통절함이 이렇듯 하더라. 선형이 글 잘하기는 비록 천성이나, 그 재주 숙성함은 또한 대부인의 힘이 많고, 만일 만중의 흐리고 어두워 스스로 바람은 가르치기를 아니기 아닐러라. 때에 난리 지난지 오래지 않은지라, 서적을 얻기 어려우니, 맹자, 중용 같은 유를 부인이 다 곡식을 주고 사고, 좌씨전 파는 사림이 있으되 권수가 많은지라, 권수 많음을 보고 감히 값을 묻지 못하니, 대부인이 베틀 가운데 명주를 끊어 값을 주니, 이 밖은 옷할 것이 남은 것이 없더라. 이웃 사람이 옥당 서리를 인연하여 홍문관에 있는 사서와 시경언해를 빌어내어 손수 벗기시되, 자획이 정세하여 구슬을 꿴 듯하여 한 곳도 구참함이 없더라.

'중략'

대부인이 일찍 근대 비명을 보시다가 여자의 덕 일컫기를 너무 과히 함을 병같이 여겨 가라사되,

"규문안 일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라. 붓 잡는 자가 다만 그 집 사림이 이르는 대로 의지하려 하는 고로 그 말을 족히 믿지 못하니, 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동방에 계집이 많으뇨."

이 말씀이 오히려 낭낭하여 귀에 있는지라, 이제 덕을 기록하는 글에 감히 한 자도 꾸미지 못하여 너무 간략하게 함은, 대개 대부인의 평생 뜻을 생각함이니라. 경오 팔월 일에 불초 고애남 만중은 읍혈하고 삼가 기록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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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작동기

이 <윤씨행장>은 서포 자신이 타고난 효행을 다하지 못하고 유배지에서나마 모친께 향한 지극한 효행을 문장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의 부친이 정축호란을 당하며 절사하여 유복자로 태어나, 두 형제는 모친의 가르침에 힘입어 가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형은 일찍 죽고 서포 자신마저 왕의 노여움을 받아 외로운 남해 적소로 유배되었다. 거기서 그는 모친의 부음을 듣고 죄인의 몸으로 분상조차 못하는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불효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실로 효성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 있다, 그는 모친의 부음을 듣고 죄인의 몸으로 분상조차 못하는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불효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실로 효성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 있다. 그는 모친 영전에 피눈물로써 복받치는 슬픔을 잠시 억제하고 지극한 효성을 행장에 담아 승화시키니, 모든 이들이 감동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모친의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을 나타낸 행장이면서 서포 자신의 지극한 효행의 총결이며, 못 다한 효심을 응축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효행의 호소가 절정으로 승화되어, 모친의 장하고 빛나는 행적을 적어 길이 후세의 귀감을 삼으려 지은 것이라 하겠다. 자손들이 서포의 생장을 짓고 영정을 그려 앙모.감읍하고 나라에서는 효자정려를 내리어 현창하니 만고에 빛나게 되었다. 

(2) 주제의식

그리하여 이렇게 지어진 <윤씨행장>은 서포의 뜻대로 국문화 되어 널리 읽히고 유통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서포의 그 효행사상 실천과 <윤씨행장> 등의 효행 작품으로 하여 이 <윤씨행장> 그 작품자체가 드러내는 주제의식은 매우 강렬하다. 여기서는 작자의 효행사상이 확연히 나타난다. 작자의 평생 효행도 대단하게 부각되지만, 그 효행의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지었다는 점에서, 그 작가가 목숨을 바쳐 효성함으로써 출천대효의 한 귀감․전범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윤씨의 찬연한 행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냄으로써, ‘여자의 일생’, ‘불멸의 여인상’, 내지 ‘구원의 자모상’을 형상화하려는 작자의 주제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존귀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는 학문에 정진하고 시집간 지 5년 만에 청상과부가 되어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두 아들을 훌륭한 문인이자 관리로 길러낸 해평 윤씨. 그녀는 조선이란 폐쇄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영민함을 떨칠 수 없음을 절망하지 않고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말뿐이 아니라 자신의 몸소 인간의 도리와 선비의 길을 보여준 큰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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