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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축일기

  임자년 겨울에 유자신의 아내 정씨가 대궐 안으로 들어와 딸과 사위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사흘 동안을 자정이 넘도록 의논을 하더니 마침내 계축년 정월 초사흗날부터 흉악한 무옥의 계략은 시작되었다. 유자신, 이이첨, 박승종 등 심복과 꾀하여 대비의 아버지이시오, 대군의 외조부이신 김제남이 광해군을 내치고 대군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사형수 박응서를 달래서 이렇게 억측으로 온통 시킨 대로 김제남과 함께 대군을 왕위로 세우기 위해 역적모의를 했다는 사실로써 거짓 자백을 했다. 이렇게 하여 김제남과 그 아들, 그리고 많은 나인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마침내 대군을 끌어내려고 하여 이르기를,
"조정에서 대군을 속히 내 놓으라고 날마다 보챘지만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느냐 하여 들은 체를 않고 있었는데, 서양갑, 박응서 따위의 도둑들을 사귀어 역모를 하는 등 대란이 일어났으니 이제 와서 뉘 탓으로 돌리려 하는고?"
하고는 다시,
"대군을 하도 내놓으라고 보채니 듣지 않으려고 고집하였지만 이제 와서는 조정이 노하고 있으니, 그 노여움을 좀 풀어 주도록 잔치에 참석케 하려 하니 잠깐 문 밖에만 내보내서 노여움을 풀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말이 하도 흉측스러워 윗전께서는 차마 바로 듣질 못하시고, 모시는 이들도 마음이 산란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듯함을 금치 못했다. 그 말에 대답을 아니할 수 없어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서 저지르지도 않은 큰 변을 만나 아버님과 동생을 죽였으니, 내 자식의 일로 인해 어버이께 큰 불효가 되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할 줄 알지만, 대군이 나이가 들어 철이라도 났다면 모르되 이제 동서도 분간치 못하는 여덟 살 철부지 어린애니 당초에 대군을 데려다가 종으로 삼아 제 명이나 다하게 하시고 아버님과 동생을 살려 줍시사 하며 내 머리털을 친히 베어 친필로 글월을 써서 보냈건만 받지 않고 이제 와서 어찌 이런 말을 하시나이까? 어린아이가 알기나 한 노릇이며 어른의 죄가 아이한테 당하기나 한 일입니까?"
하시니 광해군의 대답이,
"선왕께서 불쌍히 여기라고 하신 유교도 계신 터이니 대군에 대해선 아무 염려 마옵소서. 머리털은 두지 못할 것이니 도로 드리는 겁니다."
하더라. 대비께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된 일을 생각하면 간장이 메어지는 것 같으되 나라의 법이 중하여 내 마음대로 살려드리질 못했으나, 이 아이는 선왕의 유자니 그래도 좀 생각을 하여 주실까 했는데 새삼스레 그런 말을 하시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생각할 때 서러워질 따름입니다. 어린아이를 어디다 감추어 두겠습니까? 내가 품에 안고 죽을지언정 내어 보낸다는 건 차마 못할 노릇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또 글을 보내되,
'아무려면 아이보고 아는 노릇이냐고 족치겠으며, 옛부터 문밖으로 피접을 나는 일도 있는 일이니, 그 정도로 여기시고 좀 내어 보내  주소서. 조정에서 하도 보채어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 하는 노릇이니 대군에게 해로운 일이 있을까 하는 건 조금도 근심하지 마옵소서.'
하니, 대답하시기를
"내 낯을 보아서가 아니라, 대전의 선왕의 아드님이시고 대군 또한 아들이니 정을 생각해서 차마 해할 리야 있으리까마는 대군이 나이 열 살도 못되었고 대전도 아시다시피 한 번도 대궐 밖을 나간 일도 어디다 숨겨두겠습니까? 대전께서 압력을 가하실 탓이니 선왕을 생각하셔서 인정을 베풀어주소서."
하시니 또 말하되,
"문 밖에 내어 주십사 해 넣고 설마하니 먼 곳으로 떠나 보낼리야 있겠습니까? 이 서소문 밖 궐내에 벌써 가까운 곳에 벌써 거처할 집을 정해 놓았으니, 궐내에 두어 두면 조정에서 번번이 보채기를 없애버리라고 날이면 날마다 서너 달 동안이나 보채지 않는 날이 없으니, 내 비록 듣지 않으려고 하나 조정에서 시끄럽게 구니 오히려 문 밖으로 내어 보내 그들의 마음이나 시원케 해주는 게 대군에게도 좋은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보살피지 않으리까? 진실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부디 내보내 주십시오. 다 좋을 대로 하리이다."
하거늘 대답하시기를,
"여러 번 그렇게 말씀하시니 서러운 중에도 더욱 망극하고, 선왕을 생각하고 옛날에 국모라  하시던 일을 생각하신 다니 감격하거니와, 대전께서는 다시 한번 고쳐 생각해 보소서. 어미 치고 어린것을 혼자 내어보내고 차마 어찌 나만 살 수 있으리까? 차라리 나와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시나 막무가내니 이제는 더 버텨도 소용이 없을 줄  아시고,
"이 설움을 어디다 견주리요마는 대군을 곱게 있게 해주마고 벌써 여러 날 말씀하신 터요. 내전에서도 속이지 않겠노라고 극진한 투로 글월에 적었으니 이 말을 믿고 대군을 내 보내겠습니다마는 살아 남은 둘째 동생과 어린 동생만이라도 살려 주시어 제사나 잇게 하여  주소서."
하시니 그제서야 기꺼이 대답하되,
"두 동생일랑 고이 살게 하겠습니다. 대군을 빨리 내어 보내주십시오. 피접을 나가는 것이니 오히려 편안하시고 좋으실 것입니다. 날마다 안부 전하는 사람도 드나들게 할 것이며 하시고자 하는 일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장정 여관 여 남은 명이 몰려와 사이문을 여니 우리 전 나인들은 두려워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더니 그 년 들이 와서 침실에 올라앉으며 말하기를,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마땅치 않아 이런 일을 저지르시는고? 대군 곁에 돈이 없던가, 명례궁에 돈이 없던가? 대비의 치호라도 받으시고 대군을 살리려 하실 망정 어찌하여 이런 역모를 하실꼬?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까마는 일을 저질렀으니 뉘 탓으로 돌릴꼬? 어서 대군을 내어 보내소서."
하니, 말이 하도 흉악 망측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더라. 말 같질 않아 잠자코 있으니 저들이 또 꾸짖으며 이르기를,
"다 옳은 말을 하였으니 입이 있다 한들 무슨 할 말이 있어 대답을 하겠는가? 너희 나인들이 대군을 빨리 납시게 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고 지체하여 더디 내보내시게 한다면 너희 나인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하더라.

위께서 까무러쳐 계시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시고 저 집 나인 우두머리 너덧 사람을 들어 오라 하셔서 이르시되,
"너희도 사람의 탈을 썼으면 너의 애매함과 서러움을 모를 리야 있겠느냐? 내 무신년에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 대전이 선왕의 아드님이시기에 두 아이를 의탁하여 편안히 살게 해줄까 함이었는데 여러 해를 두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백 가지로 근심만 하며 살아오다 흉적을 만나 용납할 수 없는 대역의 죄명을 내게 뒤집어씌우니 하늘이 무심하여 이토록 애매한 처지를 말해주지 아니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이냐? 이제 밖으로는 아버님과 동생을 죽이셨고, 안으로는 나를 기꺼이 받들던 나인들을 모두 죽였으니, 이 어린것의 몸에는 죄가 미칠 까닭이 없으련만 또 대군을 내놓으라 하니 차라리 내가 저희 앞에 바로 죽어서 이런 망극하고 서러운 말을 아니 듣고 싶으되, 대전의 말과 내전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히 남아 있고 나인들이 중인이 되었으니 임금이 설마 국모를 죽이겠으며, 범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러 번 은근히 일러 왔으니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내어 보내겠거니와 두 어린 동생만은 놓아 주셔서 어머님을  모시게 하고 조상의 제사나 받들게 하여 주신다면 대군을 내어 보내려 하노라, 이 말대로 대전과 내전에 전하도록 하여라."
하고 애통해 하시니 사람으로서 눈물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으리요마는 그 년들은 모진 말을 거리낌없이 하되,
"이토록 않으시더라도 대전께서 어련히 알라서 처리하시겠습니까? 속히 내어 보내 주십시오."
차마 내어보내시지를 못하시고 한없이 통곡하시니 두 아기들도 겉에서 함'께 우시매 위께서 더욱 통곡하시며,  
"하느님이시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토록 섧게 하시나이까?"
하시고 하도 섧게 우시니 비록 철석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리요마는 장정 나인들은 틈틈히 앉아서,
"너희들 울음소리가 들리면 대군을 아니 내어 주실 것이니, 좋은 낯으로 어서 빨리 들어가 여쭤야지 행여 서러운 빛을 보이기나 하면 죽여버리리라."
하고 얼르니 제각기 눈물을 감추고 들어가 여쭙는 것이었다.
"벌써 법의 입을 면치 못하게 되었사오니 병드신 부부인께서 지금 살아 계심은 오직 위를 믿고 의지하심이요, 미처 부원군 뼈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신 형편이니 두 오라버님이나 살려 주시거든 제사나 받들게 하시고, 설움을 잠시 참으시고 대군을 내어 보내십시오."
날은 저물어 가고 어서 내라는 재촉은 성화 같고 또 안에서는 나인마저 나와 재촉하니 하늘을 꿰뚫은 힘이 있다 한들 어찌 그 때 이길 수 있으리오. 점점 더 늦어가니 우리 시위 인들을 각각 꾸짖으며,
"너희들이 이래서야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들어가서 대군을 빼앗아 데리고 오리라. 너희들 한 사람이라도 살 수 있나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들이닥치려 하는데 나이 많은 변상궁이 들어가 여쭙기를,
"안팎 장정들을 보냈으며 밖에는 금부 하인들이 쇠사슬을 들고 둘러섰고, 나인들을 데려 가려고 저리 대령하고 있으니 우리 죽는 건 서럽지 않지만 위께서 오직 이 늙은 것을 믿고 계시며 소인도 살아 있다가 아기를 저토록 내어 주지 않으시니 이제야 죽을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나인인 까닭으로 자식에 대한 어미의 정을 모르는도다. 인정상 차마 내어 주지를 못하겠다."
한편으로 대군을 모시고 있는 나인들이 대군 아기씨를 달래며,
"사나흘만 피접 갔다가 올 것이니 버선 신고 웃옷입고 나를 따라 나갑시다."
하니 이르시되,
"죄인이라 하고 죄인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내려가려 하니 죄인이 어찌 버선 신고 웃옷 입어 무엇할까."
"누가 그렇게 말합디까?"
"남이 일러 줘야만 아나, 내 다 알았네. 서소문은 죄인이 드나드는 문이니 나도 죄인이라 하여 그 문 밖에다 가두려 하는 것 아닌가? 누님과 함께 간다면 가려니와 나 혼자는 못가겠노라."
하시니 위께서는 더욱 섧게 우시는데 어서 내라고 재촉하며,
"내어 주지 않거든 나인들을 다 잡아내라."

날이 늦어지고 재촉은 성화와 같아  윗전은 정상궁이 업고 공주 아기씨는 주상궁이 엄 대군 아기씨는 김상궁이 업사왔으니 대군 아기씨가 이르시기를,
"윗전과 누님께서 먼저 나가시고 나는 그  뒤를 따르게 하라."
하시기에,
"어찌  그리하라 하시나요?"하니,
"내가 먼저 나가면 나만 나가게 하시고 다른 두 분들은 아니 나오실 것이니 나 보는 데서 갑시다."
하시는 것이었다. 윗전께서는 생 무명의 상복을 입으시고 생 무명 보 덮삽고 두 아기씨는 남빛 보를 덮고서 상궁들에게 엎히어 자비문에 다다랐더니 내관이 십여 명이나 엎디어,
"어서 나오십시오."하고 아뢰니  윗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들도 선왕의 녹을 먹고 살았으니 어찌 측은한 마음이 없겠느냐? 십여 년을 위에 있으면서도 자식을 얻지 못해 늘 근심하던 끝에 병오년에 처음으로 대군을 얻으시어 기뻐하시고 사랑하심이 비할 데 없으셨으나, 그 당시에는 강보에 싸인 어린것이기에 무슨 뜻을 두셨겠는가? 한갖 자라는 모양만 대견해 하시다가 귀천하시오니, 내 그때에 재궁을 좇아 죽었던들 오늘 날 이 서러운 일을 겪지 않으련만 모두 내가 죽지 못하고 살았든 죄라, 어린 아이 아직 동서도 구분하지 못하는 철없는 것을 마저 잡아내니, 조정이나 대간이나 선왕을 생각한다면 어찌 이런 서러운 일을 할까보냐?"
하시고 너무도 애통해 하시니 내관들도 눈물을 씻으며 입을 열어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오직,
"어서 납시옵소서. 우리가 어찌 그 사정을 모르리까마는 이길 일이 아닙니다."하더라.

저 집 나인 연갑이는 윗전 업은 나인의 다리를 붙들고 은덕이는 공주 업은 주상궁의 다리를 붙들어 걸음을 옮겨 딛지 못하게 하고 대군 업은 사람을 앞으로 끌어내고 뒤에서 떠밀어서 문 밖으로 내고 우우는 안으로 밀어들이고 자비문을 닫아 버리니, 그 망극함이 어떠하였으리오. 대군 아기씨만 문밖으로 업혀 나가서 등에 머리를 부딪쳐 우시면서, "어마마마 좀 보게 해 주."하다 못하여 다시, "누님이라도 보게 해 주."하시며 하도 애타 서러워하니 곡성이 내외에 진동을 하고 눈물이 땅위에 가득 차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길을 찾지 못하였다. 문 밖으로 나간 뒤 그 주위를 환도와 화살을 찬 군인이 삥 둘러싸고 가니 그제서야 울기를 그치고 머리를 숙이고 자는 듯이 업혀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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