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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novel)'가 어째서 '小說'이 되었을까?
[소준섭의 正名論]<8> 인식의 매체로서의 언어


'소설', 본래 의미에서 벗어난 번역어

'novel'은 우리말로 '소설'이라고 번역된다.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사실 문제가 있다. 'novel'의 본래 의미는 "비교적 긴 이야기"로서 '짧은 작품'에는 별도로 'short stor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novel'의 번역어인 '소설'은 본래의 의미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단어이다. 그리하여 '(허구적 장치를 사용하여 구성되는) 긴 이야기'든 '짧은 이야기'든 모두 '소설'로 통칭하면서 '소설'을 장편소설이나 단편소설로 분류하는 방식도 정확한 의미에서 본다면 오류이다.

특히 'novel'의 어원이 라틴어 'novus'이고 그 의미는 'new', 즉 '새로운'을 뜻하고 있는데, '소설'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의미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만약 'new'라는 뜻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용어를 'novel'의 번역어로 채택했더라면 소설에 관한 한 '표절' 시비가 처음부터 발생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경제(economics, 經濟) 용어의 기원

'economics'라는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로서 "가정을 관리하는 사람"의 뜻이었다. 이 용어 역시 일본에서 'economics'라는 서구 용어를 '경제(經濟)'라고 처음 번역하였으며, 중국에서 이를 수용하였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경제(經濟)'라는 용어가 사용된 때는 동진 시대의『진서기첨(晋書記瞻)』라는 책에서였다. '경제(經濟)'라는 용어는 본래 경세제민(經世濟民), 경국제세(經國濟世), 경방제세(經邦濟世), 경방치국(經邦治國) 등 용어의 종합 혹은 약칭이었다. 그 의미는 국가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각종 경제활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포함하여, 정치, 법률, 군사, 교육 등 분야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즉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휼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라는 용어에는 이미 정치라는 범주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economy'의 역어로서의 '경제'는 그 의미가 훨씬 넓기 때문에 '경제학' 대신 '계학(計學)'이 타당한 번역어라고 주장한 중국 근대시기의 저명한 언어학자 옌푸(嚴復)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즉, 옌푸는 '經濟'라는 용어가 결국 '정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politics'의 번역어로 적합하며 'economy'의 번역어로서는 타당하지 않다고 파악하였다. 중국에 일본의 번역어인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량치차오(梁啓超)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economics'이라는 영어 단어 자체도 본래 '정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양의 '경제학'은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이처럼 '경제'와 'economics'의 두 가지 단어 모두는 본래 인문(人文)의 내용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정치'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경제, 혹은 economics'는 수치화되고 모형화되어 결국 전통적인 인문정신의 성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사회(society, 社會) 용어의 기원

영어의 'society'와 프랑스어 'socit' 모두 라틴어인 'socius'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의미는 '동료', '파트너'이다.

'사회(社會)'라는 용어가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역사서인『구당서 현종기상(舊唐書 玄宗記上)』이다. 고대 시대 사람들은 토지양식을 특별히 중시하였고 토지와 양식이 인간을 먹여 살리는 근본이라 여겼다. 따라서 사직신(社稷神)을 대단히 숭배하였다. 여기에서 '사(社)'는 토지신이며, '직(稷)'은 오곡(五穀)신이다. 당시 최고 통치자로부터 평민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직신을 대단히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고, 봄과 가을에 모여서 사직신에 제사를 지냈다.

민간에서는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조직-사(社)가 만들어졌다. 사(社)의 크기는 상이하였는데, 어떤 사(社)는 100가(家)를 넘어섰다(본래 중국 고대 시기 社란 25家를 지칭하는 단위였다). 제사를 모시는 날이 되면 사(社)의 모든 사람들이 참가하여 장엄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제사를 모신 후에는 모두 거나하게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이렇게 하여 이 의식은 성대한 민간 행사로 되었는데, 이러한 집회를 '사회(社會)'라고 지칭하게 되었고 점차 현대적인 사회'(社會)'라는 함의를 지니게 되었다.

'사회'라는 용어는 역시 일본이 처음으로 영어 'society'를 '사회(社會)'라고 번역하여 동아시아에 퍼지게 되었다.

근대화시기에 일본에서 만든 번역어가 대량으로 한자어에 유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저항도 있었지만 결국은 이른바 '화제한어(和制漢語)' 또는 '일제한어(日制漢語)'는 중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에 뿌리를 굳건하게 내리게 되었다. 중국 근대시기의 저명한 언어학자 옌푸(嚴復)는 일본이 만든 번역어 사용을 강렬하게 반대하여 '경제학' 대신 '계학(計學)'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또 '사회'라는 일본의 번역어 대신 '군(群)'을 사용하여 '사회학'은 '군학(群學)'이라고 해야 하며, 'philosophy'의 경우에는 일본 번역어인 '철학'을 반대하여 '이학(理學)으로 번역하였고, '진화(進化)' 대신 '천연(天演)'이라는 용어가 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만든 '화제한어'는 일반적으로 두 글자 단어를 많이 사용한 반면, 문어문(文語文)에 정통했던 중국학자들은 한 글자의 한자어를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옌푸가 '사회'의 대체어로서 채택한 '군(群)'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논어』에 "君子, 群而不黨"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군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무리를 이뤄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군(群)'은 '사람과 어울리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동료'나 '파트너'라는 본래의 의미를 지닌 'society'의 번역어로서 상당히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전개된 백화운동(白話運動; 중화민국 초기에 옛날부터 지식인이 독점해 온 문어문(文語文)을 배제하고, 구어문(口語文)인 백화문(白話文)으로 새로운 문학창조하려던 운동) 이후 의사소통의 필요에 따라 두 글자 단어가 보다 안정적이고 구어 사용에서 이해가 쉽다는 요인 등에 의하여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러한 '화제한어'가 대량으로 한자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몇 가지 학술 번역용어에 대한 검토

숙의(熟議), 심의(審議), 혹은 평의(評議)

'deliberation'은 최근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이 있다. '숙의(熟議)'로 할 것인가, '심의(審議)'로 할 것인가, 아니면 '협의(協議)나 '토의(討議)'로 할 것인가 등의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deliberative democracy'를 각각 '숙의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 혹은 '협의민주주의'나 '토의민주주의' 등으로 칭하고 있다.

'심의'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에 따르면, 'deliberation'이 논의뿐만 아니라 결정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고 이러한 의미를 담은 번역어가 '심의'이며, 또 우리의 법 개념에서 'deliberation'에 준하는 말이 '심의'라고 주장한다. 한편 '토의'가 타당하다는 견해는 20세기의 철학이 전통적으로 인정되었던 경험이나 관념보다도 언어를 인식의 매체로 더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언어학적 전회(轉回)' 이후 현대의 사회철학도 인식 과정에서 언어행위가 지니는 중요성을 수용했으며 'deliberation'은 이러한 언어학적 전회를 내포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또한 하버마스는 이러한 배경 하에 자신의 이론에서 일관되게 언어행위를 강조하여 '전회' 이후 그의 이론에서는 'speech action', 'communication', 'discourse', 'deliberation'이 핵심 개념으로 되었는데, 이 이론과 개념들의 핵심에는 언어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숙고, 심의 등 언어행위보다 사유를 강조하는 느낌의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협의에는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행위라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어서 합의 없는 극단적 논쟁까지도 포함하는 하버마스의 관점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현철, "국민주권과 시민의회",『헌법 다시보기』)

그런데 필자는 '평의(評議)'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의(評議)란 "의견을 서로 교환하여 평가하거나 심의하거나 의논하다"는 뜻이다. '심의'라는 의미가 "심사하고 토의하다"이고, '토의'의 의미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검토하고 협의하다"이다. 그런데 '평의'는 '심의'와 '토의' 두 용어가 지니는 의미를 포괄하면서 언어 행위의 중요성도 드러낼 수 있고 또한 결론 도출의 의미와 함께 논쟁이라는 뉘앙스도 내포하고 있어 '평의'가 'deliberation'의 본래 의미에 보다 가까운 번역이라고 여겨진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넘어갈 점은 우리나라의 '영한사전'에는 이 'deliberation'의 풀이에서 '평의(評議)'라는 해석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중국에서 출판된 '영화사전(英華詞典)'에는 '평의'라는 해석이 나온다(실제로 필자는 중국에서 출판된 英中詞典을 많이 보는 편이고 가끔 중국에서 출판된 번역서도 본다. 중국에서 출판된 그것들은 우리나라 영한사전이나 우리나라 번역서에 비하여 많은 단어가 소개되어 있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사실 영한사전도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영한사전이 대부분 '영일사전(英日辭典)'을 직역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현재 우리나라 영한사전은 모두 1949년 이양하 · 권중휘의 일본 "포켓용 리틀 딕셔너리" 번역본 "스쿨 영한사전"으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영어 단어에 대한 풀이가 우리말이나 시중에서 쓰이는 말보다 여전히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어와 번역어가 대부분이다.

"Engagement Policy", 개입정책인가 접촉정책인가?

"미국의 대중정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을 사전에 차단하여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봉쇄하자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을 현 단계의 국제정치경제체제에 순응하도록 적극 개입하여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민주주의 국가로 연착륙하도록 유도하자는 입장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국제정치학계에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설명할 때 '봉쇄(containment)'와 '개입(engagement)' 정책이라는 두 가지 정책이 항상 소개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Engagement'라는 단어를 '개입' 혹은 '간여'로 번역하는 것은 강대국의 압력 행사나 내정 간섭 등 좋지 못한 이미지를 초래하여 불필요한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간섭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Engagement' 정책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Engagement Policy란 비강제적 수단에 의하여 신흥 강국이 국제 현상에 불만을 갖는 행위를 개선하려는 외교정책으로서 그 목표는 해당 국가의 국력 증강을 해당 지역 내지 세계 질서의 평화적 발전에 순응시키려는 데 있으며, 그러나 그 목표 중 신흥강국이 자신의 상대적 국력을 제고하려는 기도에 대한 저지는 배제한다. 이 정책은 긍정적 정책과 부정적 정책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긍정적 정책이란 신흥 강국으로 하여금 국제규범의 행위에 부합되도록 고무하는 것이며, 부정적 정책이란 해당 국가가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는 경우 권고나 담판 혹은 협박 등 비강제적 수단에 의하여 압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Engagement Policy'라는 국제정치학 용어를 '개입정책' 혹은 '간여정책'이라는 협의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동시에 'Engagement Policy' 의 구체적 내용에 더 접근하고 있는 '접촉정책'이라고 해석하여 번역하는 것이 더욱 타당성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국제정치학 용어 중 'deterrence'라는 단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억지(抑止)' 혹은 '억제'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deterrence'의 원래 의미는 '상당한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히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하며 '무력 과시' 혹은 '보복'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용어를 '위섭(威懾)'이라는 용어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위섭(威懾)'이란 "무력으로 위협하다"는 뜻이다. '억지'나 '억제'보다는 'deterrence'의 원래 의미에 더 가깝게 보인다. 'deterrence'라는 이러한 용어를 어떻게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내는가는 관련 전문가들이 더 숙고해야 할 과제이다.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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