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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이해인 수녀님께 띄우는 입춘편지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부산에 잠시 머무시던 어머니와 첫 시집 < 민들레의 영토 > 30주년 기념식에서….(2005년 11월12일)

이해인 수녀 홈페이지


Ⅰ. 행복한 인사

오늘 아침엔 땀 흘리며 층계 청소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이들이 활짝 웃으며 내게 건네는 아침인사가 백합처럼 순결하고 정겨웠습니다. 나도 "좋은 하루 되세요"하고 응답하는데 문틈으로는 치자꽃 향기가 날아오르고 숲에서는 뻐국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행복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오늘 하루도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는 기도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 이해인 수녀의 글 가운데 '일부'

"안녕하세요! 오서오세요!"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서울 시내버스가 감동스럽게 달라졌습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버스운전사들이 매우 친절하게 변했는데, 그 친절 덕분에 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매우 즐거워졌습니다. 승차할 때뿐만이 아니라 하차할 때도 승객의 행복한 하루를 빌어주는 상쾌한 그 인사로 인해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킨 일상이 이슬 머금은 아침처럼 싱그러워지면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해보자!'고 부추기게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기사님도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기사님의 다정한 인사에 이렇게 화답하고 싶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표정은 굳어져 있기 일쑤고 입술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승객들이 기사님의 인사를 못 들은 귀머거리처럼 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인데 괜히 혼자서 화답했다가 우스개가 될까 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닫고 마는 것입니다. 저의 이 부끄러운 고백에 대해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행복한 인사를 나누거든요!'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마음은 묵힐지라도 따듯한 마음은 꺼내는 게 좋겠습니다. 따듯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안식처를 서로 제공하면서 의지가지 할 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을 것이며, 차가워진 마음을 속히 데울 때에야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겠지요. 따듯한 인사를 나누지 않고서는 따듯한 밥을 나눌 수 없고, 따듯한 밥을 나누지 않고서는 화평의 세상을 나눌 수 없으니 우리의 불안한 세상을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따듯한 인사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못한 인사치레로 하루를 마치고는 이런 부끄러운 질문을 던져봅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돌처럼 굳어졌을까?
마음이 왜 이렇게 폐쇄된 문처럼 닫혔을까?
인사가 왜 이렇게 인색해져서 안부조차 못 나누는 걸까?
Ⅱ. 감사기도



















▲ 종신서원 무렵 사람들은 이 사진을 '모나리자' 그림과 비교하곤 했다고 한다. 이 무렵, 첫 시집 < 민들레의 영토 > 가 출간됐다.

ⓒ 이해인 수녀 홈페이지


기도하면서부터 불안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기도로 인해 이 세상과의 오래된 불화를 수습할 수 있었고 밴댕이 소갈머리 같던 마음이 점차 도량(度量)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 됨이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나를 지켜주시는 그 임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세상 또는 사람들과 옥신각신하는 일이 잦아들었습니다.

기도는 평안이고 화평이고 은혜임을 깨달으면서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녀오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치의 평안과 화평을 허락하신 그 임께 감사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제 손은 기도하는 손이 아니라 싸우는 손이었습니다. 울퉁불퉁 세상사에 걸려 쓰러져서는 제 탓이 아니라 불공평한 세상 때문이었노라고 그 책임을 추궁하며 종 주먹질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속이 풀리지 않을 때는 악에 받친 분노와 증오로 대거리를 하다가 그 쌓인 응어리로 살촉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쏜 살은 과녁을 맞히기는커녕 부메랑이 되어 제 살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숱한 상처와 고통에 지치면서 인생은 꽃 피지도 못한 채 질 뻔 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악질이 아니었던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악악거릴 힘조차 부쳐서 만신창이 된 몸뚱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예배당 지하 기도실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울부짖음의 기도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 사람에게 토해낸 아픔의 덩어리는 흉한 생채기로 떠돌 수 있지만 간구의 기도는 하늘에 새겨져서 그 언젠가 치유의 날을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울부짖음과 신음의 기도, 기도할 힘조차 없었던 망연자실의 기도와 묵묵히 기다려야 함을 깨닫고 드린 묵상의 기도…. 그 기도의 힘으로 구곡간장(九曲肝腸)을 헤쳐 쉰 줄에 접어든 인생이 마침내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기도의 대부분은 가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두 아들에 대한 축복의 기도인데 신기한 것은 축복기도는 그 어떤 샘물보다 맑고 깊어서 날마다 두레박 가득히 퍼서 올려도 마르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융성(隆盛)해지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능력으로 인해 가족과 가정에 사랑과 평안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이 시들지 않도록 날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몸이 곤하여 새벽기도를 못 드린 날은 버스 안에서도 드리고, 가두에서도 드립니다.

'이제, 그만해라! 너와 내 가족의 행복도 귀하지만 아픈 이웃과 세상을 위해 두 손 모아다오! 이웃이 안녕치 못하거든 네 가족도 평안할 수 없는 세상이니 이웃과 세상의 안녕을 위해서도 두 손을 모아다오!'

제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하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급한 시절이 지났음에도 두 손과 입술은 습관처럼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임의 경고를 지나치지 않고 회개하는 게 옳겠습니다. 가엾은 제 인생에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긍휼의 기도를 올렸던 숱한 이들에게 감사기도 드리면서 이제서야 그들의 이름을 외워봅니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과 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이름을 외우며 중보(仲保)기도를 올립니다.

하늘로 떠나신 맹인 할아버지와 스스로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을 돕다가 하늘로 돌아간 청년을 받아주신 임이시여 이 땅에서 가난했음으로 인해 하늘의 임을 알지 못했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그 가엾은 영혼들도 긍휼히 여겨주소서. 신장을 기증한 믿음의 아버지인 목사님의 기도와 명도소송으로 쫓겨날 처지가 되자 전세금 일부를 걷어준 성도들의 도움을 갚지 못했으니 용서하여주시고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해 수고하는 목사님, 겸손한 마음으로 장애인들을 돕는 장로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웃들, 마음의 거처를 정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청년, 실직과 생계의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가장들, 따듯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 날마다 두 손을 모으며 참 도량의 기도를 올리는 아름다운 손들에 하늘임의 위로와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Ⅲ. 이해인 수녀님, 부활의 꽃이어야 합니다!


















수녀원 정원에서


ⓒ 조호진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 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不在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
- 이해인 수녀의 '백합의 말' 전부
이해인(65) 수녀님, 입춘이 어제(4일)였습니다. 이제 곧 꽃들의 향기가 언 들녘을 녹일 텐데 그 들녘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 마음도 녹였으면 참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무엇보다 수녀님의 몸 깊숙이 박힌 암(癌) 뿌리조차도 녹아서 마침내 몸속에는 꽃 뿌리만이 가득해서 이 세상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의 꽃과 향기를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 이해인 수녀의 시 '희망은 깨어 있네' 일부
민들레, 수선화, 천리향, 치자꽃, 파꽃, 백목련, 튤립, 채송화, 달개비꽃…. 수녀님께서 꽃을 주제로 해서 쓴 시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렇게 부르는 꽃 이름으로도 향기로운 입술이 되는군요. 현상적으론 사람이 꽃이 될 수 없고, 꽃 또한 사람의 옷을 입을 순 없지만 서로를 그리워할 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를 부르며 위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병마를 속히 떠나보내시고 꽃의 노래를 불러주십시오.

세 번째 시집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중에서 '백합의 말'을 [백합시편]의 첫 번째 시로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수녀님의 백합 향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만 저 스스로 시인이란 칭호를 사용하지만 시를 잘 모르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오독(誤讀)의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사용하는 예술 분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분야가 '시(詩)'라고 하지만 요즘의 제 느낌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말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나누기는커녕 고문실에 갇힌 언어의 비명을 듣습니다. 시인은 더 이상 언어의 연금술사가 아니라 언어도단의 장본인이며 언어의 해부학자로 전락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시집은 팔리지만 시집을 팔아서 먹고사는 시인이 별로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시는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이 황량에 광야에 핀 '백합의 말'을 입속으로 낭송하면서 하늘의 뜻에 따르기 위해 애쓰는 수녀님의 순종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목숨이 향기로우려면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 살아도 죽기 일쑤인 이 위태로운 목숨의 항해에서 어찌하면 되살아나 귀항할 수 있는 걸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안개는 걷히지 않는 허무와 난망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요?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향기로운 별 하나 간직한 이해인 수녀님!
하늘의 그 임을 믿고 의지하며 인생항로의 우고(憂苦)를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손잡아 주지도 않는, 애원해도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눈물로 얼룩질 때도 손수건 내밀지 않으시는 그래서 벼랑 끝에서 몰린 채로 '우린 버림받은 것이 아닐까?' 의문과 불신 끝에 고아처럼 울부짖는 그 질고의 날들을 겪었다면 '백합의 말'은 그냥 '백합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세례를 받았고, 그런 것들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모든 것을 섭리로 받아 안으면서 신앙도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 출연한 이해인 수녀님의 말 일부)

당신은 부재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손잡아주지도, 응답하지도, 손수건 내밀지도 아니하시니 오감에 의지하며 그것이 전부인양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의 한계는 그 정도의 믿음으로 도리를 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을 향한 믿음은 계속되어서 마침내 승리의 향기를 피어 올리게 하고 흰 옷 입은 천사들은 나팔소리로 견뎌 이긴 자에게 축복의 향연을 베풀고 끝내 부활의 꽃으로 피게 합니다.

지금은
긴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백합의 말이 아니라 수녀님이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말이 부질없을 때가 종종 있으므로 지금은 묵상할 때라고 말하십니다. 생로병사의 질고 속에서도 하늘을 향한 지고지순한 믿음이 마침내 부활의 꽃을 피우게 한다고 심어주신 그 믿음 그대로 수녀님은 부활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셔야 합니다. 갈급한 영혼들은 여전히 두레박으로 퍼 올려 주시는 샘물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꽃들은 여전히 수녀님이 빚은 아름다운 시로 인해 향기로워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일이 수녀님의 사명이니 그 십자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부활하셔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님!
당신은 부활하는 백합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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