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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708














베토벤 9번 교향곡에 숨은 일본제국의 야욕
1차 대전 당시 독일인 수감자들 ‘우아한’ 생활
군국주의 미화 노려… 프랑스 짝사랑엔 뒤통수







[18호] 2010년 03월 05일 (금) 18:23:26 크리스티앙 크슬레 info@ilemonde.com

왜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 초반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었을까?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어떻게 해서 일본에 제2의 애국가가 되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의 숨은 비화를 파헤쳐보자.



 1854년 미국의 매슈 캘브레이스 페리 제독이 이끄는 검은색 함대에 의해 강제 개방된 뒤, 일본은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페리 제독은 미국 선박뿐만 아니라 영국·프랑스·네덜란드·러시아 선박으로 구성된 함대를 이끌고, 일본열도에 최초의 무역조약을 요구했다.(1) 일본은 모욕적인 무력외교를 수락했지만 이를 계기로 국가를 개혁했다. ‘부유한 나라, 강력한 군대’. 메이지유신 때 일본이 내건 구호 가운데 하나다. 그리하여 일본 전역은 뒤처진 부분을 만회하고자 서구의 지식을 모든 부분에 도입하는 등 철저하게 서구를 배워나갔다.

 200년 동안의 쇄국을 포기한 일본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식민제국이 되자.’ 메이지유신 시대의 주요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였던 팽창주의 계획은 사실 오래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이미 17세기에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을 침략하고자 했다. 물론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러나 일본은 그 뒤 10년 간격으로 두 차례의 전쟁을 일으켰다.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05)이었다. 특히 러일전쟁은 백인 국가(러시아)를 물리치고 아시아 국가(일본)가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쟁이라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대만, 사할린 남부를 차지한 데 이어, 만주 남부 지역을 자국의 보호령으로 두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17세기부터 시작된 오랜 숙원인 중원 점령을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 <일본 의상의 여인>, 1875-클로드 모네
 일본은 중국 산둥반도에서 가까운 칭다오를 차지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지역은 당시 독일에 속해 있었다. 독일은 1898년 이 지역을 99년 동안 조차하기로 조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에 이 지역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어떤 적이 침략하든 서로 도와주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1914년 8월 7일 영국은 태평양에 있는 독일 선박을 감시해달라고 일본에 요청했고, 일본은 이를 빌미로 독일에 중국과 일본 바다에서 선박을 물리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독일이 거절하자 일본은 육지와 바다를 포위 공략해 칭다오를 차지했다. 영국이 주저했음에도 일본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공격으로 독일을 제압하고, 상당량의 헌법과 군사 이론을 습득했다. 1914년 12월에 일본이 승리하자 약 5천 명에 달하는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폴란드인 포로들이 일본열도로 이송되어 수용소에 갇혔다.

 혼슈 남부 절반과 시코쿠, 규슈에 12곳 이상의 임시 시설이 세워졌다. 1915년 4~5월에 독일 언론의 특파원 드렌크한은 일본 해양부 장관으로부터 수용소 시찰을 허락받았다. 드렌크한은 도쿠시마에 있는 포로 200명이 1915년 신문을 창간해 발간하고 있으며 오케스트라도 창설했다고 보도했다. 이곳 포로들의 상당수는 직업군인이 아니라 식민지 영토를 개발하기 위해 칭다오에 파견된 전문가였다. 국제조약에 따라 이 포로들은 어떤 강제 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도쿠시마의 수용소 시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다른 수용소와는 전혀 달랐다.   

 주일 오스트리아 대사가 베르사유조약 기념일을 맞아 아오노가하라 수용소를 주제 삼아 마련한 전시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아오노가하라 수용소는 독일인 포로 250명,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헝가리인 230명을 수용하던 곳이었다. 포로들은 농장과 공장에서 스스로 일하고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내려 돼지도 기르고 채소밭을 가꾸기도 했다. 또한 포로들은 주민과 교류하며 대학생들과 축구경기도 하고 콘서트도 열었다.

 물론, 포로들이 완전히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낯선 환경에 있어야 하는 포로들은 불안했을 것이다. 사생활의 공간도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포로들 사이에 주먹다짐이 일어나기도 했다. 종전 시기를 예측할 수 없었기에 불안감은 더했다. 독일인 포로와 폴란드인 포로 사이에서 다툼도 많이 일어났다. 독일인 포로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어느 알자스인 포로가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1915년 초,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국이던 미국은 독일의 재촉으로 일본 포로수용소를 시찰하는 일을 맡았고 수용소의 위생 상태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17년부터 일본 정부는 포로들의 불만을 줄여주고자 이들을 6곳의 수용소에 나누어 배치했다. 시코쿠, 마쓰야마, 마루가메, 도쿠시마에 억류된 수천 명의 포로들은 1917년 4월 북쪽에 있는 반도 수용소로 보내졌다. 약 5ha에 이르는 반도 수용소는 과거에 병영으로 쓰이던 곳이었다.

 다른 수용소와 마찬가지로 반도 수용소에서도 포로들은 신문을 창간해 약 300부를 발간했다. 신문의 내용은 체육수업, 주민과의 축구, 이웃 상가에서 하게 된 수영, 중국 문명·역사·지질학·사회학에 대한 콘퍼런스, 연극 공연, 콘서트 같은 활동 일지를 담고 있었다. 또한 포로들은 이웃 농장에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 탄산 칵테일 음료인 스프리츠 증류 기술, 치즈 만드는 기술을 보급하고 토마토·감자·배추 재배법을  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포로들로 구성된 남성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주했고, 큰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매년 겨울이 되면 일본 대도시에서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새해를 축하할 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한다. 미셸 바세르망은 저서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일본 근대화의 신화’를 반영하는 음악이라 볼 수 있다고 썼다.(2)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맞은 1970년, 음악 평론가 히데카즈 요시마는 <아사히신문>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일본에 ‘제2의 애국가’라고 밝히기도 했다.(3)

 1919년 6월, 베르사유조약으로 포로들의 생활이 나아졌다. 그 이듬해인 1920년에는 포로들이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 중국으로 간 포로도 있었고 헤르만 보흐너처럼 일본에 둥지를 틀고 독일에 일본학의 기틀을 마련해준 포로도 있었다. 현재 나루토시는 불가사의한 느낌의 반도 수용소를 역사·관광 유적지로 개발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곳에는 수용소의 생활을 알려주는 자료가 있는 센터가 있고 ‘독일 마을’이라는 공원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포로들이 만든 남성 합창단과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연주를 느낄 수 있다. 일본과 독일의 우호관계는 여기저기에서 강조되었다. 포로들과 일본 현지 주민, 교도관들과의 따뜻한 우정, 인간적인 감독관이 담당한 수용소의 완벽한 분위기 등. 수용소의 목가적 분위기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역사적인 부분은 교묘하게 가려진다고 바세르만은 강조했다. 완벽한 수용소의 모습이 소개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수용소 문제는 감춰지기 때문이다.(4)

 제1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일로는 일본과 프랑스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일본과 프랑스는 1907년부터 금융 조약, 외교 조약을 맺었다. 특히 외교 조약에는 양국이 ‘중국군 분쇄’라는 정책의 이름으로 중국 지역을 서로 소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은 중국 남부 지방 3곳(광둥·광시·윈난)에 프랑스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고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프랑스가 갖고 있는 이익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프랑스는 만주 남부 지역과 몽골에서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는 일본과의 외교 조약으로 독일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신흥 열강 일본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얻기 위한 교섭을 시도했다. 일본 군대를 유럽 전선에 파병하는 형태의 지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레몽 푸앵카레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다.(5) 일본에 파견된 대사관 무관이었던 리롱 중령은 르네 비비아니 프랑스 총리에게 일본이 군사를 파견해줄 것이라고 알렸다.

 유진 레노 대사는 오쿠마 시게노부 총리와 이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유진 레노 대사는 전보를 통해 비비아니 총리에게 오쿠마 총리가 놀라는 것 같지도 않고 미소를 지었다고 알렸다. 푸앵카레에 따르면 비비아니 총리는 12월 초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각 부처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 군대를 유럽에 불러와야 하고 이를 위해 일본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비비아니 총리는 인도차이나반도도 일본이 요구하면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일기 <자유로운 인간>에서 좀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프랑스는 일본 군대가 도와주러 올 것이라는 꿈을 꾸는 것 같다.”(6) 이어서 클레망소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30만 명의 일본 군사가 2개월 만에 프랑스를 도우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신중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는다.” 클레망소는 차라리 일본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러시아를 도우러 온다는 가정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일본군이 프랑스를 도우러 온다는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마침내 테오필 델카세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일본 지도층이 프랑스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며 협상에 어려움이 있다는 발표를 하자 프랑스의 헛된 기대는 한풀 꺾였다. 일본은 인도차이나반도는 전혀 탐내지 않고 다만 프랑스와 똑같은 조건으로 프랑스 식민지와의 관세가 책정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7) 내각은 델카세 장관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했다.(8) 그러나 아무리 프랑스가 노력을 기울여도 일본 군대는 프랑스에 파병되지 않았다. 일본이 요구했던 관세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저절로 해결되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일본군이 1941년 5월에 인도차이나반도에 들어오면서 1945년 3월 9일 프랑스 주둔군 수비대를 공격해 프랑스를 몰아낸 것이다.

 프랑스가 일본에 파병을 요청한 것은 단순히 순진해서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초반에 독일과의 전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들자 결국 일본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일본은 프랑스와 독일 전투에 끼어들지 않으면서 기회를 최대로 이용하려 했다. 일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일본은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독일이 소유하던 중국 지역 칭다오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글•크리스티앙 크슬레 Christian Kesseler
역사학자. 도쿄의 프랑스 공립학교에 파견된 교수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 



<각주>

(1) <마니에르 드부아>, 105호, 2009년 6~7월 참조.
(2) 미셸 바세르망, <겨울의 제전: 베토벤 9번 교향곡, 근대 일본의 신화>, Les Indes Savantes, 파리, 2006.
(3) 미셸 바세르망, <겨울의 제전: 베토벤 9번 교향곡, 근대 일본의 신화>.
(4) 미셸 바세르망, <겨울의 제전: 베토벤 9번 교향곡, 근대 일본의 신화>.
(5) 레몽 푸앵카레, <프랑스를 위해서- 9년간의 기억 제5권 ‘침략’>, Plon.
(6) <자유로운 인간>, 파리, 1914년 8월 16일.
(7) 프랑스와 일본은 상호 최혜국 조약을 이용했으나 인도차이나반도는 여기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8) 레몽 푸앵카레, <프랑스를 위해서- 9년간의 기억 제5권 ‘침략’>, P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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