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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죽이고 주검을 뜯던 시절
[작가회의 릴레이기고]

김성규(시인)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강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한손에는 자루를 들고 점심먹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 모두 강으로 뛰어갔다. 강에는 돌멩이 위에서 물고기들이 퍼덕이고 있었다. 흙 묻은 손으로 사람들은 물고기를 자루에 주워 담았다. 나와 동생도 이 신기한 광경을 보며 신이 나서 물고기들을 자루에 주워 담았다. 팔뚝만한 잉어가 아가미를 천천히 움직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커다란 메기, 누치, 모래무지들이 강변에서 펄떡이는 장면은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그날은 댐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물을 가두던 날이었다. 물을 가둘 때 마다 댐 아래쪽은 이런 현상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날 이후 지겹도록 물고기 반찬밥상에 올라왔다. 더위 속에서 물고기로 한 계절을 버틴 여름이 지나자 물고기는 급격히 수가 줄어들었다. 댐이 생기기 전에는 밤이면 얕은 물에서 걸음을 옮기다가도 발가락 사이에 끼어 물고기를 잡는 날도 있었지만 이제 낚시를 하거나 투망을 쳐도 물고기 잡기가 쉽지 않았다. 댐에서 물을 가두거나 방류를 거듭하자 댐 아래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낳아놓은 알이 떠내려가거나 말라죽어가는 게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강은 바다처럼 넓은 곳이 아니었기에 밀물과 썰물처럼 수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강에서 물고기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애초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비린내와 썩는 냄새가 마을을 휩쓸고 간 후 그 뒤로는 그렇게 심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돌 틈에 죽어 있는 어린 물고기들을 보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한낮이면 몸에 모래를 묻힌 물고기들의 비늘이 햇볕을 반사해냈다. 새들은 죽은 물고기를 먹으러 몰려다녔다. 물이 빠지는 날이면 까마귀들이 자주 몰려와 먹이를 놓고 싸우며 강변을 날아다녔다. 잇달아 다른 새들도 날아와 물고기 쟁탈전에 합류했다. 이제 마을의 강변은 그야말로 새들의 천국이 된 것이었다.

물이 방류되기 전에는 늘 사이렌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그것은 사람들의 어떤 불안을 자극했다. 그리고 물이 방류되자 댐 아래 강의 수위는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강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살이 점점 세지면서 하류 쪽으로 몇 십 미터 밀려서야 사람들은 강 밖으로 무사히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밤이면 앞을 제대로 보기가 힘든 날이 많았다. 짙은 안개가 마을을 감싸고 한낮이 되어야 안개가 걷히기도 했으므로 너무나 짙은 안개 때문에 강가에서 사람들은 방향을 잃기가 쉬웠다. 그 때 물이 방류되면 당황한 사람들은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곤 했다. 그 때문인지 자주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이 들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럭이 강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금강휴게소 부근의 코너를 돌다 안개 때문에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운전자들이 가끔 사고를 당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트럭에서 떠내려 온 아이스크림이나 인형들을 건지러 강가로 나갔다. 누군가의 죽음이 만들어놓은 선물들을 건지며 우리는 기뻤고 서로에게 자랑을 했다. 퍼덕이는 물고기를 자루에 담을 때처럼 그것은 우리에게 우연이 주는 선물이었다.

농작물이 자주 병에 걸리고 수확량이 줄어든 이유를 마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병에 걸린 농작물에 더 자주 농약을 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더 독한 농약을 주문해야 되겠다고 말하며 술을 마실 뿐이었다.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댐을 건설회사가 마을에 후원금을 내기도 했고 일 년에 한번 씩 관광버스에 사람들을 태워 외지로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했고 그 쪽 사람들이 오면 허리 굽혀 인사하기에 바빴다.

가끔 기형 물고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등이 굽은 물고기를 보며 신기하게 생각했고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먹었다. 댐이 생긴 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닐지라도 그 이후로 물은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동생이 피부병에 걸려 점점 수영을 하지 않게 되었고 강가의 마을이었으니 자주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술안주로 먹기도 했고 도시락 반찬으로 물고기를 싸가기도 했다. 노인이 된 마을 사람들은 거의 다 관절염을 앓고 있다. 그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노인이 되기 전에 마을사람은 자주 병에 걸렸고 그중 몇몇은 암이나 치료할 수 없는 다른 병에 걸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 사람들이 먹은 물고기가 병의 원인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3명은 22일 새벽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경기도 여주 4대강 사업 한강 제3공구 이포대교 옆 20미터 높이의 이포보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활동가들이 4대강사업중단을 요구하는 손펼침막을 이포대교위 취재진들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rh710@
 

 

댐이 생기기 전에는 겨울이면 강에 얼음이 얼어 우리는 썰매를 들고 강가로 나갔다. 추위 속에서 장갑도 끼지 않고 언 손으로 송곳을 지치며 놀았다. 그러나 이제 강에는 얼음이 얼지 않는다. 물을 가두었다 빼기를 반복하므로 살얼음이 얼면 곧바로 하류로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아버지는 강 건너편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우리는 썰매위에 나무를 싣고 강을 건너다녔다. 댐이 생기기 전 수도가 없던 우리 마을에서 누나들은 물지게를 지고 강물을 떠와서 고무통에 채워 넣곤 했다. 양철 물통에서 출렁이는 물을 보면 내 얼굴이 찌그러졌다 펴지곤 하였고 그것을 한참 바라보며 어지럽기도 했다.

댐이 생길 때 마을사람은 그것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댐이 생기는 것은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한 먼 나라의 어느 마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마을 사람들은 작은 돈과 이익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지만 지금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댐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강은 마을사람들 삶의 한 부분이었고 분명 자신들이 체험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자연을 어떻게 파괴시켰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댐은 물을 가두듯 우리의 추억을 모두 가두어 버렸고 물고기들의 죽음과 냄새나는 강물을 해마다 토해내고 있다.

사람들이 자루를 들고 강으로 달려갈 때, 물고기들을 주워 담으며 웃으며 기뻐할 때, 새들이 몰려와 죽은 물고기들을 먹을 때, 추락한 트럭에서 물건들이 떠내려 올 때, 사실은 그때 정말 큰일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개가 밀려와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 안듯이 우리에게 고통은 그렇게 다가왔다. 할아버지처럼 수염을 늘어뜨린 잉어가 천천히 숨을 쉬며 죽어갔듯 댐이 생긴 그날부터 강은 병든 몸을 뒤척이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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