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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그 정도 사람은 되느니라 

  조선조 중엽에 구봉 송익필이라는 분이 있었다. 인명사전에는 서출이라 하고 본관은 여산, 사련이라고 나와 있다. 사련이라는 이는 1496년 (연산군 2년)에서 1675년(선조 8년)까지 살았는데, 이분 역시 안돈후의 서녀 감정의 소생이라고 되어 있다. 미천한 출신으로  간신 심정에게 아부하여  벼슬길에 올랐는데,  안처겸, 안당, 권전 등이 남곤, 심정 등의 대신을 제거하려 한다고 무고하여, 신사무옥을 일으켜서 안씨 일문 등에 화를 입히고, 그 공으로 당상에까지 올라 30여 년간 거드럭거리다가 죽고, 선조 19년에 이르러 사건 전모가 밝혀지며 관직을 삭탈 당했는데 그런 이의 서자, 그것도 계집종 막덕의 몸에서 났으니, 그야말로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체가 낮아 벼슬길은 단념했으나, 율곡, 우계 등과 교유하며 성리학을 논하여 통달했고, 예학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미 당상으로 대감 지위에 오른 율곡  선생과도 대등하게 친구로 사귀었는데, 여기 문제가 있다. 서로 자네니 내니 하고 사귀는 것을 `벗을 한다`고 하여 약간 까다로왔다. 지벌이 상적하고 학식이 비슷하며, 연령 또한  과히 차이나지 않아야 허교한다고 하여 서로  말을 놓아 하는데, 십년이장 즉협사지 한다고  하여 9년까지는 허교하여도 그 이상 차이날 때는 노형으로 대하는 것이 도리였다. 또 노인 자체라고 하여 그 사람 아버지가 자기 할아버지와 친구간이면, 서로 거북한 사이로 쳐서 경대하며 지내고, 나이차는 얼마 안 나더라도 장형하고 트고 지내는 분에게는 까불지 못하는데, 이것은 장형부모라 하여, 맞형도 형님 중에서도 각별히 여기는 때문이었다.

  그런데 율곡의 계씨가 형님 처신에 불평이다.
 “그래 형님도? 무위무관의 그것도 남의 집 종의 새끼-종 신분일 때는 아기니 아들이니 하는 말을 안 썼다-하고 너나들이를 하신단 말씀입니까? 형님 안 계실 때 찾아오면, 뜰에도 못오르게 하고 혼내서 쫓아 보내겠습니다.”
  “그래? 며칠 뒤 그를 오라고 해놓고 내  피해 줄테니, 네 마음대로 해 보려무
나.”
  약조된 날, 계씨는  정자관을 높다랗게 쓰고 큰사랑 아랫목 보료  위에 점잔을 빼고 앉았다. 속으로는
  “이놈이 오면, 그냥...” 하고 벼르고 앉았는 것이다. 대문께서 자기집 하인이 외운다.
  “구봉 송선생 듭시요.”
  그 소리를 듣자 율곡의 계씨는  자신도 모르게 관을 벗어놓고 일변 갓을 떼어서 쓰면서 대청으로  나와 버선발로 대뜰에 내려섰다. 관은 평교간에는  같이 쓰지만, 점잖은 어른을 뵐  적에는 갓으로 바꿔 써서 정장을 하는  것이 당시 예절이었다.
  “선생님! 어서 오십쇼.”
  “어! 그래. 중씨는 아니 계신가?”
  “잠깐 출타했습니다.”
  “온! 사람을 만나자 해 놓고 비우다니?”
  스스럼없이 아랫목 보료에 가 털썩 앉는데, 계씨는 자신도 모르게 날아갈 듯이 절을 한 번 하고 한 무릎을 세우고 모셔 앉았다. 무슨 분부라도 떨어지면 금장 일어나 거행할 수 있는 자세다. 한참 만에야 구봉이 입을 열었다.
  “요새 쌀값은 얼마나 하누? 나무는 짐에 어떻게 하고...”
  “쌀은 섬에 암만냥이고, 나무는 드리없으나, 좋은 건 짐에 암만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한동안 덤덤히 앉았다가 자리를 뜨며 이른다.
  “중씨 들어오시거든, 다녀갔다고 여쭙게.”
  “예! 그럼 안녕히 행차하십쇼.”
  대문간까지 나아가 배송하고 돌쳐서며
 “아차차! 이런 제에기...”
  갓을 벗어  팽개치고 관은 집어 쓸  생각도 않고, 후우푸우 화가  나서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방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분을 삭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율곡이 물었다.
  “너 오늘 구봉 혼 좀 내줬니?”
  “혼내 주는게 뭡니까? 얼떨결에 뜰에 내려가 모셔 올리고 절을 하고....”
  “아암, 그 양반이야 네가 그렇게 대접할 만한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지. 그래 무얼 묻데?”
  “쌀값은 어떻고 나무금은 얼마하느냐고 묻습디다.”
  “호! 너는 그런 얘기나 할 상대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

  구봉은 문자에도 능하여 8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었다. 나라에서는 구봉이 죽은 뒤에 지평을 증직하였고 시호를 문경이라 내리었다. 이렇게 옮기면서 한숨이  절로 난다. 문벌 지벌이 무엇이기에 이런 인재를 초야에 썩혀 두더란 말인가? 전하는 말에는, 구봉이 자신의 아들에게 율곡의 서녀를 맞았으면 하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전한다. 그리고는 혼잣말 처럼 뇌까렸다는 것이다.
  “율곡까지 그렇게 소견이 좁을 줄은 몰랐네.”
  이런 적서 구분  때문에, 앞서 구봉의 아버지도 있지도 않은 사실을 무고하여 소인 소리를 들어야 했고, 저 유명한 유자광도 `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더니, 그가 가는 곳마다 풍파를 일으켜 많은 사람을 살육하지 않았든가? 중국 사기를 보더라도, 명사 아무개는 아버지 죽은 뒤 개가하는 어머니를 따라가 의부의 성을 따랐다가, 성년한 뒤에 자기 성을 되찾았다는 기사가 곧잘 나오고, 미국의 명사 중에도 우리나라 같으면 낯을  들고 나오지 못할 가문의 출신이 있으며, 고아출신의 금메달리스트 기사를 읽고는 가슴이 다 뭉클하였다. 사람이란 활활 부담감 없이 피어나야 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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