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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 정호승

 


      생화와 조화
  백화점 특별 선물 조화 코너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꽃이 있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워 백화점을 들락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늘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어머! 이쁘다. 정말 장미꽃 같다!"
  "어쩜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정말 생화하고 구별할 수가 없네."
  보는 사람들마다 놀라움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생화와 똑같았다. 아니, 생화보다 더 아름다웠다. '조화 코너'라는 안내판만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모두 그를 생화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백화점 진열대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사람들의 그런 찬탄이 내심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그런 찬탄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오히려 그냥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생화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조금도 못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생화나 조화나 출생 과정이 다를 뿐 똑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꽃의 궁극적 가치가 아름다움의 창조에 있다면 생화나 조화나 그 아름다움의 창조적 차원은 똑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조화들은 조화로 태어나 자신을 원망하고 부끄러워했으나 유독 그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다른 조화들을 심히 나무랐다. 한 송이 꽃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조화야말로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힐난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꽃이면 되는 거야. 왜 자꾸 생화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려고 그러는 거야? 생화나 조화의 구별이야말로 참으로 무의미한 거야.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을 조화라고 해서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거야.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부정하면 우리 앞엔 고통과 죽음 뿐이야. 우리 자신이 먼저 우리를 인정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야만 다른 꽃들도 우리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돼. 누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니야."
  그는 다른 조화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의 가치를 깨달을 줄 아는 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뒤 그가 백화점을 떠나 혜미 아빠라고 불리는 한 남자의 집에 가서 살게 된 것은 백화점에 진열된 지 약 한 달 뒤였다. 어느 날 혜미 아빠가 백화점에 들러 "결혼 기념 선물로는 이게 제일 좋겠군." 하고 번쩍 그를 안아 들었다.
  "여보 고마워요."
  혜미 엄마는 그를 껴안은 채 혜미 아빠에게 키스를 퍼부어 대었다.
 "여보 너무 이뻐요. 이렇게 이쁜 장미는 처음 봤어요."
  혜미 엄마는 마치 그를 생화처럼 대했다. 아침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는가 하면, 혹시 먼지라도 묻을까 봐 호호 입김으로 불어 주기까지 했다. 가끔 혜미 집에 놀러 오는 이웃들도 혜미 엄마가 쏟는 정성을 보고는 대부분 그가 생화인 줄 알았다. 어쩌다가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조화인 줄 아는 사람이 있어도 그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행복했다. 세상에 사랑 받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는 조화로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했다. 그러면서 차차 생화보다 조화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신념화해 나갔다. 조화로서의 아름다움과 자존심을 오직 자기만이라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혜미가 한 남자로부터 청혼의 선물로 받았다면서 장미꽃 한 다발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물론 그것은 생화였다. 혜미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장미의 가지를 자르고 적당히 잎을 떼내어 화병에 꽂아 놓았다. 그날 밤, 밤이 깊어지자 생화인 장미꽃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넌 나보다 네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그럼, 내가 더 아름답고 말고."
  "난 너처럼 오만한 조화를 본 적이 없어."
  "넌 나보다 네가 더 아름다운 줄 아는 모양이구나."
  "그럼, 그건 당연한 일이야. 난 생화거든."
  "하하, 넌 참으로 어리석구나. 난 지금까지 너처럼 어리석은 생화를 본 적이 없어. 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모르는구나. 난 너처럼 시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나에겐 죽음이라는 게 없어. 그러나 넌 이제 곧 죽을 거야. 네가 큰소리 칠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
  "하하, 너야말로 네 자신을 잘 모르겠구나. 넌 명색이 장미이면서도 향기가 없잖아?"
  "향기?"
  순간, 그는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미에게 향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혜미 엄마가 그에게 장미향 나는 향수를 뿌려 주었다.
  "내게도 향기가 나. 자, 맡아 봐. 네 몸에서 나는 향기보다 더 향기로울 거야."
  다시 밤이 되자 이번에는 그가 먼저 생화에게 말을 걸었다. 생화는 그에게서 정말 장미 향기가 나자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서서히 시들어 흉한 꼴을 하고 죽고 말았다. 그는 혜미 엄마에 의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생화를 보고 고소를 감추지 못했다. 생화보다 자신의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은 이제 정말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아픔도 늙음도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한 해가 지났다. 청혼의 의미라 받쳐진 장미는 시들어 버렸으나, 혜미와 그 남자와의 사랑은 시들지 않아 혜미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혜미가 첫 친정 나들이를 하면서 장미꽃 한 다발을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엄마, 그 동안 날 잘 키워 주신 고마움에 대한 내 마음의 표시예요."
  "그래, 그래, 고맙다. 남편 잘 받들고, 아들 딸 낳고 잘살아라."
  그는 웃음이 쿡쿡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조금 있으면 시들고 말 장미를 사 가지고 와서 혜미가 원 별소릴 다한다 싶었다. 그날 밤, 그는 잠도 오지 않고 해서 혜미 엄마가 정성 들여 꽃병에 꽂아 놓은 장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장미는 지난번에 같이 얘기를 나누었던 바로 그 장미가 아닌가. 그는 반가운 김에 먼저 말을 걸었다.   "정말 반갑구나.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네가 다시 살아나 이처럼 아름답다니, 정말 신기하구나."
  그 장미도 당장 그를 알아보았다.
  "응, 정말 반가워. 난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줄 알았어."
  "그게 무슨 말이니? 넌 그때 분명히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넌 정말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구나.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우린 그렇지 않아. 우린 죽음을 통해서 끝없이 다시 태어나.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죽어야 하거든. 죽음으로써 다시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어."
  "나는 새 생명이 필요 없어.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야. 변화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 거야. 고정돼 있다는 것은 이미 추함이야. 아름다움이 어떻게 고정될 수 있겠니?"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그럼 나도 죽어야 하니?"
  "아니야. 넌 죽을 수가 없어. 그건 슬픈 일이야."
  "난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그건 너에게 죽음이 없기 때문이야. 죽음이 없다는 것은 바로 생명이 없다는 것이고, 생명이 없는 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야."
  "아니야, 난 아름다운 꽃이야. 사람들이 다들 나를 아름답다고 해."
  "그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영원히 죽지 않는 너를 통하여 그 두려움을 위안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야. 사람들도 참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거야."
  "그렇지만 난 아름다워."
  "그래, 너도 네 나름대로는 아름다워. 그러나 네가 진정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네 자신이 누구인가를 진정 깨닫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넌 아름다워질 수가 없어.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만이 아름다워질 수가 있어. 넌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닐 때만이 진정 아름다운 거야."
  생화 장미는 이번에도 며칠 가지 않아서 곧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는 말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그 장미를 보고 웃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꿈꾸었다. 그리고 분수를 지키는, 가장 겸손한 조화 장미가 될 것을 그에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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