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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조강지처는 불하당이요

  흔치 칠거지악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옛날 남성들의 횡포를 얘기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어쩔 수 없어 아내를 내보내야 할 일곱 가지를 들었대서 툭하면 그것만 추켜들지만, 거기에 대하여  쫓아내지 못할 사불거가 열거돼 있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첫째, 들어와서 시부모님 거상을 입은 사람. 그는 이미 자신의 아내이자 부모님께 자손된 도리를 한 사람이다. 둘째, 자녀를 낳은 사람. 어미 없는 자녀는 어쩌란 말인가? 셋째,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 거지가 되든지 윤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는 자못 인정미가 넘친다. 선빈천 후부귀. 가난하고 천하였을 때 서로 만나 이제 이쯤 부하고 지위가 높아졌으니까 걸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너는 가라. 이건 인정에 차마 못할 일이다. 그러니까 칠거지악에 들면서 이 조항에 걸리지 않은 여성만이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흔히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는 말을 들추는데, 조는 술 지게미, 강은 곡식을 찧고 재꼈을 때 나오는 겨, 두 가지 다 먹을 것이 못되는 음식이다. 돼지에게나 줄 그런 것을 먹으면서 고생을 같이 한 아내는 내보내지 못한다는 것이 본래의 뜻이요, 거기엔 다음과 같이 얽힌 얘기가 있다.

  후한의 광무제가 왕조를 중흥하고 나니 이젠 집안일을 좀 정리해야 할 단계인데 누님인 호양 공주가 과부가 되었다. 광무제는 부하 중에 송흥이라는 장군을 점찍고 어전으로 불렀다. 병풍 뒤에다 누님을 앉혀놓고 황제는 말머리를 꺼냈다.

  “속담에 이르기를 귀역교  부역처라,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해지면 아내를 바꾼다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신이 듣기에 빈천지교는 불가망이요,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 하옵니다.”
  이에 황제는 병풍 뒤로 들리게 말했더란다.
  “누님, 다 틀렸소.”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게 인간미 넘치는 얘기가 있다. 신라 때 지금 충주땅의 어떤 사람이 아들은 낳았는데, 이게 묘하게도 머리 뒤에 높은 뼈가 불룩 솟아 있고 정수리에 검은 반점이 있다. 보는 사람마다 `하 괴상하게 생겼으니 무언가 한가닥 할거다`고들 하여서 곱게 키웠는데 이름도 자연 우두, 즉 쇠마리가 되었다. 자라나면서 공부를 즐기기에 어떤 방향을 취하려느냐니까 단연코 유학을 공부하겠단다. 그래 선생을 붙여서 <효경>, <곡례>, <이아>,  <문선>등을 읽혔더니, 그야말로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쳐  장족의 진보로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그후 벼슬길에 발을 디뎌 많은 촉망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젊은 혈기에 바람을 피워, 가마실이란 동네 대장간 집 딸하고 눈이 맞아 정이 자뭇 깊었다. 그러는 중에도 스무살이 차니까 부모님은 읍내의 얼굴 곱고 행실 뛰어난 색시를 골라 혼담을 진행하였으니 물론 걸맞는 가문의 규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 되는 신랑이 다른 데로는 장가를 못 가겠노라고 버틴다. 아버지는 화나 나서 의례건 할 말을 늘어놓는다.

  “네가 지금  명성이 한껏 높아서 나라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 그 따위 천한 집 출생하고 살겠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느냐?”

  출세에 장애가 된다거나 한  말까지는 기록에 없지마는 독선생을 앉힐 정도의 집안이니 그런 말도 족히 나왔을 것이다. 그랬더니 아들의 대답이 의연하다.

  “가난하고 지위 낮은 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지만 도를 배우고도 이를 행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로 부끄러운 것입니다. 일찍이 옛사람 말에 조강지처는 불하당이요, 빈천지교는 불가망이라고 들었습니다. 천한 여자지만 차마 버릴 수는 없습니다.”

  신념을 가지고 내세우는 고집을 누가 꺽겠는가? 그후 태종이 즉위했을 때 당나라에서 조서를 보내왔는데, 물론 한문이요, 당시 국내실력 가지고는 풀지  못할 곳이 많아서 그를 불러 물었더니 척척 읽어내고, 답서를 쓰게 했더니 흠잡을 곳이 없다. 왕이 놀랍고도 기뻐서 가까이 불러 이름을 물으니 우두라 한다.  “그런 이름으로야 쓰겠는가? 경의 머리뼈를 보니 강수(우리말로 역시 쇠마리)선생이라 함이 좋으리라.”하고 일을 맡길 만하다 하여 임생이라 부르며 달리 이름을 부르지 아니 하였다.

  여기까지만 써 놓고 보면 흔히 있는 출세한 얘기라 별거 아니다. 그러나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경의 공이 지대하다고 높은 벼슬과 무수한 상사가 내렸건만, 생업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살아갔으며, 신문왕 대에 이르러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비용을 풍부히  보냈건만, 그의 부인은 장례 치르고 나서 남은 것을 모조리 절에 기부하고 도로 가난하기가 전과 같다. 나라에서 보살펴 주마 하니까 미망인은 끝내 사양해 받지 않았으니,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나 할까. 분수를 지키며 조용히 사는 품이, 한창시절의 강수 선생이 열애해 그 뜻을 굽히지 않게 할 만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겠다.


  오늘 사냥감은 바로 네놈이다

  흔히 사람 덜된 것을 보고 등신이라고 하는데, 등은 같다는 뜻으로 몸뚱이와 똑같이 만든 것이 등신이다. 곧 남에게 몹쓸 짓을 해 보복이 두려워 떠는 자가, 밤에 자객이 들더라도 저대신 칼맞아 죽으라고, 저 잘 자리에 이불덮어 눕혀놓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모양만 사람 닮았지, 생각할 줄도 행동할 줄도 모르는 것이 등신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그런 꼴이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인조 때 이원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왔던 이여송이 이땅에서 낳은 손자다. 무과에 급제해서 어느 고을에 군수를 내려갔는데,  거기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서울의 어느 철리(임금의 친척)집을 배경으로 한 양반이  있어 관가 곡식을 꾸어다 먹고 갚지를 않는데 자그마치 삼백 섬이나 되었다. 당시 사환미라 하여서 봄에 어려운 때 가난한 백성에게 관의 곡식을 꾸어 주고, 가을에 햇곡식으로 쌍아두자는 모처럼의 좋은 제도였는데, 그런 곡식을 이놈이 권세를 믿고 꿀꺽 삼켜 놓았으니 밑천이 있어야 관을 운영하지. 그렇다고 그 자가 그걸 갚을 형편이 못되는 것도 아니다. 이군수는 당연한 처사로 사람을 보내 사환미  갚기를 독촉하였다. 그랬더니 양반댁에 사환미를 독촉하려 오는 놈이 어디 있느냐고, 볼기를 쳐서 돌려보냈다. 이군수가 그 꼴을 당하고도 다시 아무 말이 없자 주위에선 수군거렸을 것이다.

  “이번 원님도 별 수 없군! 상대방 권세가 워낙 세어서...”

  그렁저렁 가을도 저물어 얼음이 얼고 눈보라치는 날씨가 되자 군수는 관청안을 모두 풀고  군사들을 휘동해 사냥을 나섰다. 물론 짐승도  잡으려니와 남자다운 씩씩한 놀이로 울적한 심회도 풀고 군사들의 기능도 시험하고 친목도 도모하는 그야말로 다목적의 행사였다. 일부는 목을 잡아 덫을 놓고, 군수 자신은 왼손에 잘 길들인 매를 받쳐 들고, 군사는 사냥개를 휘몰아 골짜기를 뒤졌다. 꿩이 뛰쳐나오면 날쌘 매를 날려 덮쳐서 잡고,  낮잠 자던 멧돼지는 놀라 일어나 달려가다 덫에 걸리고,  창에 찔렸고, 노루는 내뛰다 말고 등성마루에서 먼산바래기를 하다가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그물에 걸린 토끼랑 여우. 너구리. 오소리... 푸짐한 그날 수확을 갈라메고 군사들은 좋아라고 떠들면서 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 개울가 너른 자갈밭에는  미리 군막을 쳐놓아 군수는 우선 거기 들어서 좌정하고, 수행원들은 각각 소임을 따라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에 사냥한 짐승의 각을 떠서 굽고, 지지고 토막내 썰어 넣어서 끓였다.

  “여보게 김비장! 저어기 보이는 것이 아무아무댁일세. 자네 가서 내말을 전하게. 여기까지 왔으니 의당 들어가 뵈어야 도리에 옳겠으나 몸에 군복을 걸치고 있어서 사가로 찾아뵙기 미안하여 그러노라고, 고기도  넉넉하니 잠깐 나오시면 반갑게 뵙겠습니다고, 공손하게 여쭙게.”

  집에 있던 그 양반 작가는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에 의관을 정제해 거드름을 빼고 찾아왔다. 군막 앞에 이군수는 오른손을 번쩍 쳐들며 외친다.  “잡아라! 오늘 사냥에 제일 큰 수확은 네놈이다.”  결박을 지어서 말 위에 동그마니 올려매 높고, 등에다가는 미리 준비한 깃발을 세웠는데 거기 쓴 글귀가 엄청나다.

  “역적, 관명을 거였했으니 역이요, 관곡을 훔쳤으니 적이다.”

  술과 고기로 배를 불린 군사들  뛰-따-두리둥둥 길군악을 늘어지게 치면서 앞뒤를 옹위하여 관가에 도착하자 옥에 밀어 넣었다. 말할 것도 없이 먹혔던 관곡은 즉시 완전 회수되고, 양반은 고개를 떨구고 옥문을 나와서 사라져 갔다. 그 뒤 서울 권력가의  보복이나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두려웠다면 이런 멋진 처사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의 몇 대조 할아버지가 이러저러한 높은 벼슬을 했노라고 너불거리는 이를 가끔 보는데 웃기는 얘기다. 말씀만 하오면 그저 옳다는 지당대신도 있고, 해바라기 족속도 있으며, 탐관오리는 오히려 낫지, 무능해서 밑의 놈들이 마구  먹어도 쇠통 모르고 앉았던 등신도 많은데. 과연 옳은 판단으로 기골있게 제 몫을 하였던가? 그러지 못했다면 부끄러워서도 잠자코 앉아있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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