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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까짓 걸 무엇에 쓸라고 저러노?

  흔히 저 자신은 새로운 일을  아무것도 못하면서 남이 하는 일을 보고 비웃는 이가 있다. 창안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바 일에 성실하게 열의를 다하다 보면 떠오르게 마련이다. 십년 이십년을 한 가지 일에 종사하면서도 똑똑한 아이디어 하나 떠올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재주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근무하는  태도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조 중엽에 윤현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호조판서로 있을 적에 헌 돗자리가 해어져서 못쓰게 된 것을  모조리 거두어 곳간에 챙겨 두게 하여서 모두들 비웃었다.
  “저까짓 걸 무엇에 쓸라고 저러노?"
  그런데 조금 조용한  시간이 생기자 그는 그 알량한 물건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자리 가로 돌려가며 둘러 꾸민 푸른 천을 뜯어내고 나머지를 조지서로 보냈다. 조지서라면 종이 만드는  공장으로 서울 창의문 밖 세검정 계곡에  있었다. 이놈을 불려 찧어서 종이 원료에 섞었더니, 제품이 곱고도 질기어 십상이다.  푸른 천은 빨아 대려 예조로 보내, 예조에서는  그것으로 야인 곧 여진족의 옷끈을 만들었다. 따로 몇십 필씩 물들여 끊어  쓰지 않고도 됐으니 희한한 착상이다. 여진족하고는 소소한 거래가 늘 있었고 그들은 저희 국토에서 나지 않는 때문에 무명으로 만든 거라면 무엇이나 좋아서 바꾸어 갔다. 호조 창고에 쌓아둔 쌀을 풀어내 쓰고 나면 쥐똥 섞인 것이  곧 많이 남는다. 골라내도 먹을 수 없는 그것을 거두어 챙겨 두어서 모두들 또 한 번 웃었다.  그랬더니 외국 사신이 와서 묵는 공관에 그때마다 도배를 해야 했는데, 그 쌀을 내어다 풀을 쑤니까 오히려 여느 풀보다 많이 차질어서 더 잘 붙는다.  그제서야 모두들 그의 주변성을 감탄하였다. 가정 살림을 하는 데도 땔나무를  헤프게 쓰지 못하도록 기와 굽는 공장의 타다 남는 장작을 들여다 무딘 도끼를 주어서 패어 때게 하였다.  패기 힘들어 조금씩 때게 됐다니 참으로 무던한 얘기다.

  당시만 해도 멀리  나들이할 일이 많아 집집에서 말을 키웠는데,  공터에다 피를 여러 두렁 심어놓고 날마다 한 두렁씩 깎아서는 말먹이를 삼았다.  다음날도 한 두렁,  다음날도 한 두렁, 피가 본시 잘 자라는 작물인데다 말의 배설물을 그대로  거름으로 주니 한바퀴 깎고  나면 도로 그 턱이라,  도성 안에 살면서도 말먹이에 걱정을 않았다. 이러한 그였으니 매사에 처리가 어떠하였을까는 미루어 알만하다. 어느 해 목화값이 지천이었는데 그는 돈을 내어서 그것을 사 재었다. 무엇이든 한 번 싸면 주기적으로 꼭 오르게 마련이라,  몇 해 안 가 목화 흉년으로 값이 껑충 뛰었을 때 내어 팔아서 몫돈을 벌었다.
  “양반이 점잖지 못하게 돈 버는 일에 눈을 뜨다니?”
  당시에 상류층 인사라면 이런 말도 들었을 것이나, 입으로 청백하기를 뇌까리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 남에게 몹쓸 짓이나  하던 부류와는 비교가 안되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윤판서의 일화로 보이는 어떤 호조 서리의 얘기가 있다.  서울 서대문 밖 현 독립문 앞에는 높다란 주춧돌  한 쌍이 멋없이 서 있다. 그것은 영은문이라는 옛날 명나라 사신을 맞는 상설 환영문의 흔적이다. 영은문은 그 주춧돌  위에 기둥 하나씩을 세우고 지붕을 해얹어 재주 자랑을 겸해서 세워논 것이었다. 갑오경장으로 청나라의 굴레를  벗어버리자 독립협회에서 재빨리 헐어 없애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 지금의 독립문이다. 그런데 그 영은문 용마루의 기왓장이 하나 깨졌다. 그냥 두면 빗물이 스며 목조 부분이 썩을 것이고, 수리하자니 큰 일이다. 사다리를 걸쳤다간 고  회똑회똑한 건물이 넘어져 버리겠고, 앞뒤로 비계를  매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면 비용이 조만히 든다. 그래 실무진이 걱정들을 하는데 판서가 부른다.
  “내일 아침 일찍 호조 돈 오백냥만 싣고 영은문 앞으로 나오너라.”
  약아빠진 아전이지만 영문을 모른  채 이튿날 새벽 돈바리를 안동하여 현지로 갔다. 엽전 백냥이면 장정 짐으로 한짐이더라니 말바리에 실어도 두 바리 잔뜩이다. 판서는 미리 현장에 나와 있다가 돈을 풀어 무악재 고개로 넘어오는 나무짐을 모조리 샀다. 이때는 쪽바리 장작, 솔가지,  갈퀴나무 등등 서울 시민의 땔나무가 소나 말에 실려 서대문으로 새벽마다 길이 메게 들어오던 때이다. 산더미만큼 사 모은 그 나무를 그는 영은문 앞뒤에서 쌓아올리게 했다. 그래서 문보다도 높이 쌓인 그 위로 널조각을 걸치고, 몸 가벼운  사람이 성한 기왓장 하나를 들고 올라가 후딱 갈아끼웠다. 입을 딱 벌리고 구경하는 나무장사들 뒤로, 뭉게뭉게 모여든 것은 서소문, 서대문 안에서 나무바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구경을 끝낸 그들은 제가끔 저 필요한 나무를 사 싣고들 가니 돈은 고스란히 회수되고 주변에는 부서진 부스러기만이 흩어져 있었다. 부비 든 거라곤  기왓장 한 장, 일꾼들에게 해장국값으로 내린  행하 정도였던 것이다. 호조 실무에 귀신이 다 된  늙은 서리였지만 그 솜씨를 보고야 무서운 대감이라고 아니하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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